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가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자(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
기후정의 운동가들의 캐치프레이즈다. 시스템을 전복하라(#UprootTheSystem). 그레타 툰베리로부터 시작한 글로벌 기후 파업의 2021년도 테마다.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파괴하는 자본주의 생산-소비 체제의 전환 없이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4월 공개된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제6차 평가보고서는 '사회 시스템 전체의 수요 감소' 즉, 탈성장을 통한 기후위기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각국의 정책의 근거자료로 활용되는 요약보고서에는 탈성장에 대한 언급이 없다. 번영과 행복을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반드시 필요하고 또한 가능하며 바람직하다는 믿음, 무한한 성장이 곧 진보이고 진보에는 한계가 없다는 신화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눈앞에 닥친 재난에도 포기할 수 없는 성장 신화 앞에 체제 변화, 탈성장은 당위적이고 낭만적인 구호로 치부되고 있다. 우리에겐 성장을 추구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하다.
전작 <성장 없는 번영>을 통해 지구 생태계의 한계 안에서의 번영을 위한 생태거시경제학을 주창한 팀 잭슨은 <포스트 성장 시대는 이렇게 온다>를 통해 역사에서 자본주의 이후의 삶(원서의 원제이다)에 대한 영감을 얻자고 제안한다.
저자에 따르면 생태계 파괴, 금융 위기, 불평등, 사회 불안정을 낳은 자본주의의 추락의 원인은 자본주의가 성장에 집착한 결과이며, 자본주의는 이러한 자신의 실패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
자본주의는 위기의 피해자들을 희생해 위기의 설계자들을 구제하는 부정의한 시스템이고, 끊임없이 소비 욕구를 자극하지만 그 욕구가 결코 충족될 수 없게 유지되는 시스템이며, 돌봄과 유지라는 사회 필수노동을 지속적, 체계적으로 폄하하는 시스템이다. 즉, 자본주의는 물질적 성장을 가속화하기에는 훌륭한 시스템이지만 장기간 지속되는 진정한 번영과 함께하기에는 형편없다.
'포스트 성장 서사'의 안내자들
어떻게 하면 풍요가 달러로 측정되지 않고 충족이 한없는 물질적 부의 축적을 통해 이뤄지지 않는 미답의 영토, 미지의 영역을 향한 사유, 자본주의를 고정불변한 진실이 아닌 겨우 잔존한 유물, 그저 일시적으로 것으로 상대화하는 시선이 가능할까?
그는 "국민총생산(GDP)은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들만 빼고 모든 것을 손쉽게 측정합니다"라는 연설을 했던 미국 정치인 로버트 케네디로부터 출발한다. 로마클럽 보고서 '성장의 한계'가 나온 해가 1972년이고 기후위기의 한복판을 지나는 지금도 성장 신화를 비판하는 정치인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1968년에 그런 연설을 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그가 그 해에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저자는 이어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여성 요트 항해자 엘렌 맥아더,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 철학자 한나 아렌트, 케냐의 환경운동가 왕가리 마타이, 참여불교의 주창자 틱낫한, 시인 에밀리 디킨슨 등 다양한 안내자들로부터 '포스트 성장 서사'를 위한 사유를 길어 올린다.
자본주의는 "투쟁인 자연, 경쟁인 이윤, 만족할 수 없는 것인 소비"라는 삼위일체를 토대로 한 무한한 성장의 서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저자가 소개한 포스트 성장 서사의 안내자들은 자연에는 엄연히 한계가 있다. 그 한계가 반드시 우리에게 결핍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과잉과 부족 사이의 균형, 몰입, 창조적 작업, 사랑, 공감과 같은 전혀 다른 차원의 번영을 주는, '무한으로 나아가는 관문'임을 알려준다.
이런 새로운 성장 서사로 구축된 사회의 국가는 시민들의 건강하고 활달한 삶, 몰입하는 삶, 창의성을 발휘하는 삶, 물질에 대한 갈망에서 자유로운 삶을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를 위해 지구라는 우리의 집을 보호하기 위한 생태적 투자, 주택, 병원, 학교 등 삶의 유지를 촉진하는 자산들에 대한 돌봄 투자, 공동체 공간들, 예술 작품들 등 인간 세계의 장기지속성을 위한 창의적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저자는 코로나19로 인한 봉쇄의 경험이 더 건강한 세상, 더 깨끗한 공기, 더 적은 차, 더 푸른 하늘, 서로를 위한 더 많은 시간, 성공에 대한 더 적은 압박감 같은 우리가 잊었거나 몰랐던 것들을 즐기게 함으로써 우리의 상상력을 해방하여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한때 뉴노멀 담론이 유행했지만 방역을 완화되면서 어느 정도 일상으로 돌아간 지금, 정부도 국회도 코로나19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어 보인다. 결국 '대전환과 새로운 번영'을 위한 탈성장에 대한 고민과 실천은 우리 시민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