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 융기 지형이 비바람에 의한 오랜 침식으로 탄생한 '헤르멘차브'를 떠난 고조선유적답사단 일행의 다음 목적지는 '신진스트(Shinejinst)이다. '헤르멘차브'도 '신진스트'도 몽골 고비 사막에 위치한 지역 이름이다. 몽골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해외여행 갔다고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몽골 고비사막 여행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듬성듬성 나 있는 풀과 자갈밭 길, 먹을 음식과 마실 물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낭패당하기 십상이다. 평균고도 1580m인 몽골고비 사막에서 텐트를 치고 자려면 침낭이 필수다. 고비사막에서 휴가를 보낼 거라는 말을 들으면 무덤 속에 있던 마르코 폴로가 뛰쳐나와 말릴지도 모른다. 동행했던 이수형씨가 일주일간 고비사막여행을 한 소감을 말했다.
"남들이 안 해본 고비사막 단독 횡단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고조선유적답사단에 합류했지만 며칠간 고비사막을 여행하면서 그 계획을 포기했어요. 고비사막이 이렇게 넓고 험한 곳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동방의 존재를 유럽인들에게 알렸던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 마르코 폴로와 많은 여행자들은 고비사막의 엄혹한 환경을 여행하며 갖은 고초를 겪었다.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의 동방으로 가는 여행길은 길고도 험했다.
수없이 죽음의 문턱을 넘었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날을 끝없는 사막에서 헤맸다. 마르코 폴로는 병에 걸려 약 일 년간 여행을 중단하기도 했으며, 도적 떼에게 가지고 간 물건의 일부를 약탈당하기도 했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 지금은 괜찮을까? 아니다! 차로 몇 시간을 달려도 사막밖에 안 보일 때도 있고 2차대전 당시 러시아군이 사용했던 푸르공(승합차)이 수시로 고장 나기도 한다. 밥을 짓기 위해 사용할 물 외에 물을 아끼기 위해 절에서 공양하는 것처럼 식기 씻은 물로 숭늉을 대신하고 남는 물로 양치하기도 한다. 덕분에 물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를 재인식하기도 한다.
결핍이 주는 고마움을 깨닫는 곳이 고비사막이기도 하다. 물 몇 통으로 밥을 하고 겨우 양치질을 하며 언제 어디서든 물을 사용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마을이 나타나지 않으면 외부와 통신이 두절되어 문명 세계와 단절되기도 한다.
문명 세계와의 단절이 꼭 불편하기만 할까? 아니다. 단절을 통해서 나를 찾기도 하고 언제나 소통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3년 전 남미여행할 때 겪었던 불편한 이야기다.
일행 중 한 명은 35일간의 남미여행 기간 단 하루도 카톡을 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몸은 남미에 왔지만 마음은 한국에 있었다. 여행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떠나야 한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교감하고 그 사람들의 생활상을 들여다보며 이해할 줄 알아야 비로소 현지인의 거울을 통해 나를 볼 수 있다.
눈만 뜨면 카톡으로 통화하며 핸드폰으로 촬영한 사진만 전송하는 지인은 스페인군에게 몰살당해 폐허가 된 잉카유적을 보고 "에이! 돌무덤밖에 없네"라는 말로 나를 실망시켰다.
몽골은 어디를 가도 가축을 기르기 때문에 모기가 극성을 부리기도 한다. 텐트를 치고 모기를 쫓기 위해 마른 쇠똥을 주워 모깃불을 피우면 모기가 가까이 오지 않는다. 텐트 인근에 널린 쇠똥을 주워오자 일행을 안내한 몽골 가이드 저리거씨가 "몽골 사람들은 쇠똥불에 감자를 구워먹어요"라고 말했다. 활활 타는 쇠똥불에 감자를 구워먹었더니 약간 오묘한 냄새가 나지만 먹을 만했다.
모래사막에서 일주일간 세수도 못 하고 지내던 일행 앞에 오아시스가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일행 모두가 옷 입은 채 물에 뛰어들어 세탁 겸 세수를 하기도 했다. 모래사막 때문이라고 인정해서인지 아니면 포기했는지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는다. 몽골사막 아니면 어디서 이런 경험을 할 것인가.
운전사들이 GPS를 보며 길을 찾았지만 세 번이나 같은 사막에서 빙빙 도는 동안 풀 뜯던 낙타들이 일행을 쳐다본다. 낙타를 제외한 사람과 동물들이 보이지 않는데 한 자리에서 빙빙 도는 모습이 한심해서일까?
사막의 주인 낙타는 사막에서 유용한 동물
사막의 배로 알려진 몽골 쌍봉낙타는 티메라 부른다. 고비에는 약 10만 마리의 쌍봉낙타가 있다. 덥수룩한 울코트를 입은 모습이지만 여름 털갈이 시즌이어서인지 어떤 낙타는 지저분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낙타를 만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침을 뱉기도 하기 때문이다. 낙타는 유지비도 적고 아주 유용한 동물이다. 물 없이 일주일, 음식 없이 한 달을 생존하기도 한다. 최고 250kg을 실어 나르기도 하고 1년에 5kg, 낙타유 600리터를 생산한다.
낙타의 상태는 등에 난 혹을 보면 알 수 있다. 혹이 높고 딱딱하면 건강이 좋다는 의미이지만 혹이 축 처져 있으면 음식과 물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대부분의 낙타가 순하지만 매년 1~2월 교배기가 다가오면 수컷 낙타는 난폭해진다.
자연을 사랑하는 몽골인들의 풍습, 신목숭배사상
'신진스트'로 가는 길도 험난해서 푸르공이 달리지 못한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하는 수 없어 텐트를 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본 순간 1천 년은 됐음 직한 거목 한 그루가 사막 중앙에 서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인근 산에 오보가 세워져 있는 가운데 나뭇가지에는 파란색 하닥이 걸려있고 껍질 틈새에는 지폐가 꽂혀있었다. '오보'는 몽골초원지대에 있는 돌탑으로 우리의 '서낭당'과 같으며 '하닥'은 주로 파란색 천을 나무나 돌에 감은 것이다. 무사안녕을 빈다.
몽골인들은 신목(神木)을 숭배한다. 고대 몽골어로 '사글라가르 모돈(Saglagar Modun)이라 하는데 사글라가르(무성한 가지)와 모돈(나무)의 합성어로 오늘날 오드강모드(무녀목-巫女木)에 해당된다. 북방민족들은 특정 수종에 속하는 나무만을 신목 즉 샤먼 나무로 간주하는 습성이 있다. 자작나무, 버드나무, 소나무, 상수리나무가 신목에 해당하며 이들은 약리효과가 있다.
신라 천마총의 천마도는 자작나무껍질 위에 그린 것이다. 자작나무 껍질은 신위(神位)나 샤먼의 인형을 보관하는 통으로 사용되며 자작나무에 기생하는 버섯이 암에 효능이 있는 차가버섯이다.
하늘과 땅과 인간을 중심으로 삼라만상과 조화를 꾀했던 샤머니즘의 우주관을 지켰던 칭기즈 칸은 "물에 오줌을 눈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대법령을 제정했다. 칭기즈 칸의 전통이 내려와서인지 몽골은 국토 전체가 깨끗하다.
5대양 6대주를 돌아보며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났지만 몽골 사람들만큼 친절한 민족을 쉽게 만날 수 없었다. 길을 묻기 위해 게르를 찾아가면 과자와 함께 따뜻한 수태차를 대접해준다. 이는 드넓은 국토를 오가며 어려울 때 서로 돕는 노마드들의 생존을 위해 생긴 전통이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불편하고 볼 것 없는 몽골은 왜 자꾸 가요?" 내 대답은 하나이다. "몽골은 우리 문화의 뿌리를 간직한 보고이고 드넓은 초원에서 자유를 느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