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6.1 지방선거는 거대 양당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선거였다. 견고한 양당구조 속에서 전국에서 508명이 무투표 당선됐다. 서울 은평도 예외는 아니었다. 6명의 기초의원이 무투표 당선됐다.
이 틈바구니에서 당당히 내민 무소속 후보가 있다. 비록 의회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이들의 도전이 갖는 의미와 그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서울시의원(은평구 제3선거구)에 도전한 김주영 후보와 은평구의원(라선거구)에 도전한 김연웅 후보는 모두 무소속 출마를 선택했다. 혼자서 선거 전 과정을 이끌며 나름의 기대를 품기도 했지만, 김주영 후보는 4만 8549표 중 2213표(4.64%), 김연웅 후보는 3만2177표 중 439표(1.44%)를 얻는 데 그쳤다. 좌절 또한 오롯이 홀로 짊어져야 했다.
하지만 용기 있는 그들의 선택을 응원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오며 가며 보내는 시민들의 격려 한 마디가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선거에 열중할 수 있게 했다. 지난 8일 <은평시민신문> 공유 스튜디오에서 두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무소속이라는 이유로 무시, 가장 힘들었다"
- 선거 마치고 나니 여러 감회가 들 거 같습니다. 선거를 마친 소감이 궁금합니다.
김주영: "3월 중순 예비후보 등록 이후 5월 31일까지 두 달 반 정도 진짜 힘 많이 들었어요. 이런 장기 레이스는 평생 처음 해보는 거였고, 제가 했던 지금까지 모든 업무 가운데 가장 힘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연웅: "연고도 인맥도 없는 곳에서 혼자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다들 '시간과 에너지를 버리는 일'이라고 말렸는데, 막상 선거 때는 응원을 많이 보내주셨어요. 그래도 나와서 보기 좋다고요. 일단 결과는 많이 아쉽습니다. 좀 실패했다고 느끼기도 하고 동시에 또 많이 배우고 치열하게 시민들을 만나 굉장히 뿌듯합니다."
-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을까요?
김주영 : "일단 체력이죠. 2개월 반가량을 밤 11시~12시가 돼 집에 들어갔어요. 선거 막판에는 하도 밖에 서 있으니까 주민들이 '어차피 뽑을 거니 이제 들어가도 된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군대 있을 때 훈련해도 하루는 쉬었는데 선거는 그렇지 않더군요.
그리고 무소속 출마다 보니 무시당하는 일이 많았어요. 명함 찢어서 제 앞에 뿌리거나, 명함을 받고 '어 무소속이네, 악수 한번 하시죠' 해서 악수하니까 '어차피 떨어질 거 아니까 악수라도 한번 해보려고 한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어요.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건 초반에 한 1개월 반 정도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저 사람이 계속 보이네, 계속 운동을 하네, 본 후보까지 등록할 것 같은데, 이러면서 무시하는 분들이 좀 줄어들기 시작하더라고요."
김연웅 : "저도 체력, 정신 두 가지 부분인데요. 특전사 학교에서 특공 수색 훈련까지 받았는데, 특공 수색 훈련보다 힘들었다고 단언할 수 있어요. 제가 얼마나 이곳에 오래 서 있었는지, 같은 멘트를 얼마나 반복한 건지를 잊을 정도였어요.
진짜 이 악물고 버텼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노하우를 알려주는 사람도 없어서 힘들었어요. 어떤 역량과 실력을 갖고 있냐는 별개로 무소속이라는 이유로, 연고가 없다는 이유로,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를 받을 때 '정말 되지 않는 싸움에 낀 것인가', '맨땅에 헤딩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힘들었어요."
- 기대에 못 미치는 선거 결과가 나왔는데요.
김주영: "성적표를 받고 나서 너무 자만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한국 정치를 보면서 나름대로 안목이 있다고 생각했고, 이번에 무소속이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본 몇 가지 포인트가 있었어요. 그런데 성적표가 굉장히 참담한 거예요. 보는 것과 현실 정치 사이에 괴리가 있었던 거죠.
체계적으로 시스템화된 거대 양당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봤어요. 수많은 도전과 실패를 겪어 지금의 거대 양당이 된 건데, 그 시스템에 파괴력을 주려면 안철수 의원급 정도가 돼야 하지 않나, 그런 현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죠. 인터뷰 제안 주셨을 때 제가 주저했는데 사실 대한민국에서 무소속 당선은 힘들다, 이 사실을 말씀드릴 수밖에 없네요."
김연웅: "다시는 무소속으로 선거를 치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기적을 기대하면서도 당선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선거운동원도 없고 유세차도 없고 선거사무실도 없이 혼자 선거를 치렀으니까요. 그럼에도 기대를 했던 건 많은 분이 저를 알아봐 주시고 응원을 보내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죠.
하루에 음료수도 스무 개씩 받고 쪽지도 받으면서 어쩌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은평뿐만 아니라 전국의 선거 결과를 보면서 시민들의 반응과 표는 별개인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저는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권뿐만 아니라 피선거권도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누구라도 의지를 갖고 차별 없이 출마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부딪히는 결과를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죠."
"그럼에도 나오길 잘했다"
- 에피소드 좀 들려주세요. '그래도 나오기 잘했다'거나 '괜히 나왔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었을 것 같아요.
김주영: "감사한 에피소드는 너무 많아요. 한 자리에 계속 서 있으면 '저 후보는 계속 저기 있구나' 하며 반갑게 음료도 하나 건네주시는데, 그런 사소한 게 무소속 후보에게는 정말 귀하거든요. 한 번은 어떤 가게 사장님이 찾아오셨어요. 제가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걸 유심히 보셨대요.
만나서 얘기를 하고 싶었다면서 '열심히 하는 모습 계속 지켜봤다, 그런데 왜 무소속이냐, 현수막은 왜 달지 않냐' 이것저것 물어보시고는 '당선은 어렵겠지만 나는 당신을 찍을 거다,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김주영이라고 하는 사람의 가치를 봐주시고 한번 얘기를 나눈 다음에 지지한다는 분들이 계속 등장하셨어요."
김연웅: "선거기간 동안 많은 걸 배우고 감사한 일도 많았어요. 후원회와 관련해 사무처리 등을 해야 하는데 굉장히 까다롭더라고요. 그리고 구의원은 50명 이상의 주민 추천장을 받아야 하는데 연고가 없다 보니 만만치 않았어요. 추천장에는 개인정보가 들어가니 민감하잖아요. 물건 파는 줄 알고 안 산다는 분도 있고 갑자기 이걸 훼손하려는 분도 있어서 겨우 돌려받기도 했고요. 다행히 저를 계속 봐주신 주민들이 도와주셔서 3일 만에 끝냈어요.
막바지 선거운동을 할 때 응암역에 제가 서 있으면 하루는 다 빨간색, 하루는 다 파란색, 이렇게 선거운동을 해요. 그사이에 혼자 있으려니 움츠러들기도 하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많은 시민께서 음료수를 주고 손도 잡아주시면서 응원을 보내주셨어요. 감동적이었죠.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목이 쉬어도 목소리를 높여서 더 얘기하고 더 외치고 더 인사드려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정말 아픈데도 계속 끝까지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 선거 비용 많이 들었죠? 어떻게 하셨어요?
김주영: "서울시의원은 300만 원의 기탁금이 있어요. 청년 할인을 받아서 저는 210만 원을 냈고, 이거 제외하면 총 1472만 8110원을 썼습니다. 보전도 못 받다 보니 고스란히 국가 경제에 이바지했다고 판단합니다."
김연웅: "후원회에서 1300만 원 정도를 모아주셨는데 그걸로 부족해서 대출을 좀 받았어요. 공보물 만드는 비용이 정말 비싸더라고요. 종이가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를 알릴 수 있는 게 공보물이라고 생각해서 신경을 많이 썼죠. 선거기간 동안 돈을 벌지도 못 했으니 그런 것 감안하면 2천만 원 이상은 쓴 것 같아요."
"진짜 일할 사람 뽑을 수 있도록 제도 마련돼야"
- 양당 정치가 완전히 굳어져 버린 이번 선거를 보면서 느낀 점이 있나요?
김주영: "제3지대가 가능하다고 믿었고 어떻게 보면 이번이 마지막 찬스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죠. 미국의 양당체제를 계속 닮아가는 듯해요요. 그래서 청년들에게 좀 죄송한 말이지만, 제3지대를 꿈꾸는 것보다 본인의 가치에 맞는 정당을 찾아 그 안에서 활동하고 공천도 받는 게 좋지 않을까 해요. 이번 지방선거는 그런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봅니다."
김연웅 : 저는 정당주의자고 다당제를 지지합니다. 미국은 우리와 정치가 닮았다고 하는데요,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을 보유하고 있어요. 넓고 다양한 생각이 그 정당 안에서 피어나는데 그게 미국이 가진 정치 문화의 장점 중 하나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넓은 스펙트럼으로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을 대변하나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오히려 팬덤으로 가면 더 갔죠. 이런 상황이라면 그 두 정당이 만드는 양당 체제에서는 긍정적인 발전은 어렵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극단적인 대결 정치로만 가고 대안이 없어지고 그 피해는 온전히 시민들 유권자들 몫으로 돌아올 거로 봐요.
그리고 이제 편하게 쓴소리하자면, 지방의회 무용론까지 나오는 상황이고 후보자들 자질이 점점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객관적인 평가로 이 부분을 해결하겠다고 하는데, 결국에는 자유 경쟁이 돼야 퀄리티가 높아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천만 되면 사실상 당선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어떻게 구의회가 발전을 하고 지방의회가 더 나은 퀄리티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 이젠 후보자가 아니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거는 좀 기억해 달라' 얘기하고 싶은 게 있나요?
김주영: 선거 치를 때 현수막이 없어도 된다고 봅니다. 주요 사거리에 LED게시판을 활용할 수 있는 조례를 만들어서 공익 목적의 광고를 싣는 방안이 마련되면 좋겠어요. 후보자 선거사무소에는 현수막이 꼭 필요하죠. 하지만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을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연웅: "공론장이 정말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불광천을 어떻게 하겠다는 후보들의 공약이 있는데 시민들은 그냥 불광천 놔둬라, 설치하려고 하지 마라는 의견도 있어요. 이럴 때 시민공론회가 열리면 어떨까요? 또 얼마 이상의 구청예산을 쓸 때 주민숙의회를 하는 걸 의무화하면 어떨지... 이런 과정이 쌓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은평 공론장으로 자리잡아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은평은 재정자립도가 낮아서 교부금을 많이 받다 보니 중앙 예산에 종속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니 사업의 지속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당장 눈앞에 성과가 보이는 작은 사업들에 치중할 수밖에 없죠. 창의적인 세입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재정자립도 향상을 위해 누군가는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네요.
김주영 : "저는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이천 명이 넘는 분들이 보내주신 응원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요. 이제는 더 좋은 시민으로 역할을 하겠습니다."
김연웅: "일단 취업해 돈을 좀 벌어야 할 것 같습니다. 모아둔 돈을 다 쓰고 마이너스가 됐어요. 앞으로 좀 더 고민하고 더 준비해 다시 저를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를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이번 선거 결과에 씁쓸한함을 느낀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방자치의 현재 문제점들을 개혁하고 촉구하는 그런 연대활동을 해 보려고 고민 중입니다."
-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주영 : "낙선자 인터뷰는 이걸로 끝나지만 당선자들에게 포커스를 맞춰서 그분들이 좀 더 책임감을 갖고 활동할 수 있도록 언론에서 조명해주면 좋겠어요. 실제로 선거를 해보니 구의원, 시의원의 필요성을 더 느끼게 됐어요. 시장이나 구청장이 갖는 막강한 권력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시의원은 정당공천으로 하는 게 맞는데 구의원은 정당 공천보다는 진짜 일할 사람을 뽑을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면 좋겠어요."
김연웅 : "풀뿌리 민주주의는 뿌리가 튼튼해야 하는데 유권자들의 생각을 무시하는 정치가 되면 절대 안 되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는 지금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고 대결의 정치로 가고 있어요.
정말 해결책을 제시하고 미래를 말하는 사람들은 없고 '유권자분들, 저 당을 뽑으면 큰일 나니까 싫으니까 저를 뽑아주셔야 돼요'라고 불안을 조성하고 갈등을 조장해서 투표하게끔 만드는 그런 선거, 그런 정치가 횡행하고 있고요.
구의원은 그 지역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인물들이 당선돼 구청장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기초자치단체라 해도 예산이 엄청 크거든요. 견제가 없으면 안 되니까 의회가 강력한 권한을 갖고 더 많은 시민을 대변해야 한다고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