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방송스태프노조와 시민단체들이 27일 서울 마포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S 드라마 ‘미남당’을 규탄하고 있다.
방송스태프노조와 시민단체들이 27일 서울 마포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S 드라마 ‘미남당’을 규탄하고 있다. ⓒ 김성욱
 
"'미남당' 뿐만 아니라 아직도 드라마 현장에선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13시간씩 4회차, 16시간씩 3회차를 찍는 현장도 있습니다. 그럼 스태프들은 많아야 3~4시간 잘 수 있습니다. 법 지키라고 요구했더니 계약 해지됐습니다.

제작사 쪽에선 저희들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겠다는 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저는 '미남당' 행동이 실패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이번에 실패하면, 다른 스텝들도 앞으로 더는 발언하지 못하고 겁먹을 테니까…"


KBS 드라마 '미남당'의 스태프로 일했던 20대 A씨는 첫 방영을 앞둔 27일 제작현장이 아닌 기자회견장에 서야 했다. A씨는 지난달 31일 드라마 제작사에 노동시간 단축, 휴게시간 보장 등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요구하다 일방적으로 재계약이 거부됐다.

'미남당' 스태프 중 A씨처럼 계약이 해지된 스태프가 10여명에 이르면서 원청인 KBS와 드라마 제작사 피플스토리컴퍼니·몬스터유니온의 '집단 해고' 논란이 일었다. A씨는 현재 실업 상태다.

드라마 연출 PD "서너 시간 자는 스태프들... 그럼 사람 또 죽는다"
  
 방송스태프노조와 시민단체들이 27일 서울 마포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S 드라마 ‘미남당’을 규탄하고 있다.
방송스태프노조와 시민단체들이 27일 서울 마포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S 드라마 ‘미남당’을 규탄하고 있다. ⓒ 김성욱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하루 노동시간은 8시간, 연장 노동은 주 12시간을 넘길 수 없고, 8시간 노동할 경우 1시간의 휴게시간이 발생한다'는 기본적인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고발이 또 나왔다. 드라마 제작 스태프는 일당제이기 때문에 제작사가 촬영일수를 줄이려는 데서 반복되고 있는 문제다.

방송 스태프들이 제작사의 업무지시를 받는 '노동자'라고 규정한 최근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제작사들은 스태프들이 노동자가 아닌 '프리랜서'라고 버티고 있다.

이날 서울 마포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열린 '미남당' 규탄 기자회견에서 A씨는 "'미남당'은 아주 평균적인 드라마 노동 현장"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 있던 드라마 PD도 공감했다. '전원일기', '커피프린스 1호점' 등을 연출한 이은규 PD도 "스태프들이 죽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 노동시간은 양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만약 스태프들이 '한 다섯 시간은 잔다'고 얘기했으면, 이 자리에 오지 않았을 거다. 근데 서너 시간 잔다고 하더라. 그럼 또 사람 죽는다. 또 죽을까봐 왔다."

이은규 PD는 드라마 업계의 고질적인 과로에 "죄의식"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한 시간 분량 드라마 주2회 방송'이라는 살인적인 관행을 만든 업계 선배 중 하나로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16년 드라마 제작의 장시간 노동을 고발하며 스물일곱에 세상을 떠난 고 이한빛 PD를 언급하기도 했다.

"한빛의 죽음 이후 그나마 드라마 노동자들도 주52시간제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다. (그게) 앞으로 많은 사람을 살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니 주52시간제마저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표 '노동시간 유연화'에 떠는 드라마 스태프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PD 말처럼 이번 '미남당' 사태는 최근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 논란과 직접 맞닿아있다. 앞서 이한빛 PD의 죽음 이후인 지난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방송업은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됐다. 방송 노동자도 1주일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연장노동을 12시간으로 제한한 주52시간제를 적용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난 23일 고용노동부는 연장근로 정산기간을 주 단위가 아닌 월 단위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월 평균만 맞추면 1주일 최장 노동시간이 90여 시간까지 늘어날 수 있는 방식이어서 파장이 일었다. 재계는 노동시간의 선택권을 늘릴 수 있다며 반기고 있지만, 노동계는 장시간 노동을 장려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관련 기사: 논의도 없이... 윤석열정부 노동정책 끼워넣기는 국민 '기망' http://omn.kr/1zj7k ).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부 발표에 대해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주 52시간제 유연화가 대선 공약이었다는 점에서 철야 등 초장시간 노동이 고착화된 드라마 업계 노동자들은 더 불안할 수밖에 없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윤지영 변호사는 통화에서 "스태프들은 일당제이기 때문에 제작사에선 어떻게든 촬영일수를 줄이고 하루치 촬영(시간)을 늘리려고 한다"라며 "연장근로의 단위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제작사가 훨씬 더 마음대로 촬영시간을 조정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현행 주52시간제에서도 '미남당' 같은 사례가 여전한데, 노동시간이 지금보다 더 유연해지면 드라마 노동 현장에도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란 속에 '미남당'은 이날 첫 방송될 예정이다. 시민사회 공동행동(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회,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문화예술노동연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은 "공영방송인 KBS가 제작사에 책임을 넘기며 방송을 강행하는 것은 유감"이라며 "시청자들에게 '미남당' 시청거부를 제안할 것"이라고 했다.

#미남당#노동#드라마스태프#노동시간유연화#고용노동부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