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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신천 가로등에 포충기가 설치돼 있다. 기기에서 나오는 푸른 빛은 곤충을 불러모으는 특수한 빛이라고 한다.
대구 신천 가로등에 포충기가 설치돼 있다. 기기에서 나오는 푸른 빛은 곤충을 불러모으는 특수한 빛이라고 한다. ⓒ 정수근
   
▲ 모든 곤충 몰살시키는 포충기 설치한 대구시, 왜 이러나??
ⓒ 정수근


"치지직, 치지직."

소리는 요란했다. 연기까지 피어올랐다. 언뜻 들으면 합선으로 전선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곤충이 타들어가는 소리였고, 곤충이 타면서 피어오른 연기였다. 이른바 '포충기(곤충을 포집하는 기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9일 대구 신천의 밤공기를 덮고 있었다.

가로 20cm 세로 50cm 정도 좌우 포충기 두 쌍은 상당량의 곤충을 태우고 있었다. 강력한 자외선으로 보이는 푸른 불빛은 곤충들을 불러 모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대부분 하루살이였다. 드문드문 이름을 모르는 곤충과 나방이 눈에 띄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실로 걸려온 제보 전화

9일 일몰 무렵,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실로 제보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제보자는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이런 것까지 환경단체에 얘기해도 되나 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내 제보자는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냐'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대구시가 너무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신천을 자주 찾는 편인데 언제부터 천변에 저 포충기가 설치돼 있었다. 포충기는 모든 곤충을 죽여버린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성명서를 보니 금호강 하중도 경관 조명 설치를 반대하던데, 신천 조명도 결국 인간들을 위한 것이다. 일부가 민원을 제기한다고 해서 모든 곤충을 죽여버리는 기계를 설치해도 되는가."

이 제보자는 대구시에 전화를 걸어 항의도 했다고 한다. 혈세를 투입해 왜 저런 장치를 하천에 설치하느냐고. 그런데 대구시 관계자는 "산책하면서 곤충이 많아 너무 불편하다는 민원이 있었다"며 "그래서 지난해부터 시험적으로 희망교에서 대봉교 사이 그리고 동신교와 칠성교 사이에 총 34대의 포충기를 설치했다. 우리도 현재 경과를 지켜보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몰 생태적 감수성
 
 포충기 안에서 수많은 곤충이 죽고 있다.
포충기 안에서 수많은 곤충이 죽고 있다. ⓒ 정수근
 
기자는 이 제보를 받고 9일 밤 신천으로 이동해 포충기가 설치돼 있는 대봉교 너머 현장까지 갔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신천엔 초저녁부터 많은 시민이 걷거나 조깅을 하고 있었다. 신천은 대구시민들이 좋아하는 도심 하천이다. 시민들은 운동을 하러 나왔기 때문에 특별히 주변을 살피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제보를 받은 포충기는 시민 산책로에서 조금 벗어난 잔디밭 가장자리에 설치돼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포충기인지 잘 몰라볼 듯했다. 하지만 소리로 그 기기의 쓰임새를 짐작할 수 있었다. '치지직 치지직' 뭔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났고, 연기도 났다. 현장을 확인해 보니 곤충들이 죽고 있었다. 대부분 하루살이였다. 
   
기자는 하천에 조명을 설치한 것은 인간의 편의를 위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생태계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는 것이다. 낮시간 하천은 인간이 이용하더라도 밤시간은 야생에 돌려주는 것이 옳다고 본다. 야생 동식물들도 살아갈 공간과 환경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이 있는 하천변엔 곤충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 하천에 조명을 설치했고, 그 조명 때문에 곤충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그런데 곤충이 불편하다고 제거해 달리는 민원에 포충기가 설치됐다. 지자체의 몰(沒) 생태적 감수성이 아쉽다.

하천변에 곤충 많은 건 당연... 생태계의 한 축
 
 포충기가 설치된 너머로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어서 포충기가 설치돼 있는지 모르는 듯했다.
포충기가 설치된 너머로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어서 포충기가 설치돼 있는지 모르는 듯했다. ⓒ 정수근
 
기자 역시 대구시 관계자와 통화를 했다. 기자가 '곤충 중에는 해충도 있지만 익충도 있지 않느냐. 그런데 이 포충기는 모든 곤충을 다 죽인다. 곤충은 새들의 먹이기도 해서 포충기 설치는 생태계 질서를 교란시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대구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2021년부터 시험삼아 총 34대의 포충기를 설치했다. 예산은 정확지는 않지만 수천만 원 들었다. 설치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도 지금 죽은 곤충을 수거해 어떤 곤충들이 있는지 모니터링 하고 있다. 모니터링 결과를 가지고 다시 평가해보겠다."

생태적 배려에 대한 얘기는 들을 수 없었다. 곤충은 박멸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새들의 먹이로 엄연히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곤충의 박멸은 생태계를 교란시켜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대구시는 이 점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신천에 설치된 포충기만으로 하천의 모든 곤충을 '제거'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시민 산책로에는 여전히 많은 곤충이 있었다. 하천변에 아예 곤충을 없애려면 수백 수천 대의 포충기가 필요할 것이다. 

이 포충기가 신천에 그대로 설치된다면 대구시의 몰 생태성을 계속 내보이겠다는 것과 같다. 지난해 대구시는 신천의 홍수터를 넓힌다는 명분으로 하천 바닥을 준설해 신천의 명물 수달의 집까지 제거해버렸다(이는 대구MBC의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대구시는 한쪽으로는 수달을 보호하고, 다른 한 쪽으로는 수달 집을 없애는 모순적 행정을 벌였다. 대구시가 하루속히 문제의 포충기를 제거하는 게 생태계를 위해 옳다고 본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물하천 분야 활동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강이 아파하는 현장의 제보를 환영합니다.


#대구 신천#대구시#포충기#곤충#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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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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