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요즘 뭐하세요. 저 부탁이 하나 있어서요. 혹 윤경(가명)이 아침에 학교 출근할 때 차 좀 태워주실 수 있으세요? 지하철은 환승 두 번에 마을버스까지 타야 돼 너무 힘든가 봐요."
중학교 교사인 며느리의 출근 라이딩을 당부하는 큰 아들의 전화였다. 어지간한 일은 카톡으로 말하는 녀석이 직접 전화까지 한 걸 보니 제 딴에는 마음이 급했나보다.
나는 2021년 9월, 삼십여 년의 직장생활을 끝으로 60세 정년퇴직을 했다. 요즘 내 가장 중요한 일과가 차로 아내 출퇴근 모시기인데, 이제 며느리 출근까지 맡게 되나 싶었다. '가족전담 기사' 타이틀이 어른거렸다.
며느리의 임신, 이게 웬 횡재인가
얼마 전 우리 내외와 아들 부부가 식사를 하는 자리에 며느리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내용물을 보고 우리 부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상자 안에는 두 줄이 선명한 임신 테스트기가 있었다. 결혼한 지 1년 만에 큰 며느리가 임신을 한 것이다.
우리 집안에 첫 손주가 태어난다는 사실에 며느리가 대견하고 고마웠다.
임신 3개월에 접어든 며느리는 입덧으로 고생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안타깝게 생각하던 차였기에 아들의 요청을 마다할 리 없었다. 망설임없이 '오케이'했다. 임신 초기는 태아의 자궁 착상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출퇴근에 시달리게 해서는 안 되는 일 아닌가. '백수 시애비의 임신한 며느리 출근 지원은 당연한 임무'라며 각오를 다졌다.
우리 집과 아들 부부 집은 한강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차로는 10분이 채 안 걸린다. 아내 일터는 아들 집에서 멀지 않다. 아침에 아내를 내려주고 며느리를 태우면 된다. 코스가 마침 맞아 큰 어려움이 없을 걸로 여겼다.
그렇게 며느리 운전 봉사(?)를 시작한 지 2주가 지났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불편함이랄까, 껄끄러움 같은 게 나타났다. '와이프 태워주러 나선 김에 며느리를 학교에 데려다주면 되겠지'라고 쉽게 생각했던 게 성급한 결정이었나 싶은 느낌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우선 내 아침 시간이 사라져 아쉬웠다. 평소 아내를 출근시키고 집에 오면 오전 9시쯤 됐고, 그때부터 나름 계획에 따라 시간을 보냈다. 오전 시간의 주된 일과는 영어 단어와의 만남이다. 대학 시절부터 최근에 정리한 것까지 영어단어와 문장을 읽고 외웠다. 치매 방지용으로 채택한 셀프 처방이다. 한두 시간 정도 영어와 접촉하면 머리가 맑아지고 상쾌했다.
며느리를 출근시키는 요사이 아침은 많이 달라졌다. 귀가 시간이 오전 10시를 훌쩍 넘긴다. 또 며느리가 퇴근할 무렵 학교에서 집까지 돌아오는 길의 교통 정체가 너무 심하다. 한 시간을 넘기는 건 예사다. 집에 오면 지친다. 일어나 세수도 않고 나가 2~3시간 운전을 하고 오면 몸과 마음이 축 늘어진다. 영어 단어고 뭐고 그냥 쉬고 싶다. 설거지와 빨래 개기, 음식물 분리수거 등 일상의 업무도 미룬다. 증발하는 오전 시간이 못내 서운하다.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며느리와 단 둘이 차에 있는 게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이건 정말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변수다. 며느리하고 둘이 같은 공간에 있다고 불편할 것이라고는 꿈도 꿔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며느리는 우리를 친정 부모처럼 살갑게 대했다. 그러니 평소 서먹함이나 불편함, 거리감같은 건 없었다고 자신했다. 내 입장에서 말하는 게 아니라 팩트다.
예를 들어 보자. 며느리는 결혼 후 지금까지 한 달에 한두 번은 우리 내외를 집으로 초대해 식사 대접을 했다(절대 강권하지 않았음). 유튜브 레시피를 참고로 해 늘 새로운 요리를 내놓는다. 우리 집이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쪽에 위치하고 있어 며느리가 집 근처에서 약속을 하는 날이면 걸핏하면 우리 집에 들른다.
약속 시간이 남았다고 오고, 일찍 마쳤으니 아버님 어머님 뵙고 싶다며 빵이나 과자같은 주전부리를 사들고 온다. 시어머니가 들락거리기 불편할까 봐 아예 자기네 아파트 카드키를 준다. 연휴나 휴가 때면 같이 놀러가자고 하고 실제 간 적도 있다. 청소기, 공기정화기, 빨래건조기 같은 가전제품 선물에다 걸핏하면 과일이나 정육을 보내기도 한다. 너무 자주 얼굴을 봐 솔직히 어떨 땐 우리 부부가 귀찮을 때가 있을 정도다.
'며느리=아들 아내', '며느리=남의 딸'이란 생각을 추호도 버린 적이 없던 나로서도 스스로 딸처럼 구는 며느리를 마다할 리 없다. 그게 착각이었나 싶었다.
며느리가 차를 타면 나는 일부러 말을 걸지 않고 눈 감고 자라고 한다. 태교에 도움이 될까 싶어 혼자 차 탈 때는 잘 틀지 않는 KBS 클래식FM을 들으며 간다. 잔잔한 음악만이 흐르는 차 안에서 며느리는 미동도 않고 눈을 감고 있고(자는 건지 아닌 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간혹 침을 삼키거나 헛기침을 한다. 아내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당신 의외네요. 왜 그렇지. 둘이 카톡도 자주하고 아주 친하게 지냈는데"라고 한다.
기껏 운전 봉사하는 게 뭔 대수겠나
친구들에게 내 얘기를 하면 "타는 며느리나 태워주는 시애비나 모두 대단하다"라고 한다. 며느리의 승차 기간은 여름 방학 전까지다. 한 달 정도가 남은 셈이다. 그러나 왠지 방학 이후에도 이 미션이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이다. 투덜거리지만 솔직히 내심 싫지 않다.
내 머리 속에는 내년 1월 출생 예정인 손주의 이름이 어른거린다. '돌림 자를 써야 하나, 엄마 아빠가 이런 이름을 싫어하지는 않을까'라는 신나는 상상으로 가득하다. 봄쯤이면 내 핸드폰 사진은 손주로 도배될 것이고 친구들의 타박 속에서도 손주 자랑에 빠진 할배가 돼있을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했다면 요즘은 한 아이가 출생하는 데 온 나라가 힘을 모아야 될 때 아닌가. 이럴진대 기껏 운전 봉사하는 게 뭔 대수겠나. 며늘님, 방학 후에도 주저 말고 말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