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왜 어려울까요?" 이 질문에 소설가 장강명은 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논리나 어휘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남들 앞에 공적으로 나설 수 있는 공인이 되는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라고요.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글쓰기 수업에서 강조하는 게 있죠. 뭘까요? 쓴 글을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라는 거예요.
한 시민기자는 독자에게 글을 보여주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오마이뉴스>를 꼽았습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잽'을 날리기 가장 좋은 곳이라면서요. 잽을 '훅훅' 날리다가 강력한 KO 펀치를 날리는 복싱선수처럼 글쓰기 훈련을 할 수 있다고요.
그런데 무수히 많은 잽도 혼자 날리면 좀 지치지 않을까요? 팔을 맞게 뻗었는지, 발의 간격은 적당한지, 호흡은 어떻게 하는지 모른 채 잘못된 자세로 훈련 하고 있다면요? 운동하는 재미를 느끼기도 전에 그만 두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혼자가 아니라 옆에서 틀린 점을 알려주고, 응원하고, 격려하는 코치가 있다면 좀 더 잘 해 볼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요?
글쓰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누군가 옆에서 내 글을 정성스럽게 읽어주고 "좋다", "술술 읽힌다", "재밌다" 이런 말만 들어도 얼마나 기쁜가요. 나아가 "너의 그 이야기도 써봐라", "이런 대목이 더 궁금하다"라는 말을 들으면 더 쓰고 싶어질 겁니다. 내 글을 읽어주고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귀인을 만난 기분일 것 같아요. 여기 그 귀인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바로 배지영 작가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이에요.
돈은 받지 않는 글쓰기 수업
배지영 작가는 오마이뉴스와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야자 대신 저녁밥 하는 고딩 아들' 연재기사로 <소년의 레시피>를 썼고, '지방소도시 청춘남녀' 인터뷰를 써서 <우리, 독립청춘>을 냈거든요(이 글로 브런치북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달의 뉴스 게릴라상, 2월 22일상, 올해의 뉴스 게릴라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까지 시민기자로서 받을 수 있는 상도 다 받았습니다.
그후 20년간 해 온 밥벌이(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를 접고 전업작가가 되었어요. '아이들 스스로 자기 생각과 생활을 글로 쓰게 하고 싶었던' 작가는 글쓰기 수업에서조차 '도라에몽에 나오는 암기빵 같은 기능을 요구하는' 학부모들 앞에서 여러 해 좌절감을 맛봤습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바라보는 데가 서로 다르면 오해와 틈이 생긴다. 남아있는 길은 하나, 결별뿐이었다.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돈 받고 글쓰기 수업하는 세계로는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짐은 또 다른 다짐을 낳기도 하는 법이죠. 2018년 11월 군산 한길문고 상주작가로 일할 무렵 작가는 우연한 기회에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에세이 쓰기반'을 열게 되는데요. 이때의 목표는 단 하나, 나부터 재미를 느끼는 것이었대요. 글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호기심으로 반짝 거리는 눈빛을 보고 싶었다'라고 말합니다.
'돈 받고 글쓰기 수업하는 세계로는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만은 지키고 싶었던 작가는 에세이 쓰기반에 온 참가자들에게 돈을 받지 않는 대신 세 가지를 조건으로 제시했는데요. 숙제와 무결석 그리고 다른 사람과 자신의 글을 비교하지 않는 것이에요.
그는 '글쓰기는 말이나 글로 배우는 게 아니다. 자전거 타기나 아이돌 댄스처럼 몸으로 익혀야 한다'면서 '수련하듯 일정한 주기로 글쓰기 숙제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해요. 그렇게 20대부터 70대까지 모여 함께 글을 쓰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깨달은 것들이 전부 이 책 속에 담겨 있습니다. 작가는 혼자 재밌어서 글을 쓸 때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글쓰기의 매력을 알게 되고 이렇게 말합니다.
글쓰기는 퀵서비스처럼 결과물을 현관앞까지 배달해주지 않았다. 악천후를 각오하고 혼자서 걸어가는 사람에게만 저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고 암시해 주었다. 사람들은 눈물을 쏟으면서 쓰고 고쳤다. 고통을 끝까지 파고들면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지키는 힘이 생겼다. 타인에게 휘둘리는 일이 줄어들었다. 현실은 바뀌지 않아도 글 쓰는 자기 자신은 달라졌다. 글쓰기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이유가 사라졌으므로 날마다 쓰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작은 이야기를 써도 될까?' 의심하던 사람들이, 한 문단을 쓰는데 1시간이 걸리던 사람들이, 글 한 편을 쓰는데 2주를 질질 끌려다닌 사람들이 '글을 다 썼을 때의 뿌듯함과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며 작가는 '괜히 글쓰기 수업을 벌였다는 후회가 가벼워졌다'고 해요. 그리고 이런 뻔한 말도 계속 했대요. '글쓰기는 행복과 같아서 강도보다는 빈도'라는, 그래서 '글쓰기는 품질보다 생산량'이라고요.
이 말이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니라는 걸 작가는 자신의 생산량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의 출간 목록만 봐도 알 수 있죠.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2018년 4월), <내 꿈은 조퇴>(2020년 6월), <군산 -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2020년 7월), <환상의 동네서점>(2020년 9월), <다녀왔습니다, 한 달 살기>(2021년 5월),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2021년 10월) 그리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2022년 4월)까지 거의 매년 1년에 2권 이상의 책을 쓰고 있어요. 올해 하반기에 또 두 권의 책이 나올 예정이고요.
쓰는 용기, 쓰게 하는 용기
올해로 에세이 쓰기반 5년차 '나가기가 없는 단톡방'이 현재 4개, 43명의 사람들이 계속 쓰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해요. '지루하고 힘들어도 글을 완성하고 환희를 만끽한 사람들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는 이 책을 덮으면서 한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용기'에요. 오랜 시간 탈모로 고민했던 깡양님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갑작스러운 남편의 사별에도 꿋꿋이 한 권의 책을 완성했던 나비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쩌면 글쓰기는 용기가 전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누군가 용기 있게 써준 글을 통해 위로를 받을 때가 있잖아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은 위안. 세상을 향해 다시 한 발 내디딜 수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는 글이요. 작가가 용기 내 쓴 글은 타인의 용기를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글은 나도 쓸 수 있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들어주는 글도 그렇다고 봅니다. 그런 마음으로 스스로 글을 쓰는 것, 그 글을 타인에게 공개하는 것 그리고 독자들의 반응을 견디는 것 모두 '용기'가 가능케 하는 일들이니까요.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지금 한번 용기 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무엇을 쓸지, 어떻게 쓸지 또 그렇게 쓴 글은 어떻게 책이 되는지' 짚어주는 배지영 작가의 글은 '내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꾸준히 쓰고 책을 펴내는 데' 꼭 필요한 가이드가 될 겁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