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가치가 퇴색하는 세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급격한 자동화로 인간의 노동 그 자체가 종말을 고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마주했던 노동 현실의 민낯을 보며 현장의 관찰자이자 조율자로서 신입 노무사가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독자와 공유합니다. [기자말] |
2022년 현재 우리 산업구조에서 하청업체는 잘 맞물린 톱니바퀴와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이 '다이어트'에 들어가면서, 핵심 직무를 제외한 단순·반복 업무를 외부 업체에 맡기는 아웃소싱을 급격하게 진행하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존에는 건설업을 중심으로만 존재했던 '하청' 내지 '하도급'이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산업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도급'이라는 계약형태의 특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원청의 법적·경제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무분별하게 아웃소싱을 하다 보니 이에 따른 폐단도 커지고 있다. 특히 '위험의 외주화'로 불리는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시민사회에서는 경제적 논리 앞에 수급인 노동자들의 노동인권이 침해되는 현실의 참혹함을 경계하고 있다.
그 와중에, 지난 7월 28일 "도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법원의 종국적인 대답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포스코 불법파견 사건'으로도 불리는 이 건에 대해, 11년 만에 법원은 위장도급(구체적으로는 불법파견)이라며 노동계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대법원 2022.7.28. 선고, 2016다40439, 2021다221638 판결).
해당 판결에 대한 구체적인 법적 해석은 앞으로 전문가들이 내놓을 판례평석의 판단을 기대해 본다. 이 글에서는 도급계약 활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보편적인 위법 소지인 지휘명령권에 대해 정리하고자 한다.
도급이란 무엇인가?
도급이란 일의 완성을 대가로 일정액의 대가를 지급하기로 하는 계약('민법' 제664조)이다.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굳이 거대 기업체의 원·하청관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실생활의 다양한 측면에서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업체와의 '주택 리모델링 계약'은 대표적인 생활상 도급계약의 한 예다. 오래된 아파트를 매수하여 입주하는 경우, 이 계약은 '주택 리모델링'의 완성을 대가로 일정한 보수를 지급하기로 약정하게 된다. 일의 완성이 보수 지급의 전제조건이다 보니, 최소한의 계약금을 제외한 나머지는 입주자가 인테리어 완공 확인 이후 지급한다.
예시에서도 알 수 있듯, '도급'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⑴일 자체가 특정되어 '일의 완성'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성질의 업무여야 한다. '인테리어 공사 완공'은 눈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특정되기에 도급계약에 안성맞춤이다. 반면, 일이 추상적이고 종료 시점도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면 '일의 완성'을 특정할 수 없어 도급계약에 부적절하다.
다음으로는 ⑵전문적인 기술과 업무에 필요한 장비 등의 존재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하려면 전문건설업 면허가 필요하고, 그 이하의 경우라도 최소한의 기술이 요구된다. 인테리어를 하러 오는 사람들은 작업 도구를 가지고 있지, 입주자가 장비를 사서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⑶업무 완성을 위한 지휘명령의 존재 여부는 도급계약과 근로계약을 구분 짓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앞선 ⑵처럼, 대다수의 도급계약은 도급인(원청)이 수급인(하청)보다 업무의 전문성 측면에서 무지한 경우가 많다. 입주자가 공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인테리어 업체에 맡기고, 최종적인 결과만을 심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도급계약의 특징이다.
도급계약의 요소는 더 많지만, 이런 3가지 핵심 요소만을 고려하더라도 도급을 줄 수 있는 업무와 그렇지 않은 업무는 명백하게 나뉜다. 반대로 말하면 ⑴일의 단위를 특정하기 어렵고 ⑵기술이나 생산에 필요한 도구를 하청업체 스스로 가지고 있지 않으며 ⑶업무의 구체적인 이행 절차에 원청업체가 구체적으로 개입한다면 '도급'이 아니라는, 소위 '위장도급'이라는 뜻이다.
위장도급의 유형인 '불법파견'
지난 7월 28일 자 판결에 나오는 '불법파견'이라는 용어는 위장도급의 하위개념이다. 위장도급은 단순히 '민법상 도급의 성질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도급계약을 체결한 경우 모두에 해당하는 반면, 불법파견은 그러한 위장도급 중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에서 정하는 내용과 관련되는 특정한 경우에 사용되는 용어다.
파견법의 내용은 '제3자에 의한 사용관계'라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본래 근로계약의 당사자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1:1관계(쌍무계약)로, '일을 시키는 사람'과 '돈을 주는 사람'이 동일한 사용자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근로자파견사업에 따른 파견계약이 체결된 경우, 파견업체 소속 노동자는 '파견업체'와 계약서를 쓰고 그로부터 급여를 받지만 일은 '파견업체와 근로자파견계약을 맺은 제3의 업체'에서 하게 되는 특징이 있다.
파견법상 근로자파견은 제약이 많다. 포스코 사례처럼 제조업에서는 파견 자체가 불가한데 이는 법상 '파견금지업종'이 있기 때문이다(제5조 제1항). 직접 근로계약에 비해 노동자의 권리 보호가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파견계약이 주류의 계약으로 성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의 배려다. '기간제법'과 마찬가지로 최대 2년까지로 제한되며, 2년을 초과하여 같은 사람을 사용할 경우 직접 고용의 의무까지 발생한다(제6조 내지 제6조의2).
만일 인테리어 업체 사장이 인테리어 중 전기배선 시공을 위해 A라는 일용직 근로자를 채용한 경우라면 어떨까? 사장(사용자)이 A(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일을 시키고, 그 대가로 급여를 직접 지급한다면 문제가 없다. 입주자가 사장을 거치지 않고 A에게 직접 무언가를 지시하는 경우가 아닌 한 불법파견이 성립하기는 어렵다. 업무의 전문성 때문에라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은 만큼 문제 될 만한 성질이 거의 없다.
반면 7월 28일 자 판결에서처럼, 대기업 특히 제조업에서의 원·하청 관계는 이야기가 다르다. 판결에서 '연속공정'이라고 언급하는 업무의 특징 때문이다.
⑴하청업체는 자기 마음대로 업무 프로세스를 조정할 수도 없고, 계속 돌아가는 설비의 특성상 '업무의 단위'를 맺고 끊음이 불분명하다. ⑵원청 제조사는 공장도 자기 소유로 가지고 있고, 생산을 위한 컨베이어벨트 등 기계·기구를 자신의 이름으로 소유하고 있다. ⑶원청이 기술 면에서도 하청업체보다 우월한 가운데 업무 프로세스를 이유로 굳이 지휘명령을 구체적으로 하지 않을 뿐이므로 종합할 때 하청업체는 단순히 인력수급업체의 실질에 지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도급인의 지휘명령, 어디까지 가능한가?
특히 위 ⑶의 지휘명령과 관련하여, 이번 대법원에서는 원청업체의 전산관리시스템(MES)을 통한 업무 하달이 '사실상의 직접 지시'라고 판단해 주목받고 있다. 원청은 하청 소속 노동자에게 직접 지시할 수 없으므로 하청업체 소속 '현장관리자'에게 업무내용을 공유하여 업무를 진행한다. MES의 내용이 지나치게 구체적이어서 현장관리자의 재량이 반영될 수 없고 받은 내용 그대로 지시할 수 있을 뿐이라면 결국 실질적으로 원청으로부터의 직접 지시와 다를 바 없다는 논리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4년 논문 '도급 대상으로서 업무의 구체성과 불법파견 판단과의 관계 재검토'에서 '도급 업무 내용의 사후적 확정권 유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도급계약의 목적인 '일의 완성'의 구체적인 내용을 사전에 확정하기 어려운 업무라면 계약 도중에라도 그 '일의 완성'이란 무엇인지를 추가로 설정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정 수준의 개입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해당 논문에서 권 교수는 독일 연방법원 판례(BAG 1991.3.5., NZA 1991, S.686.)를 들어, 미리 도급계약에서 생산품의 품질관리를 위한 감독자의 개입이 가능하도록 합의해 둔 경우 이에 따른 개입이 발생하더라도 도급계약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즉, 계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공정상 적용되어야 할 준수사항 등 내규를 따르도록 요청하는 행위까지 금지될 수는 없다는 의미다. 다만 그 개입의 수준은 공정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내용이어야지, 판례의 MES와 같이 개별 공정의 방법론과 관련되는 구체적인 내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실무에서 적용될 수 있는 내용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⑴현장관리인을 통한 업무협조라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구체적인 내용까지 일일이 간섭하게 된다면 곤란하다. 도급계약의 본질상 결과만 문제가 없다면 그 과정과 방법은 전적으로 수급인의 권한에 속하므로, 위 사례에서의 MES와 같이 구체적인 지시가 이루어진다면 원청의 직접고용과 다를 바가 전혀 없어지기 때문이다.
⑵이를 위해 사전에 도급계약상 '일의 완성'을 계약서에서 미리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급계약서에 '물류업 전반'과 같이 추상적인 업무 내용만 적어두는 경우를 꽤 많이 보게 되는데, 이 경우 위장도급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진다. 적어도 '1.물건 파레트 상·하차업무, 2.창고 내 적재 및 분류업무' 등으로 구체적인 동작 단위를 기재하고, 계약서 별지 등을 활용하여 각 동작의 표준 수행 방법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하여 ⑶실무상 공공연하게 활용되는 '임률도급'은 피하는 것이 좋다. 물건의 단위에 대하여 금액을 매기는 '물량도급'과 달리, 임률도급에서는 인원의 수에 비례하여 시간당 단가를 매기다 보니 '일의 완성'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이 경우 '인건비에 대한 직접 지원'이라는 차원만으로도 하청 소속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결정 권한이 인정될 법적 리스크가 커지므로, 가능한 한 물량 단위를 반영한 보수의 책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⑷장소적으로 원·하청 소속 인원이 혼재되어 근무하는 형태 또한 지양하여야 한다. 이는 대법원이 혼재작업의 경우 원청으로부터의 상시적·구체적 지시가 발생할 가능성이 훨씬 크므로 불법파견의 여지가 높아진다는 논리(대법 2015.2.26. 선고, 2010다93707 판결 등)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연속공정 업무에서는 핵심 라인에서 벗어나 다소간의 업무 독립성·자율성이 있다고 판단될 만한 업무만을 도급으로 함이 법적인 리스크를 가장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사용자 책임 면탈 위한 도급계약은 지양되어야
도급계약은 위와 같은 제한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의 직접 사용자의 지위에 있는 것을 피함으로써 근로계약관계에서 수반되는 각종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며 나아가 인력 조정이 용이하다는 이유로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철저한 원청의 이익을 이유로 시행되는 제도인 만큼 그에 따른 법적 리스크 또한 원청이 지는 것이 타당함에도, 이번 판례에 대해 '기업 다 죽으라는 소리냐'며 반발하는 대기업의 태도는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이 판례를 계기로 기업은 그간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사실상 무제한으로 시행하여 오던 사내하청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지시·명령이 전혀 없을 수가 있나요?"라는 의문이 든다면 애초에 도급계약에 어울리는 일이었는지부터 점검하고, 실무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현장에서의 지시가 원천 차단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처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다.
나아가 최근 조선업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좋지 않은 사례를 답습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업황이 나쁠 때를 대비하여 정리해고를 밟지 않고 도급계약만을 해지하는 손쉬운 방향을 택했던 과거의 선택이, 업종 전체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예전처럼 회사가 '절대 갑'인 시절은 지났고 정보의 불균형성도 점차 해소되는 시대다. 전문성 없이도 가능한 배달 라이더보다도 낮은 임금을 받겠다고 몇십 년 차 용접공이 하청 용역업체 직원으로 순순히 들어갈 이유는 없다.
단순히 토사구팽의 시점에서 하도급 계약을 선호하여 왔다면, 이제는 인적자원을 임시 도구로 보는 시선을 버리고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원청의 직접고용을 우선으로 하되, 업무 특성상 도급의 유용성이 누가 봐도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하도급계약을 체결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가뜩이나 불법파견 문제로 날이 선 현 노동정책 때문에라도, 이제는 형식적 하도급은 실익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라도, '죽음의 외주화' 문제 등 대외적 신뢰 하락이라는 리스크가 이로 인해 얻는 단순 비용 절감을 넘어 장기적으로 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실 때문에라도 이제는 위장도급과의 '헤어질 결심'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