제8회 지방선거가 끝났다. 선거는 '여당의 압승'과 '야당의 참패'로 정리되면서 4년 전의 선거 결과를 닮았지만, 내용은 정반대였다. 역대 두 번째로 낮은 투표율(50.9%)은 '여야에 실망한 20·30의 이탈'로 분석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젊은이가 아니라도 구미에서 이번 선거에 투표하기를 망설인 이가 적지 않았다.
구미 투표율은 경북 최하위인 42.8%
경북 평균 투표율은 전국보다 2%p 정도 높은 52.7%지만, 구미는 경북에서 최하위인 42.8%다. 경북 평균보다 무려 10%p 이상 낮다. 전체 선거인 33만7510명 중 14만4584명이 투표했으니, 투표하지 않은 이는 19만2926명이다. 20만 명에 가까운 시민이 투표를 포기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투표를 한 번도 빼먹지 않아 온 나도 이번 선거에선 투표하지 말까, 하는 생각에 잠깐 시달렸었다. 어쩌면 그게 이 지리멸렬의 정치판에 들러리를 서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였다. 그러나, 나는 망설이는 아내를 채근해 투표장으로 나갔다. 늘 사전투표를 하는데 이번에 본 투표일에 투표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나는 주변에 이번 선거는 '민주당의 폭망'만 남았다고 뇌까리곤 했으니 선거 결과는 얼마간은 예측한 일이긴 했다. 그래도 선거 결과를 거듭 확인하면서 '배를 띄우는 것도 물이지만, 그걸 엎어 버리는 것도 물'이라는 사실을, 이른바 '민심'의 향배가 얼마나 두려운가를 절감한다.
4년 전, 유사 이래(!) 처음으로 민주당 시장이 당선되고, 7명의 민주당 시의원 후보들이 몽땅 당선, 그것도 6명은 차점자의 2배 득표를 한 7회 지방선거는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장세용 시장의 재선은 어렵다고 보긴 했지만, 득표율에서 당선자인 김장호 국민의힘 후보는 현 시장을 두 배 이상으로 눌렀다(관련 기사 :
'자유한국당 지지도 1위' 경북, 민주당에도 볕이 들까 /
'박정희 고향' 구미에서 첫 민주당 시장 탄생, 아래 '시장 선거 결과' 참조).
구미의 변화를 기대하게 한 2018 지방선거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표로 당선한 장세용 시장은 재임 중, 별로 이룬 게 없다고 평가받는 것 같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보수층에 구애하느라, 시민들이 바라는 개혁과 변화는 멀리했다. 그는 시민단체의 요구와는 반대로 보수적 행보만 계속하면서 결국 진보나 중도층으로부터도 외면받은 것으로 보인다.
2018년의 선전에 견주면 4년 후의 결과는 초라하다기보다 민망하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도의원은 3명이나 당선했지만, 이번에는 8개 선거구에서 전멸이다. 시의원도 10개 선거구에 1명씩 나갔지만, 당선자는 3인 선거구에서 1명씩 그리고 2인 선거구에서 2명, 모두 4명에 그쳤다.
결국 선거 이후 구미시의회는 국민의힘 20명(지역구18 + 비례2)에 더불어민주당 5명(지역구4 + 비례1)으로 재편됐다. 국민의힘이 80%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구미시의회는 국민의힘 일당 지배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아래 그래프 참고)
경상북도의회는 더 심각하다. 도의원 정수 61명은 국민의힘이 56명(지역구52 + 비례4), 무소속 3명,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대표 2명으로만 구성된다. 도내 24개 구·시·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 도의원을 단 1명도 당선시키지 못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92%의 의석을 점유함으로써 예전과 다르지 않은 권한을 행사할 것이다 (아래 그래프 참고).
지방선거뿐 아니라 국회의원 보궐선거, 교육감선거 등에서도 보수 후보들이 괄목할 만한 선전을 벌였으니, 기초자치단체인 구미시의 선거 결과가 그와 비슷하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경북 유일의 민주당 시장을 배출하고 9명(비례2 포함)의 시의원을 의회에 진출시키면서 구미시는 전국의 주목을 받았다. 그게 어쩌면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경북 구미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구미가 변화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았던가. 시민의 지지로 마땅히 구미의 변화를 이끌어야 했던 이들 정치인의 역량은 그것에 이르지 못했다.
선거 결과는 지난 선거로 변화의 기미를 읽고 더 담대한 변화를 바란 시민들의 기대를 '언감생심'으로 만들었다. 상황은 완벽하게 2018년 이전으로 되돌려졌다. 2018년 선거에도 불구하고 구미시의회는 국민의힘이 다수당이었으나, 이번 상황은 더 나빠졌다.
구미는 다시 2018년 이전으로 회귀하는 걸까
지난번 지방선거에서 두 명의 후보를 냈지만, 의회 진출에는 실패한 정의당은 그러나 이번에는 아예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무소속도 별 힘을 쓰지 못했다(관련 기사 :
구미의 노동자 시의원, '리턴즈'는 이루어질 수 있을까 /
구미 유권자, '20대' 이어 '30대 시의원' 만들어 줄까).
선거 결과를 그래픽 처리한, 온통 빨간색으로 물든 영남 지도를 바라보면서 입맛이 쓰다. 그게 민심이라는 걸 마땅히 받아들여야겠지만, 그것이 수십 년 동안 이어진 특정 정당 배제의 논리(사실은 지역 배제)와 거기 맹목적으로 화답하는 지역 주권자들의 선택이기도 하다면, 좀 다른 문제가 아닌가 말이다.
이른바 '싹쓸이'로 표현되는 선거 결과가 민주당의 실정에 말미암은 것이라는 거라면 그건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실정에 대한 심판과 응징이라고 보기엔 '지나친' 결과에서 읽히는, 수십 년간 이어 온 '배제'와 '혐오'의 그림자는 쉬 감추어지지 않는다.
어쨌든 선거는 끝났고 오는 7월부터 새 단체장이 업무를 시작하고, 새 지방의회가 문을 열 것이다. 바라건대, 신임 시장은 신임 시의회 의원들은 이 선거에 담긴 주권자들의 의지와 희망을 온전히 받아안고 시정을 펼 수 있기를. 거기 담긴 '배제와 혐오' 대신 '화합과 연대'를 지향해 가기를 바라는 이는 비단 그들에게 표를 던진 이들만은 아닐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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