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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병창길 입구 매우 어렵다는 표시로 난이도를 알려준다. 그러나 한발 한발 쉬엄쉬엄 올라간다면 이 길의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사다리병창길 입구매우 어렵다는 표시로 난이도를 알려준다. 그러나 한발 한발 쉬엄쉬엄 올라간다면 이 길의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 이보환

길은 일단 좀 편해야 한다. 물 맑은 계곡, 뛰어난 조망이 있어도 너무 힘들면 접근하기가 쉽지않다. 그런 관점에서 과연 '치악산 사다리병창길'이 걷기 좋은 길에 포함될 수 있을지는 조심스럽다. 그래서 살짝 이름을 바꿔 '생각하면서 걷기좋은 길'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조심스럽게 올라가야 하는 길

몇 주만에 황장목 숲길을 다시 찾았다. 비소식이 잦았던 터라 치악산 계곡물이 얼마나 불었을지 기대가 된다. 오늘 목표는 세렴폭포에서 비로봉 정상까지 가는 구간이다. 사다리병창길(2.7㎞)과 계곡길(2.8㎞) 두 갈래다.

이럴 경우 똑같은 경로를 다녀오진 않는다. 그렇다면 최우선 고려 대상은 안전이다. 계곡길은 말 그대로 너덜길, 사다리병창길은 계단이 많을 것이다. 계곡길로 올라가서 사다리병창길로 하산하기로 맘 먹었다.

'비로봉까지 5~6시간 소요. 매우 어려움'이란 펼침막이 겁을 준다. 그래도 국립공원 탐방로는 비교적 안전하다. 더욱이 이렇게 겁을 주는 코스는 시설도 완벽에 가깝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가지 못할 곳 같으면 출입금지 구역으로 엄격하게 통제한다.

아침이슬을 머금은 풀들이 싱그럽다. 너덜길이 계속된다. 울퉁불퉁 모난 돌길 구간은 느리게 걸어야 한다. 한발짝 한발짝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작은 폭포 세렴폭포부터 비로봉 정상에 이르는 계곡길 곳곳에 작은 폭포가 쏟아진다.
작은 폭포세렴폭포부터 비로봉 정상에 이르는 계곡길 곳곳에 작은 폭포가 쏟아진다. ⓒ 이보환

오르막인데 굽이굽이 나타나는 폭포에 지칠 틈이 없다. 유리알보다 맑은 계곡물에 비친 얼굴이 물결따라 일렁인다. 습한 날씨에는 적절한 휴식과 수분 보충이 중요하다. 힘들지 않을 만큼 걷고 적당한 장소가 나타나면 쉬어간다. 꽃술 무성한 파란 산수국이 시원하다.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무의 이름을 한번씩 불러본다.

고로쇠나무, 층층나무, 굴참나무 등 뿌리 깊이 내린 고목이 연륜을 말해준다. 산중턱에 오르니 계곡물 소리가 작아진다. 가파른 계단 위에 드리운 초록빛 커텐이 계단과 잘 어울린다. 초록빛 커텐을 살짝 들추자, 구름 속 살짝 고개 든 샹들리에가 길을 밝혀준다. 그러나 이내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고도가 높아졌음에도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물소리가 들린다. 발걸음이 마음을 앞선다. 깊은 심호흡이 맘보다 앞선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통나무의자가 놓인 아늑한 휴식처에서 간단한 맨손체조로 위축된 근육을 풀어준다. 곳곳에 마련된 휴식공간이 참 고맙다. 

조급함 없이 쉬엄쉬엄 걸으면 됩니다

가운데 '악'자가 들어간 산은 어렵다고 하더니 사실이다. 마치 하늘을 향해 가듯 정상까지 진행해야 한다. 오르고 또 오른다. 등산용 지팡이를 갖고 온게 큰 도움이다. 비로봉까지 0.3㎞ 표지판이 보인다. 안개 자욱한 비로봉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그렇지만 또렷이 보이는 비로봉(1288m) 표지석 앞에는 인증사진을 찍기위한 등산객으로 붐빈다. 

바람이 안개에 닿을 때마다 빗방울이 톡톡 볼에 스친다. 조망은 없지만 운치는 더할나위 없이 좋다. 간단한 요기를 하고 사다리병창길로 하산한다. 내려가는 길도 처음부터 쉽지않다. 수직계단을 내려가려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계단 난간을 잡고 조심조심 발을 내딛는다.

어느정도 내려갈 때까지 아찔한 기분이 계속된다. 그래도 계단길을 하산코스로 잡은 것이 다행이다. 미끄러운 너덜길보다는 보폭이 일정하고 난간이 있는 이곳이 안전하다. 어느새 구름이 나타났다. 높은계단에 긴장되었던 마음이 가뿐해진다. 계단 한켠으로 납작한 바위가 연결되어 있다.

층층바위가 신기했는데 이 길이 바로 '사다리병창길'이다. 바위모양이 사다리를 곤두세운 것 같다고 하여 부른 이름이다. 병창은 영서지방 방언으로 '벼랑' 또는 '절벽'을 뜻한다. 문경 오정산을 오를 때 만났던 '토끼벼리'가 생각났다. 토끼가 다닐 만한 벼랑길이다.

사다리병창길은 나무계단과 철계단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새롭게 정비된 현재와 옛 것을 간직한 과거의 만남이다. 오늘 하산길은 눈보다 귀가 즐겁다. 다양한 새들이 저마다의 소리를 뽐낸다. 모두 맑고 곱다.

물소리가 가까워지며 고도가 낮아졌음을 직감한다. 세렴폭포를 보면서 오늘 경로를 마감한다. 구룡사~비로봉 구간은 매우 어려운 길에 틀림없다. 울창한 숲과 우렁찬 계곡이 그나마 위안이다. 조급함 없이 쉬엄쉬엄 걷는다면 흘린 땀만큼 머리 속은 시원해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천단양뉴스(http://www.jdnews.kr/)에도 게재됩니다. 제천단양뉴스는 여러분의 제보, 의견을 소중하게 다루겠습니다.


#제천단양뉴스#이보환#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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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농업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언론-시민사회-의회가 함께 지역자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충청매일신문 부국장, 제천단양뉴스 운영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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