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장관이실 때 검찰총장 '패싱'하고 인사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 정부에선 수사 흘리기가 없었습니까." - 한동훈 법무부 장관, 7월 25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 중
전현직 법무부 장관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윤석열 정부 취임 한 달 만에 출범한 법무부 산하 인사정보관리단이 이슈였다. 전직 법무부 장관인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틀린 말이고 거짓말"이라고 대꾸했다. 한동훈 장관은 "아니다. 밀실에서 진행되던 업무를 부처 통상 업무로 전환한 것"이라며 "투명성과 객관성을 높이는 진일보"라고 해명했다. 여당 의원들로부터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런 기세에 "왕 중의 왕, 1인 지배의 시대, 그걸 한 장관이 하고 있다"던 박범계 의원의 반박은 묻혀 버렸다. 전현직 법무부 장관의 설전은 '맞대결', '직격', '격돌', '갑론을박'과 같은 수사로 언론에 중계됐다. 다음날인 26일 박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막무가내라 토론이 안 되더라"고 토로했지만 사후약방문식 소감이었다.
적지 않은 언론들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입을 빌려 "박범계, 한동훈에 참패" 같은 헤드라인을 달았다. <문화일보>에는 "야당서도 '박범계, 한동훈에 판정패'"라는 제목까지 출몰했고 <조선일보>는 "'한동훈 함정'에 스스로 빠져 허우적대는 野"라고 비판했다. 지난주 계속된 새 정부 첫 국회 대정부질문 및 업무보고에서 이목을 끈 '스타장관'은 단연 한 장관이었다.
"제가 이 일을 하는 게 잘못이라면 과거 민정수석실에서 해온 업무는 모두 위법"이라는 한 장관의 직설화법은 지지자들의 구미를 당길 만했다. 그러나 유튜브 상에서 소위 '대박'이 난 장면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스타장관' 한동훈의 화법이 가진 한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당했던 한동훈 장관이...
"조직도 안 나오고, 내용도 모르고, 내부 지침 절차도(모르고). 제대로 확인이나 하시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고." -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7월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 발언 중
설전은 여전했다. 다만 한동훈 장관의 대응이 전 법무부 장관 질의에 따박따박 반박하던 국회 본회의장과는 사뭇 달랐다. 이어지는 질의응답에 피로했는지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깊은 한숨도 내쉬었다. 역시나 쟁점은 인사정보관리단이었다.
"조직도에 그 투명하기 짝이 없고 공정한 인사정보관리단, 어디 있습니까? 대통령 공약사항이고 중요한 업무고, 획기적으로 지난 정부 잘못을 고친다고 하면서. 보조기관입니까, 보좌기관입니까. 법적인 용어를 물었습니다. 정부조직법에 보면 중앙행정기관은 보조기관과 보좌기관을 둘 수 있어요. 몰라요? 본인들이 쓴 보고서에 보좌기관으로 써놓고 그걸 몰라요?"
최강욱 의원이 제시한 현 법무부 조직도에 인사정보관리단은 없었다. 한 장관은 중간중간 "제 직속 기관"이라면서도 "홈페이지에 반영이 안 됐다"라며 말을 아꼈다. 최 의원은 인사정보관리단 업무가 법제처 및 인사혁신처 업무와 중복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 장관은 능률이나 효율성을 강조해왔다. 최 의원의 질타가 이어졌다.
"행정조직 법정주의가 있는 것이고, 헌법 원칙으로 행정 각부는 법률에 의해 정해진 소관 사무를 하는 겁니다... 누구한테 확인하고 얘기하시는 거예요. 본인이 자신 있게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요. 법을 찾아보고 법무부 장관이 확인을 해야죠.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본회의장에서부터 계속 허위 답변을 하던데."
인사 검증 자료 보존을 두고도 공방이 오갔다. 최 의원은 한 장관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인사 검증 자료의 보존을 두고 '기록도 보존도 안 하더라, 관련된 지침도 없다'고 발언해 온 것에 대해 "허위"라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해당 자료가 "대통령 기록물에 해당, 대통령 기록관으로 이관되는 자료"라는 근거를 제시했다.
반면 애초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는 걸 확인했다"던 한 장관은 말을 바꿨다. "기록 보존하셨습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개별적인 사안들을 다 기록물로 넘기셨다는 말씀입니까"라고 되묻기도 했다. 알려진 것처럼 한 장관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2010년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으로, 최 의원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으로 근무했다.
한동훈 화법의 요체
두 장면을 비교한 건 한동훈 장관의 화법과 논리 때문이다. 화법이나 화술 속에 담긴 논리는 그 사람의 철학을 대변하기 마련이다. 한 장관은 명실상부 '스타 장관'이다. 지난달 초 차기 정치 지도자를 묻는 한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 범보수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전 정부 탓', '투명성 및 업무 효율성',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화법 속에 드리워진 궤변. 민정수석실 폐지 및 인사정보관리단 신설, 검찰총장 임명 지연 등을 위시해 법무부 및 검찰을 완전히 장악한 한동훈 장관이 그간 언론에서 보여준 자신만만한 화법의 요체다. 전 법무부 장관과의 질의응답 장면은 그 절정이었고.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답게 한 장관이 앞세우는 기본 전제도 '전 정부 탓'이다. '정권을 교체당한 문재인 정부 정책은 모두 실패했고 잘못됐다'는 강한 자신감이 깔려 있는 듯하다. 민정수석실 폐지가 단적인 예다. '민정수석 출신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실패했다'는 전제를 근간으로 한다. 인사정보관리단이 "기존 청와대의 음성적 검증을 투명화한다"는 한 장관의 주장도 같은 맥락 아래에서만 가능하다.
같은 논리라면, 임기 초반 전광석화 같은 민정수석실 폐지 및 인사정보관리단 신설이야말로 국민들에게 납득할 만한 논리를 통해 설득력을 부여해야만 했다. 단순히 '전 정권 탓'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이야말로 법무부-민정수석실 직보 등 역대 정부하에서 벌어졌던 밀실 인사 등의 폐해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혁신 의지에 기반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한 장관은 오로지 '전 정권 탓'을 통해 과거 청와대의 잘못만을 부각시킬 뿐이다. 반면 국민들은 부패한 민정수석의 대명사로 '국정농단 우병우'를 기억하는 중이다. 그 우병우 전 수석은 한 장관의 검찰 선배다. '김학의 사건'을 필두로 전 정부를 거치며 땅에 떨어진 검찰에 대한 신뢰는 검사 출신 대통령의 지지율 폭락으로 여전히 바닥을 치고 있다.
한 장관을 필두로 그 검사 출신들이 장악한 법무부가 인사 검증을 '음지에서 양지화'시킨다는 주장을 곧이곧대로 신뢰하기는 쉽지 않다. 검찰 고위직은 물론 정부 요직에 검찰 출신 측근을 배치한 현 정권이 투명한 인사와 철저한 검증을 완수했다면, 취임 100일도 안 돼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폭락할 일도, 대통령 부정 평가 요인으로 '부실 인사'가 첫째로 꼽히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박범계 의원 말마따나 "법무부 장관은 18명의 국무위원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 국회를 무시한 '시행령 정치'로 법무부 장관이 국무총리도, 대통령 비서실장도, 대통령실 수석들까지 전방위적으로 검증할 수도, 검증해서도 안 될 것이다.
궤변과 오만
'전형적인 궤변론자의 특징은 과거 특정 사실을 단순화하고 심지어 허위도 들어가 있다. 대화나 말투에 기세도 있으니까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전제가 거짓이면 형식 논리는 따를 필요도 없다. (한 장관의 화법이나 논리는 대체로) 전제가 남 탓이고, 거짓이거나 허위도 포함돼 있다.'
지난달 29일, 미디어비평가이자 언론학자인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는 tbs <정준희의 해시태그>에서 한 장관의 화법을 이런 취지로 평했다.
수시로 법 원칙을 앞세우는 한 장관이 화려한 언변과 넘치는 자신감을 통해 지우고 희석화시키는 것은 보수언론마저 지적하는 '검찰독재'에 대한 우려다. 안타까운 현실은 폭락한 지지율로 현실화된 국민적 우려를 한 장관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그건 '윤핵관'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반면 7월 29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28%를 기록한 후 8월 1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여론조사에서도 긍정 평가가 28.9%로 나타나면서 계속해서 30%대 선이 무너지고 있다. 국민들이 '스타 장관'에게서, '윤핵관'에게서, 휴가 떠난 대통령에게서 보고 있는 것이 오만과 독선이라는 방증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