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 서후면 교리는 안동역과 가깝다. 안동역 앞 송야교(솔밤 다리)를 건너 봉정사 쪽으로 조금 가다 왼쪽 들판 너머 산밑으로 가면 아담한 마을을 만난다.
이 마을에는 안동권씨 복야공파조 단소, 단계 하위지 종택(丹溪 河緯地 宗宅),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 1532~1587) 선생 구택(舊宅)과 관물당(觀物堂)이 있다. 송암 선생은 퇴계 이황의 제자이자 평생 초야에 묻혀 학문과 굳은 지조로 '계문삼처사溪門三處士'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조선 선조 때 권호문 선생은 관물당을 지어 후학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경북민속문화재 제160호이다.
퇴계 제자인 송암 선생은 당시 강호고사(江湖高士)로 알려졌고, 높은 학행(學行)으로 칭송을 받았다. 1561년 명종 때 진사시에 합격했지만 연이은 부모상에 따라 관계 진출을 단념하고 가까운 청성산 기슭에 무민재(無悶齋)를 짓고 후학을 길렀다.
송암 선생은 약관 무렵에 퇴계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뛰어난 학행으로 천거돼 집경전 참봉, 내시교관 등에 임명됐으나 일체 나아가지 않았다. 송암 권호문 선생은 서재를 '관아재'觀我齋, 그리고 당호를 '집경당'執競堂으로 부르다가, 퇴계 선생에 의해 집경당의 당호를 관물당으로 고쳐 부르게 된다.
관물은 '사물을 관찰할 때는 마음으로 보는 것만 못하고 마음으로 보는 것은 이치로 보는 것만 못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선생 사후, 그의 문인들이 청성서원(靑城書院)을 세워 제향했고 경기체가 <독락팔곡 獨樂八曲>, 연시조 <한거십팔곡 閑居十八曲> 등이 그의 저서 <송암집松巖集>에 실려있다.
청성서원은 안동지역의 인문 지리지인 <영가지>(永嘉誌)를 편찬한 곳으로 의미가 깊다. 1781년 서원 원장인 귀와 김굉 선생이 여러 선비와 함께 안동의 역사서인 영가지를 교정하고 목판본으로 간행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모임을 가졌다.
교리 마을에는 사육신인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 1412~1456) 선생의 종택이 있다. 종택에는 단계 선생을 배향한 창렬서원(彰烈書院)과 창렬사(彰烈祠)가 자리한다.
단계 선생은 1456년 성상문, 박팽년,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과 함께 단종 복위에 힘쓰다가 발각돼 거열형을 당한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성품이 강직하여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단계는 세조의 녹(祿)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세조가 즉위한 해부터의 봉록을 따로 쌓아두고 먹지 않을 정도로 강직했다.
특히 국문장에서 세조가 "잘못을 했다"라는 말을 한다면 용서해 줄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선생은 끝내 듣지 않고 죽음의 길을 걸었다. 선산(지금 구미) 사람인 단계는 숙종 때 복권돼 이조판서에 추증됐고, 경북 구미 월암서원, 의성 충렬사, 강원도 영월 창절사 등에 제향됐다.
관물당은 안동역에서 2.5km, 자전거로 불과 5분 거리이다. 단계종택도 관물당에서 2분 거리다. 청성서원은 솔밤다리를 건너 봉정사 반대 방향인 풍산읍 막곡리 쪽으로 가면 된다. 도로 바로 옆 언덕 위에 위치해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쉽다. 안동역에서 2.1km 거리다.
송암구택(관물당) : 안동시 서후면 교리향교길 45-18(교리 207)
단계종택(창렬서원, 창렬사) : 안동시 서후면 교리새마을길 73(교리 261)
청성서원 : 안동시 풍산읍 웃막실길 10 (막곡리 159) 덧붙이는 글 | 자전거로 떠나는 안동 문화 여행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