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혜 '첫 여성 광역단체장' 실패…27년 '유리천장' 못 뚫었다 (중앙일보)
김은혜 첫 여성 광역단체장 아쉽게 실패…27년간 못뚫은 '유리 천장' (뉴스1)
김은혜, 0.15%p 차 패배…'유리천장' 못 뚫었다 (SBS)
지난 2일,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가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와의 박빙 승부에서 패배했다. 그러자 일부 언론들은 '유리천장'을 언급하며 김 후보의 패배 소식을 보도했다. 그런데 과연 김 후보의 패배를 유리천장이라 규정할 수 있을까?
유리천장이란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직장 내 성 차별이나 인종 차별 등의 이유로 고위직을 맡지 못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경제학 용어다. 지난 3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여성의날(3월 8일)'을 맞이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유리천장 지수를 발표했다. 한국은 조사 대상국 29개국 중 2013년부터 올해까지 10년 연속 꼴찌를 도맡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김은혜 후보 역시 유리천장의 희생자일까? 앞서 살펴보았듯 유리천장의 정의는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직장 내 성 차별이나 인종 차별'에 의해 고위직을 못 맡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 정의에 따라 김 후보의 패배가 유리천장 때문인지를 따져보자.
먼저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에 대해 살펴보자. 김 후보가 경기도지사로서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는 오롯이 경기도 유권자들이 판단할 사안이다. 그리고 그 판단이 이번 선거의 결과다.
적은 차이긴 하지만 더 많은 경기도 유권자들이 김은혜 후보보다 김동연 후보가 경기도지사로서 충분한 능력을 지녔다고 판단했다. 이를 유리천장으로 칭한다면 유권자들이 김은혜 후보가 여성이기 때문에 김동연 후보를 택했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유리천장이 유권자들의 선택 여부에 달렸다면 지난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패배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왜 같은 '첫 여성 광역단체장' 실패임에도 유리천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았는가. 전 대통령 박근혜씨의 지난 2012년 대선 승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0년 전에는 없었던 유리천장이 부활한 것인가?
34명 중 단 3명... 거대 양당에 유리천장 책임 물어야
두 번째로 '직장 내 성 차별이나 인종 차별'을 따져 보자. 선거의 승패는 직장 내 승진과 매우 다르다. 누구나 동등하게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선거에서의 승패와 일부 최고위직의 의사에 좌지우지될 수 있는 직장에서의 승진은 동일선상에 놓일 수 없다.
'직장 내'라는 유리천장의 정의에 부합하려면 김은혜 후보가 몸담고 있는 정당, 국민의힘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6·1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광역단체장 후보 17명 중 김 후보를 포함한 두 명만 여성이었다. 다른 한 명인 조배숙 전라북도지사 후보도 사실상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험지에 공천되었다.
이러한 비판은 더불어민주당 역시 피해가기 어렵다. 오히려 국민의힘보다 더하다고 볼 수도 있다. 민주당은 6·1 지방선거에서 단 한 명의 여성 광역단체장 후보인 임미애 경상북도지사 후보를 공천했다. 그마저도 조배숙 후보의 경우처럼 당선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험지다.
김은혜 후보를 두고 유리천장이라 표현한 언론들 역시 양당의 이 같은 여성 후보 공천 문제도 함께 지적했다. 하지만 김 후보의 선거 결과와 유리천장 자체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 정말로 유리천장의 심각성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왜 양당이 광역단체장 후보 공천에서 여성 후보에 소극적인지에 대해 취재할 일이지 후보 개인의 당락과 함부로 결부할 사안이 아니다.
이처럼 김은혜 후보의 패배는 유리천장이라 규정하기 어렵다. 애초에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대변인 출신으로 KT 전무로 채용되어 '낙하산 인사'라 비판받은 김 후보 아닌가. 그런 김 후보를 향해 언론이 그 정의조차 무시한 채 유리천장이라고 칭한다면 그야말로 언어도단이 아닐까. 또한 언론의 용어 오용은 용어 자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언론이 용어 사용에 있어 신중을 가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