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고하도 '나이 계단'에 가본 적이 있는가? 북항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고하도에 내려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목이다. 기다란 침목으로 만든 계단 하나하나마다 1세, 2세, 3세 차례대로 나이가 쓰여 있다. 언덕 끝 마지막 계단은 150세다. 쉴 참도 없어 한꺼번에 올라채려면 상당하다. 중간에 옆으로 빠지는 샛길이 있긴 하다. 82세 계단은 왼쪽으로 용오름 둘레 숲길과 이어진다.
다들 82세에서 왼쪽으로 빠지지 않고, 끝까지 잘들 오른다. 사람들은 150세 나이 계단을 밟고 오르면서 '몇 세까지 살고 싶다'고 기원할까? 한국인 기대수명은 해마다 늘어난다. 2000년엔 75세이던 것이 2020년엔 83.5세가 되었다. 식생활과 의술 발달로 지금 태어난 아이들은 150세까지 살게 된다고 예측하는 학자도 있다. 그런데 계속 수명이 늘어나는 게 꼭 복된 일이자 바람직만 한 일인지 의심이 생긴다.
나이 들어도 품위 지키면서 사는 법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인구 16.5%(2021년)를 차지하는 고령사회다. 2025년이면 그 비율이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고령사회 선두주자 전남은 그 비율이 23.5%로 진작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더군다나 지난해 한국은 출생아 수가 사망자 수보다 적어지는 인구 데드크로스를 만났다. 이제 우리는 '인구 수축사회'와 '초고령사회'를 한꺼번에 받아들이며 겪어내야 한다.
나이 많은 사람 수가 갈수록 많아지는 고령사회는 나이 든 사람들이 편안한 사회는 아니다. 나이 먹은 사람이 우대받는 건 지하철이나 박물관 입장 때뿐이다. 노후 자금도 문제이지만 노인들이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고 자존감을 지키며 노년 생활을 영위하려면 수많은 난제를 넘어서야 한다. '장수(長壽)'를 오복 중 첫 번째로 꼽던 시절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고, 요즘은 '재수 없으면 120세까지 사는 세상'이란 역설 개그가 나도는 시대다.
나이 들어서도 품위를 지키며 당당하게 사는 길은 무언가.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 일본'은 우리의 거울이다. 일본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8.4%(2020년)나 되는 세계 최고의 초고령사회 국가다. 작가 소노 아야코(1931~)는 68세 때 쓴 <나이듦의 지혜>에서 '당당하게 나이 들기 위해 갖추어야 할 7가지 지혜'를 말한다.
"자립할 것, 죽을 때까지 일을 가질 것, 공부하고 자녀와 잘 지낼 것, 돈에 얽매이지 않는 정신을 가질 것, 늙음·질병·죽음과 친해질 것, 신의 잣대로 인생을 볼 것."
어느 것 하나 금과옥조 아닌 게 없다. 7가지 중 한 가지라도 제대로 갖추고 있다면, 아니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바람직한 노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한다고 '돈에 얽매이지 않는 정신'을 가질 수 있게 되겠나? 힘들여 애쓴다고 '늙음 죽음 질병과 친해질 수' 있을까. '신의 잣대로 인생을 보는 눈'은 깨달음을 얻은 도인의 경지에 이르러야 가능할 일이다.
장자는 대종사 1장에서 도를 깨달은 진인(眞人)이 되려면 '목구멍으로 숨(息以喉)을 쉬지 말고, 발뒤꿈치로 숨(息以踵)을 쉬라'고 말한다. "보통 사람의 숨은 목구멍으로 하기에, 마치 남에게 굴복하는 자가 게우는 듯 헐떡이는데, 진인의 숨은 발뒤꿈치로 하기에, 깊고도 깊다."(양회석 교수 해석) 배꼽 아래 단전보다 훨씬 더 낮은, 몸 제일 끝부분인 발뒤꿈치까지 숨을 끌어내리라는 숨쉬기 수련이다.
고하도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용오름 둘레 숲길은 82세 계단으로 바로 이어진다. 70세, 50세, 10세... 내려가기는 금방이다. 흙에 입맞춤하듯 숨을 발바닥까지 끌어내리며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