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오픈스튜디오라고 한다. 십년하고도 2년이 더 되었지만 나에겐 첫 걸음이다. 이전에 알고 지냈던 도예가 이세용 선생님의 도예연구소 오픈스튜디오다. 여주시 점동면 처리길 86번지 이세용도예연구소에는 초여름으로 들어선 풀들과 나무와 바람이 마당에서 먼저 객들을 맞이한다.
2층 높이의 진회색 건물은 도자기 작업장이자 전시실이자 수장고다. 그러니까 이세용 선생님의 도예 인생이 담긴 곳이다. 올해 처음으로 이세용 선생이 없는 오픈스튜디오가 열리는 중이다.
6월 8일부터 시작해 토요일인 11일까지다. 물의 날에서 시작해 흙의 날에 끝난다. 물이 생명의 시작이라면 흙은 생명이 다하는 의미. 우연이겠지만 요일에도 이런 의미를 부여할 만큼 이번 오픈스튜디오는 이세용 선생님에 대한 추모의 마음이 담겨 있다. 오랫동안 소세포암이라는 희귀병과 싸우다 지난해 12월 20일 이승의 끈을 놓으셨다. 우리시대 탁월하고 뛰어난 도예가 한 분을 아깝게 잃고 말았다.
12회 오픈스튜디오, 이세용 선생 돌아보는 계기 될 것
선생의 작품에는 전통성을 지켜내면서 형식을 넘나드는 회화를 통한 유희성과 풍자가 담겨있다. 다양한 생명의 자연스러움, 해학적 이미지가 번잡하지 않게 표현된 작품을 보면 갖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든다. 오픈스튜디오에서 전시된 대부분의 작품이 그러했다. 작가의 예술혼과 노고가 담긴 작품에 비하면 정말 착한 작품가다.
회화에도 일가견이 있는 선생은 경희대학교 도예과와 대학원을 나와 13년 동안 국립요업기술원 책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흙과 유약, 안료에 대해 연구했다. 이러한 이력이 말해주듯 그가 구워낸 도자기는 마치 캔버스에 그린 듯 자유로운 그림들이 거칠 것 없이 넘쳐나고 도자기 색감 또한 이세용이라는 도예가의 낙관인 듯 독특한 빛을 발했다.
더욱이 경쾌하고 세련됐으면서도 이야기가 담긴 그의 청화백자는 전통과 현대의 도예가 서로 어우러져 '옛 것을 물들여 새 것을 만든다'는 염구작신(染舊作新)의 정신을 보여주는 듯하다. 우리나라 도자기의 멋과 미를 그대로 살리면서 현대적인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것이 회화와 도자기를 함께 하며 오랫동안 연마하고 연구해온 흙과 유약, 안료 때문일 것이다.
선생의 가장 깊은 벗이자 동료이자 아내인 최월규 선생은 "병마와 싸우면서도 마비된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도자기에 그림을 그렸다"며 예술가로서 끝까지 열정을 다한 '이세용 도예가'의 부재를 안타까워했다.
개인전 총 26회와 미국 마이애미, 밀라노, 홍콩 등의 아트페어에 참여하며 조형과 도조 등으로 도예작업을 확장해온 선생은 이제 이세용도예연구소 대표직을 평생 동반자인 아내에게 물려주고 안식의 세계에 안착했다.
도자기고장 여주 민예총 도예분과 연구모임인 가라말자기소 고문으로 전시회와 워크숍 뿐 아니라 오픈스튜디오 행사로 도예문화의 대중화에도 특별히 힘썼던 이세용 선생. 이번 오픈스튜디오는 우리나라 현대 도예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귀한 자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