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기탄잘리 슈리 작가가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자, 한국 언론은 "정보라 작가 <저주토끼>, 수상 불발"이라는 제목으로 우수수 기사를 냈다. 불발은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러니 대다수 기사가 작가가 내정 받은 상을 놓친 듯, 슈리 작가의 수상 소식이 정보라 작가(아래 정 작가)의 실패인 듯 암시한 셈이다.
작가 본인의 태도와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정 작가는 <저주토끼>가 수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때부터 일관되게 '후보가 되어서 놀랐고, 수상은 기대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자신이 창작을 하는 목표는 창작 자체임을 처음부터 뚜렷이 했다.
특히 최종후보에 머무른 소감을 묻는 질문에는 "모든 문학과 예술은 포부를 갖지 않을 때에 가장 많은 성취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상을 타거나 독자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가 믿는 가치와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서 글을 쓸 것"(동아일보 인터뷰)이라고 답했다.
정보라 작가가 호러 소설을 쓰는 이유
정 작가는 '취미는 데모'라고 할 만큼 사회 활동에 몸을 바쳤다. 시위는 말 그대로 몸을 바쳐야 하는 일이다. SF 단편집 <그녀를 만나다> 후기에는 무슨 일이 생기면 어디든 넙죽 오체투지를 했던 생활상이 담겨 있다. 정 작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두 번 오체투지를 했다. 표제작인 '그녀를 만나다'는 변희수 하사를 향한 헌정사로 끝난다.
정 작가는 호러 소설에도 현실의 무게를 담는다. <저주토끼>에는 SF가 1편 있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오싹함, 기묘함, 쓸쓸함이 주요 정동이라는 점에서 호러에 가깝다. 언젠가 정 작가는 자신이 호러를 쓰는 이유는 일상에 공포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의 호러 소설은 어둡고 불의하고 폭력적인 세상을 그리며 독자에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환상적인 기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 무게마저 비현실적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저주토끼>의 주제를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공포와 잔혹함이라고 소개했다.
예를 들어 '저주토끼'는 토끼 모양 전등에 저주를 걸어 상대 집안 사람들을 죽이는 이야기다. 저주를 건 이유는, 돈 있고 돈 밝히는 그들이 열심히 살아보려던 친구를 자살하도록 몰고 갔기 때문이다.
'즐거운 나의 집'은 권리금, 세입자, 부동산 사기, 불륜 등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동시에 어린아이 모습의 귀신에게 마음을 빼앗긴, 기댈 곳 하나 없어 도리어 비현실을 택하는 어느 여자의 이야기다. 구체적인 묘사는 매우 한국적이지만, 이 소설은 호러의 문법을 택한 덕분에 오히려 보편의 문법을 터득한다. 귀신에 씌이는 여자 이야기는 전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장르문학의 위치
<저주토끼>의 국제문학상 후보 지명과 연관지어 살펴야 할 점은 한국 장르문학의 작품성이다. 국내 언론의 <저주토끼> 소개에는 유독 "순문학이 아닌 장르문학"이라는 문구가 따라다녔다. 찾아보니 "순문학이 아닌 장르문학"은 '순문학과 달리 기존에 작품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장르문학'의 줄임말이다.
실제로 장르문학은 통속적이거나 상업적이라 문학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치부되곤 했다. 한국 SF의 경우 아주 오랫동안 '통통 튀는' '발칙한' 상상력이라는 말이 천편일률적으로 쓰였다. 작품의 소개글을 좌우할 목소리를 지닌 이들이 작품과 작가를 진지하게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SF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비평해야 하는지에 대한 언어를 고민하지 않았다.
정 작가는 이를 이용해 한국 SF에 관한 짧은 SF 소설을 썼다. 여기에는 외계인이 SF 학회에 우주선을 끌고 나타나 정신공격을 퍼붓는 장면이 등장한다. 우주선에서 "발랄하고 통통 튀는 신예 SF 작가들……"이라고 말하자 "열두 번째 장편을 곧 출간할 예정인 모 작가"가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진다. "지루한 일상을 뒤집는 발칙한 상상력……", "기발하고 참신한 본격 SF의 탄생……"(<한국 창작 SF의 거의 모든 것>)이라는 말에 다른 작가들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다. 아주 웃기지만 가슴을 움켜쥐고 싶은 말이다.
작가가 창작을 계속하려면 지면과 관심이 있어야 한다. 누가 알아주고 읽어주고 구매해주어야 한다. <저주토끼>는 딱 맞는 사례였다. 어느 기사는 정 작가를 '무명의 부커상 후보'라고 불렀다. <저주토끼>의 국내 출간년도는 2017년이다. 수록작 중 '머리'는 1998년 연세문화상을 수상했다. 작가와 작품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다만 5년, 혹은 25년간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더 많은 '독자'가 필요하다
책을 번역하려 한 사람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저주토끼>는 그대로 소설의 무덤에 묻혔을 것이다. SF 작가들은 2010년대에는 장르 소설을 실어주는 지면이 정말로 없었다고 회고하곤 했다. 좋은 글을 써도 장르문학이라는 사실만으로 '읽어주지 않는다', '팔리지 않는다'는 반응을 받는다면 창작 활동을 지속하기 어렵다.
아무리 창작 자체에 의미를 두더라도 소설이 혼잣말이 아닌 이상, 작가가 취미생활이 아닌 이상, 지면과 관심이 필요하다. 장르 소설을 쓰려는 사람들에게는 '해도 된다'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장르문학 독자들에게 이번 <저주토끼>의 후보 지명 소식은 전혀 '불발'이 아니다.
관련 인터뷰에서 안톤 허 번역가는 한국에 기성세대 문학 외에도 풍부한 장르문학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서 SF를 번역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 장르문학은 비평 작업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했던 만큼 오히려 번역을 통해 작품성이 재발견될 여지가 있다.
그리고 좋은 번역은 좋은 번역가에게서 나온다. 좋은 번역가는 창작자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작가와 번역가에게 함께 수여된다. 번역의 중요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저주토끼>만 해도 '안녕, 내 사랑'에 등장하는 '1호'는 성별이 없었다가, 영어로 번역되면서 성별이 정해졌다.
안톤 허 번역가는 '1호'를 '그녀'로 지칭하며 이야기가 상투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신경 썼다. 번역가의 감각이 필요한 부분이다. 다른 곳에서 번역된 정소연 작가의 '집'의 경우, 등장인물인 '그'는 영문 번역 과정에 'G'가 되었다. 한국어처럼 일부러 성별을 특정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마찬가지로 감각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번 부커상 소식을 두고 한국문학의 세계 진출을 이야기하는 기사가 많았다. 정말로 세계적으로 진출하려면 국내의 창작 환경이 그만한 밑바탕이 되어주어야 한다. 좋은 작가, 좋은 번역가만이 아니라 좋은 독자가 필요하다. 장르문학을 제대로 읽고 제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저주토끼>와 같은 책이 소설의 무덤에 들어가지 않도록 이를 기록하는 언어가 필요하다. '풍부한 장르문학'이 성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독서가 이루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