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내는 길고양이에 진심이다. 좀 더 시점을 특정해 보면 2021년 9월부터 지금까지 길고양이들 밥을 먹이고 돌보는데 정말 몸을 '갈아 넣는' 중이다.
인연의 시작은 '콩이'였다. 아내 친정은 아산시 배방읍 모산로에 있었는데, 지난 9월 이 일대 재개발로 철거가 결정됐다. 그즈음 아내와 함께 친정을 방문했는데, 엄마 고양이와 새끼가 열려진 대문 앞에서 밥 달라고 '야옹'하고 있었다. 알아보니 재개발로 이사를 떠난 친정 건너 집에서 돌보던 고양이들이라고 했다.
재개발이 결정되면서 이웃들이 하나둘씩 떠나갔다. 친정도 10월 인근 아파트 단지로 이주했다. 그런데 아내는 그곳에 남겨진 고양이 모녀가 안쓰러웠는지, 매일 시간을 내어 밥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기 고양이에게 '콩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캣맘 생활은 그렇게 시작했다. 적어도 내 기억으론 그렇다. 콩이와 콩이 엄마를 챙겨주다가 이제 반경을 넓혀 모산로 일대 재개발 지역에 몇 군데 밥자리를 정해 놓고 아침저녁으로 사료랑 물을 챙겨줬다.
길고양이 급식소가 마련됐지만
올해 2월엔 의미 있는 일이 있었다. 아산시에서 모산로 재개발지역 일대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마련해주기로 한 것이다. 이 역시 아내의 공이 컸다.
모산로 재개발지역은 철거가 늦어지면서 일대 건물이 이제껏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그러나 영역을 잘 떠나려 하지 않는 고양이의 습성상, 고양이들은 여전히 그 일대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아내는 시청에 철거 시 있을 위험에 대비해 고양이들의 안전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민원을 넣었다. 시 예산상 어렵다고 했다. 그럼 급식소라도 마련해 달라고 압박했고, 결국 아산시가 세 곳에 급식소를 마련해준 것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지난 5월 초 급식소 주변에 나타난 고양이 가족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엄마 고양이와 다섯 남매였다.
엄마 고양이는 평소 아내가 돌보던 고양이였다. 그런데 다섯 남매 건강상태가 심각했다. 이 녀석들은 고양이 감기인 허피스(헤르페스)에 걸려 심한 눈 질환을 앓고 있었다. 게다가 코 주변을 덮고 있는 콧물딱지 때문에 숨쉬기도 힘들어했다.
아내는 근처 동물병원에서 안약과 허피스약을 구입해 손수 다섯 자매 눈에 넣어줬다. 그러던 중 5월 둘째 주 한 녀석이 참변을 당했다. 사체가 심하게 훼손된 채 발견된 것이다.
아내는 학대를 의심해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한참 후 결과가 나왔는데 사람의 학대가 아닌 들짐승이나 떠돌이개들한테 습격을 당한 것이라고 했다.
아내는 남은 네 남매가 해코지를 당할까봐 전전긍긍했다. 그러다 엄마 고양이와 네 남매 구조에 나섰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숨어버리는 고양이의 습성 때문에 구조가 쉽지 않았고, 며칠 동안 아내는 철거촌에서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다.
난 아내의 건강을 걱정했다. 아내는 아침, 저녁으로 아이 돌봄일을 한다. 그 틈새 시간에 길고양이 밥을 주러 다닌다. 그런데 아이 돌봄이 노동강도가 무척 강해 늘 피곤해했다. 그런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고양이들 구조하겠다고 철거촌에서 새벽까지 머무는 것이다. 그러니 건강과 안위가 걱정될 수밖에.
'껌딱지' 아기고양이 자매, 묘생역전 바란다
고양이 가족들은 다행스럽게도 전원 구조됐다. 엄마의 이름은 '베리'로 지었다. 아직 철거촌에 남아 있는 소상공인 한 분이 베리 가족을 위해 빈 공간을 내줬다. 베리 가족에겐 안전가옥인 셈이다.
네 남매는 지금은 아주 활달한 모습이다. 이 중 둘은 새 양부모를 만났다. 베리는 중성화 수술을 마쳤고, 자매 둘은 우리 집에서 임시보호 중이다.
자매 둘이 아직 감기가 채 낫지 않아서 돌봐주고 있는데, 재채기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내가 집에 데려오라고 했다. 이제 쿠키, 애옹이에 이어 새끼 두 녀석까지 총 넷이 한 집에 살게 됐다.
어쩌다 내가 고양이 집사가 됐는지, 또 어쩌다 아내가 길고양이를 돌보게 됐는지 사람 운명(?)은 정말 알 수 없다.
그러나 길에서 험한 생활을 하는 고양이에게 먹을거리만큼 살뜰히 챙겨주는 아내에게서 이전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또 다 죽어가던 길고양이가 아내의 손길을 거치면서 되살아나는 모습은 참으로 경이롭다. 물론 얼마 전 아기 고양이 봄이는 끝내 세상을 뜨고 말았지만, 그래서 봄이는 우리 부부에게 아픔으로 남았지만 말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아프지 말아야 하고, 배고프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 지구별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서로가 아플 때면 보살펴주고, 배고프지 않게 먹을거리를 챙겨줘야 한다. 길고양이는 이렇게 인간에게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존재하나 보다.
지금 우리 집에서 임시보호 중인 두 자매는 연일 '깨방정'이다. 우리 집 둘째 애옹이는 마치 엄마처럼 두 녀석의 곁을 지켜준다. 셋이서 오손도손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흐뭇하다. 내가 결벽증만 아니면, 사는 곳이 좀 더 넓었으면 같이 살아가고 싶은데 아무래도 내게 넷은 무리다.
엄마 베리는 중성화수술을 받게 한 다음 방사했다. 남은 두 자매는 부디 좋은 양부모 만나 묘생역전 했으면 좋겠다. 둘이 아주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데, 둘이 같이 입양되면 더 좋겠다.
그리고 베리 가족 구조해서 살뜰히 돌보느라 지쳤을 아내가 이젠 좀 쉼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유석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