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친구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래요."
가족이 모여 앉은 토요일 저녁,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 둘째가 말했다. 교통사고와 응급실이라는 단어에 모두가 철렁해서 어떻게 사고가 난 것인지, 어떤 친구인지 물으니 지금 막 소식을 전해 들어 사고 경위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아이도 친구의 친구라 한두 번 만난 사이라고 말했다.
아이의 친구가 별일 없이 깨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잠시 기도를 했다. 잠자리에 들기 위해 각자 방으로 들어간 지 얼마나 지났을까, 둘째가 가만히 거실로 나와 소파에 푹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걱정된 마음에 아이 곁에 앉는데 둘째가 말했다.
"엄마, 그 친구가 죽었대요."
열다섯 아이가 처음 겪은 소식
둘째는 멍한 눈으로 조용히 쓰러져 있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벌떡 일어나 앉아 큰 숨을 몇 번 내쉬었다. 너무 슬프고 당황스러운 상황이라 나도 뭐라 아이를 위로해야 할지 잠시 멍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을 접한 둘째의 마음도 얼마나 충격일까 싶어 아이 곁에 가만히 앉아 있어 주었다.
둘째는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고 해도 한두 번 만난 적이 있는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열다섯 인생 최초로 경험한 죽음이다. 갑자기 모든 빛이 사라진 것 같은 아이의 얼굴을 보는데 이번 일이 감수성이 예민한 둘째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남길 것 같은 두려움이 일었다.
다음 날 아침 둘째의 방문을 열어보니 이미 깨어있는 아이가 침대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아이의 방 한쪽 편에 자신의 라이프 박스(Life Box, 입양과 관련된 기록, 물품, 사진 등 아이의 역사에서 중요한 것들을 담아 둔 생애 상자)가 놓여있고 주변에는 그 안에서 꺼낸 여러 사진과 물품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밤새 상자 안에 여러 가지를 꺼내 보았나 보다.
입양아동(입양인)들은 애완동물의 죽음이나 가까운 이의 죽음, 부모의 이혼 혹은 먼 곳으로의 이사를 통해서도 상실이 건드려질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막상 라이프 박스를 밤새 뒤적거린 흔적을 보니 가슴이 저렸다.
친구의 느닷없는 죽음과 이별 앞에서 아이는 생부모와의 이별을 떠올린 것 같았다. 내용은 다르지만 '느닷없는 이별'이라는 점에서 아이의 안테나는 마음속 같은 지점에 주파수를 건넨 것 같았다.
일요일 하루 종일 아이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일어날 힘도, 일어날 이유도 못 찾은 걸까. 점심 몇 숟갈을 뜨더니 저녁도 거른 채 다시 드러누워 있다. 이별에 이토록 강력하게 반응하는 안테나를 가지고 계속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커다란 송곳이 내 심장을 깊이 찌르는 것만 같았다.
"어제 한숨도 못 잤어?" 아이 침대에 걸터앉아 부드럽게 등을 쓸어내리는데 아이가 고개를 더 깊이 파묻었다. 눈물범벅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열다섯의 마음인 거다.
"엄마도 처음 친구를 떠나보낼 때 정말 힘들었어, 너무 아프더라. 네가 어떤 마음인지 조금 알 거 같아."
이불에 얼굴을 비비며 눈물을 닦는 아이에게 "마음껏 울어, 슬플 때는 우는 거야"라고 덧붙여 주었다. 가만히 아이 곁에서 등을 쓰다듬어 주다가 금세 울음을 그칠 것 같지 않아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실컷 울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마음껏 울어도 되는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이의 슬픔에 대처하는 법
존 제임스, 러셀 프리드만, 레슬리 랜던 매슈스가 쓴 책 <우리 아이가 슬퍼할 때>를 보면 부모가 아이의 슬픈 감정을 억압하거나 다른 감정으로 대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끼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책을 읽으며, 다른 입양 부모님들을 상담하며 많이 했던 말이지만 막상 내 아이의 슬픔 앞에서 의연하게 대처하기가 참 쉽지 않다.
아이가 경험하고 느끼는 슬픔의 크기를 함부로 축소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슬픔에 젖어있는 아이, 무거운 감정에 눌려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를 보자니 그 손을 잡아 이끌고 어디든 데리고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의 기분을 좋게 바꿀 만한 그 무엇이라도 당장 대령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참기로 했다. 아이가 먼저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아이는 앞으로도 수많은 이별을 경험하며 그때마다 무너질 듯 아파할 테지만 결국 자신을 추스르는 힘도 조금씩 배우게 될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별은 언제라도 황망한 일이지만, 인생이 건네는 여러 파도를 적절히 넘어서는 법도 배우게 될 것이다. 아이 곁에는 가족이 있고, 가족의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 편이니 말이다.
일요일 자정이 가까운 시각, 아이가 조용히 찾아왔다. 이런 마음으로는 학교에 가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멍한 한숨을 쉬었다. 엄마가 어떻게 도와줄까 물었더니 바람을 쐬고 싶다며 자신을 데리고 나가 달라 했다. "그래 그러자, 엄마랑 드라이브 가자"라고 답해주곤 다 큰 아이를 재웠다.
덧붙이는 글 | 개인이 운영하는 무료 뉴스레터인 <세상의 모든 문화>에도 발송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