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더 무더운 여름을 맞이하게 되면서 누구나 출근 복장이 신경 쓰이는 요즘이다. 여름 출근 복장과 관련해 최근 트위터에서는 '크롭티 출근룩'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공공기관 행정 인턴이 크롭티를 입고 출근해 인사담당자가 난감했다는 내용이다.
해당 글에는 여러 댓글이 달렸는데 '공공기관'의 조직문화를 고려할 때 크롭티가 출근룩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개성이 강한 젊은이들이 조직에 하나 둘 들어오며 이처럼 옷차림에도 위와 같은 고민 사례가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기성 직장인들은 개성보다는 사회적 가치관을 우선해야 한다는 정보를 습득하며 사회화되었다. 또 최근까지 공공기관과 기타 사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수직적·보수적인 조직문화를 공유했기 때문에, 별 무리 없이 사회생활에 대응했다.
그렇다면 크롭티 논란은 왜 일어난 것일까? 이전에도 '부장님이 사이클복을 입고 출근해 민망하다'는 글이 이슈가 되긴 했지만 한 개인의 일탈 또는 개성이지 세대 갈등 차원에서 조명되진 않았다.
그러나 크롭티 논란처럼 지금의 많은 조직문화 이슈는 젊은 세대의 '다름' 또는 '문제'로 여겨진다. 집단주의가 지배했던 사회에 개인주의가 강한 MZ세대의 비중이 커지고, 과거에 합의했던 사회적 기준이 점점 옅어지는 과도기여서 그런 건 아닐까.
'자율복장' 도입하는 기업들, 왜?
모든 조직에는 암묵적 룰이 있다. 그걸 관습이라고 한다. 의복에도 구성원들이 오랫동안 공유하며 관습으로 자리 잡은 양식(스타일)이 있다. 그리고 집단주의가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남들과 달라서 튀는 것보다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것을 선호한다. 비슷한 삶이 주는 안정감이 큰 탓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다채로운 색상보다 검은색, 흰색, 회색 같은 무채색의 자동차들이 많이 굴러다니고, 직장인 옷차림도 정형화되어 비슷하다. 그런데 요즘은 많은 회사들이 "자율복장"으로 조직문화를 바꾸고 있다.
실로 몇 년 전만 해도 칼정장이라고 불리는 옷차림이 직장인의 정석 복장이었다. '넥타이 착용 금지'가 신선했던 때를 지나 지금은 넥타이 착용하는 회사가 보수적인 회사라는 인식까지 생겼다. 청바지와 맨투맨을 입는 회사도 늘어났고 여름철 남자 직원의 반바지 착용이 가능해진 회사들도 많다.
그렇다면 회사들은 왜 자율복장을 선진 기업문화로 보고 그 방향으로 가는 걸까? 1) 업무 효율성 제고 2) 창의적인 업무 환경 조성 3) 구성원의 만족도 제고. 자유롭고 편안한 복장을 통해 업무 효율을 높이고, 기존의 형식적이고 딱딱한 분위기를 벗어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근무 환경 조성하기. 그리고 구성원의 만족도 높이기(MZ세대의 니즈 반영). 이 세 가지가 가장 보편적인 자율복장 도입 취지다.
'자율'이란 무엇인가
잡코리아가 1350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여름철 꼴불견 근무복장'을 설문 조사한 결과, 남성 직장인의 꼴불견 근무복장으로 악취 나는 옷(41.9%), 맨발에 구두(40.7%), 민소매 복장(24.1%), 덥수룩한 털을 노출한 반바지 착용(22.4%)이 꼽혔다. 여성 직장인의 경우는 노출이 심한 복장(60.3%)과 너무 꽉 끼는 옷(35.1%)이 1, 2위를 차지했다.(*복수응답)
꼴불견, 즉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옷'이라는 지점에서 크롭티 출근룩 논란을 짚어보자. 자율복장에서 자율은 "자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스스로 통제하여 절제하는"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비슷한 단어인 자유 역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을 내포하지만 사회적 동물인 사람에게 자유는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수준"에서 행사하는 것을 합리적이라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자율복장 역시 스스로의 원칙에 의해 옷을 입을 순 있지만, 타인에게 불쾌감이나 방해를 주지 않는 수준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자율복장 제도의 도입 목적과 취지를 생각할 때 개성 넘치는 옷이 조직 분위기를 해친다면 자율복장 제도 도입 취지에 맞지 않을 수 있다. 조직 차원에서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금지 항목(don't do)을 제시하고 그 외는 모두 허용하는 것이 개성과 관습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진리의 '팀 by 팀'
공공기관이나 금융권에서는 칼정장까지는 아니어도 비즈니스 캐주얼이 통용되는 분위기이고, 게임 및 IT회사의 경우 반팔, 반바지에 슬리퍼까지도 허용되는 분위기다. 여의도 직장인과 판교 직장인의 출근룩을 비교하는 짤(이미지)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회사 내에서도 팀마다 다른 업무 특성과 환경이 있고 각 팀마다의 관습, 분위기, 스타일이 있다. 한때 보수적, 수직적 조직문화였던 우리 회사도 자율복장을 도입한 후 옷차림이 한결 편해지고 다양해졌다. 구성원들의 만족도는 높아졌고 출근 스트레스도 낮아졌다는 의견이 대세다. 그러나 의전을 수행하거나 외부 미팅이 많은 팀의 경우 여전히 정장을 자주 착용할 수밖에 없다. 결국 또 '팀 by 팀'인 것이다.
사람마다 본인에게 맞는 혈액을 수혈해야 하듯 모든 조직이 같은 문화를 수용하기는 어렵다. 바꾸기 어려운 각 조직의 핏(fit)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조직의 가치와 분위기에 맞추는 것이 조직을 떠나지 않을 이들에게는 지혜가 아닐까.
트위터에서 불거진 '행정인턴의 크롭티 논란'도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였다면 논란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공공기관이라는 TPO(시간, 장소, 상황)를 고려한다면 누군가는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양성은 공정해지기 어렵고 항상 시끄럽다. 개인의 다양성과 각 조직의 다양성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소위 선진기업의 문화로 분류되는 "자율복장", "자율 출퇴근", "재택근무"가 모든 조직에 온전히 적용될 수 없는 것도 각 조직의 다양한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옆팀은 재택근무하는데 왜 우리 팀은 재택근무 안 해요?"라며 공정성에 문제제기하는 경우가 꽤 많다. 그러나 팀의 업무 특성을 고려할 때 재택근무가 비효율이거나 불가한 팀도 있다. 자율복장도 같은 맥락이다. 업무 특성상 캐주얼룩을 입기 어려운 팀이 있을 수밖에. 대기업일수록, 다양한 세부 조직이 있을수록, 하나의 제도를 획일적으로 적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진리의 '팀 by 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