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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첫 모임,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이도 있고, 영어 학원을 운영하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대학생 아들을 두었고, 다른 이의 아이는 유치원에 다닌다. 그림책을 만들어 볼까 하는 바람에 찾아온 이도, 아이에게 그림책을 잘 읽어주고 싶은 마음에 문을 두드린 이도 있다.

"다들 그림책이 좋다 좋다 하는데, 도대체 뭐가 좋다는 건지 몰라서 한번 와봤어요."

어떻게 이 모임에 오게 되었는지 물었는데, 너무 솔직한 대답에 순간 당황했다. 그래서인지 뇌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입이 제멋대로 말을 내뱉었다.

"아마, 이 모임이 끝날 때 가장 그림책을 좋아하게 되실 거 같네요."

내 대답에 그도 놀랐겠지만 사실 더 놀란 건 나다. '이렇게 장담하는 말을 한다고? 미쳤어? 너 자신 있어?' 이제 겨우 첫 시간이다. 게다가 나는 이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지 않은가. 발제를 시작해야 하는데,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어쨌거나 모임은 시작되었다.

처음 하는 그림책 공부

"혹시 아이코노텍스트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간단히 소개를 마치고 미리 준비해온 질문을 던졌다. 참여자들이 얼마나 그림책에 대해 알고 있는지 가늠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이건 100% 전혀 모르는 말이라는 뜻이다.

아이코노텍스트는 그림책의 글과 그림을 기호학적으로 분석할 때 쓰는 용어다. 글로도 그림으로도 보기 어려운 '제3의 텍스트'를 지칭한다. 넓게는 글, 그림, 책을 이루는 물리적 요소(표지, 판형 등)들의 삼중적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그림책 이론서라 불리는 거의 모든 책에는 아이코노텍스트에 대한 설명이 있다. 그만큼 기본적인 개념이다.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한 장면 글에서는 '이런 장난'이라고만 서술되어 있어서 그림을 보지 않고는 어떤 장난인지 알 수 없다. 이런 게 바로 아이코노텍스트.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한 장면글에서는 '이런 장난'이라고만 서술되어 있어서 그림을 보지 않고는 어떤 장난인지 알 수 없다. 이런 게 바로 아이코노텍스트. ⓒ 시공주니어

하지만 업계(?) 용어라는 게 다 그렇듯이, 그 분야 밖에 있는 사람들에겐 생소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처음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선배들이 하는 말이 외계어 같다고 생각했었다. 당시엔 무슨 말인지 물어볼 용기도 없어 몰래 노트에 적은 뒤 집에 가서 이리저리 책을 찾아보며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건 출판업계에 들어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한 명쯤은 그림책에 살짝 발(?)을 담가본 이가 있을까 했는데 아니었다. 안 그래도 처음 읽는 이론서가 어렵다는 소리를 들었던 터라, 최대한 쉽게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발제를 이어갔다.

'우리 아이 1퍼센트 만들기' 모임과 이 모임이 다른 점

"어제 모임이랑 이 모임은 분위기가 정말 다르네요."

모임 중간에, 한 참여자가 어제 다녀온 모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모임명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 아이 1퍼센트 만들기'. 그런 모임이 있다니 신기했다. 하긴 강남에 사는 내 친구 중에 한 명도 적지 않은 돈을 주고 1퍼센트 만들기 비슷한 강좌를 들었다고 했다.

지역에서 유명한 학원에 보내려면 레벨테스트를 받아야 하는데, 초등학교 때 중학교 과정을 다 떼야 통과할 수 있다고. 대학 입시 요강을 줄줄이 꾀고 있는 그 친구의 아이는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이다. 나는 '우리 딸, 대학에 꼭 가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며 사니, 모임 중에 그런 교육관이 자연스레 드러났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책을 읽히는 목적이 다르다는 것도 느꼈을 테다. 독서는 나와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어떤 부모는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책읽기를 강요한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목적과는 다른 결이다.

참여자의 교육관만큼 그림책을 보는 관점도 다 제각각이다. 예상치 못한 질문들이 튀어나오고, 내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기도 한다. 그림책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참여자들은 아주 기본적인 것을 물어보기도 한다. 엄마가 인문학 책을 많이 읽는 게 아이와 그림책을 볼 때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하자, '인문학이 뭔가요?' 하고 물어보는 식이다.

그럴 때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말문이 막힌다. 알고 있는 것도 당황하니 아무 말 대잔치다. 이런저런 질문들에 모두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안다. 정답을 다 알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꼭 종료시간이 1분 남은 시험지를 손에 쥔 것 마냥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림책 모임 장소인 작은 도서관의 세미나 룸 소규모 모임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그림책 모임 장소인 작은 도서관의 세미나 룸소규모 모임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 최지혜

선생이란 단어의 무게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서 혼자 떠들어댔더니 금세 에너지가 바닥났다. 너덜너덜한 상태로 집에 가려고 짐을 싸고 있는데, 한 참여자가 나를 불렀다.

"선생님, 있잖아요. 아, 선생님이 아닌데 자꾸 선생님이라는 말이 나오네요."

"하하, 그러게요. 그냥 이름 불러주세요."


나는 오래전부터 선생이란 단어를 버거워했다. 가르치는 일의 무게를 깨달은 이후엔 더욱 그랬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면 내 바닥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럴 때마다 찾아 읽은 책이 있다. 바로 <가르칠 수 있는 용기>다. 미국의 존경받는 교육자 파커 J. 파머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좋은 선생은 자신의 자아, 학과, 학생을 생명의 그물 속으로 한데 촘촘히 엮는다. 자신의 자아에 튼튼하게 연결되어 있는 교사는 가르치려는 마음을 잃지 않으며, 학생들의 가슴을 열고 들어가 진정한 가르침을 창조한다...... 가르침의 용기는, 마음이 수용 한도보다 더 수용하도록 요구당하는 순간에도 마음을 열어 놓는 용기이다."

선생이란 말을 들으니 뭔가 많이 배웠다는 의미인 것 같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부담스러웠다. 여전히 실수에 너그러울 만큼 내 자아는 튼튼하지 않고, 마음을 열만 한 용기도 없다. 그런데 나는 뭘 믿고 그림책을 좋아하게 만들어주겠다고 장담까지 한 것일까?

"여보, 괜찮아?"

퇴근하고 집에 온 남편이 걱정스레 묻는다. 내가 영혼이 탈탈 털린 표정으로 소파에 널브러져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첫 날이라 힘들었나 보네. 내가 설거지랑 정리랑 다 할 테니까 들어가서 쉬어."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 어쩐 일로 일찍 집에 왔다. 한껏 전문가인척 하느라 애썼을 아내가 걱정되었나 보다. 남편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 때가 많다.

남편에게 다 맡기고 방에 들어가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이 모임 잘 될 수 있을까? 아니 나, 잘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제 개인 브런치에도 같은 내용으로 계속 연재하려고 합니다.


#그림책#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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