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평소의 로망으로 경험해보고 싶었던 카라반 여행의 목적지 포항으로 향했다. 한산한 고속도로를 4시간쯤 달려 포항 요금소에서 빠져나와 펼쳐지는 거대하고 낯선 도시의 매력이 운전자의 시선을 두리번거리게 했다.
동해안로를 따라 형산큰다리에 이르면 다리 건너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위용과 마주한다. 포항제철이 과거의 영화를 아직도 누리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장들을 지나치며 그곳을 일군 노동자들의 피와 땀에 경의를 표한다. 대번 이곳이 한국 경제산업의 1번지였음을 알 수 있다.
산업단지 포항? 이제는 멋진 관광지
해안도로를 지나다 바다에 놓인 미지의 다리가 멋져 보여 차를 돌려 유턴한 '장길리 낚시공원'은 안 가보면 후회했을 이번 여행의 첫째 가는 경치로 꼽을 곳이다. 외진 곳이라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길인데, 바다 위 길게 놓인 나무다리는 걷기 편하고 동해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산책길로 잘 설치해놓은 예술작품이란 생각이 들 정도이다.
다음 목적지로 구룡포시장을 찾아갔다. 근처 죽도 시장에 비해 작은 규모의 구룡포시장은 가게 앞 잘 진열된 박달대게, 홍게, 문어, 조개류 등이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구룡포 일대 거리에는 대개 집 간판이 유독 많았다. 지인을 통해 구매한 박달대게와 문어는 숙소로 정한 카라반 저녁 식사의 메인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시장 구경을 마치고 찾아간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는 일제강점기 시절 남은 80 여 채의 일본식 가옥이 있는 근대문화 역사거리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드라마 주요 배경 건물의 담벼락에서 주인공 공효진의 포즈를 너도나도 따라하느라 정신없다. 찍힌 사진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남자친구를 구박하며 자꾸 다시 찍어달라는 애정 섞인 투정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촬영지가 관광지가 되고 명소가 되는 K드라마의 위력을 또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다. 삭막한 아파트에서 벗어나 가족과 애인과 옛날 골목길을 누벼보는 것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다.
호미로를 따라 조금 지나면 구룡포해수욕장이 나오고 그 옆 구룡포 주상절리를 구경할 수 있다. 화산폭발로 용암이 분출되다가 갑자기 멈춘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데 포항 앞바다의 풍경도 함께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첫날의 이동을 마치고 숙소로 향한다.
전날 비가 꽤 와서 어느 정도 가뭄은 해소되었지만, 더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그 바람이 통했는지 늦은 시간 우두둑 모처럼 우렁찬 빗소리를 들었다. 카라반 지붕 위로 운치 있게 또 다른 분위기의 감성을 뿜어주는 빗소리는 자연이 만들어 준 ASMR이다.
다음 날 천천히 숙소를 정리하고 가본 곳은 우리나라 지도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호미곶이다. 한반도에서 해가 제일 먼저 뜨는 곳으로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고
랜드마크인 거대한 손바닥이 바다로부터 불쑥 나와 있는 곳이다.
그 손가락 위에 천연덕스럽게 미동도 하지 않는 갈매기 4마리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새우깡 따위에 자존심을 팔지 않고 꽃꽂이 호미곶을 지키고 있구나. 해안도로를 따라 올라가며 동해의 아름다움을 원없이 감상하며 마지막 목적지를 향했다.
호미곶의 좌측길을 따라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 이동하자 영일대해수욕장을 지나 환호공원이 보인다. 담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카이워크를 걷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겠다. 할 수 있겠다는 첫걸음과 다르게 나는 몇 10미터 못 나가고 흔들거리는 계단에 고소공포증이 밀려와 걷기를 포기하고 내려왔다.
포항의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향하는 길의 여정은 곳곳에 소소한 재미가 숨겨져 있는 기억에 남을 여행이었다.
산업단지로만 머리에 새겨진 포항이라는 도시가 관광도시로 손색없다는 느낌을 받으며 추억을 쌓았다. 조금 먼 거리, 길지 않은 시간의 일박이일이 동행자에게 눈이 시원해지고 입이 즐거워지는 몸과 마음 치유의 여행이 돼주었기를 기대한다.
과메기 나오는 계절에 호미곶의 갈매기가 추운 겨울날 여전히 상생의 손을 잘 지키고 있는지 다시 찾아 확인해보러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