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을 모독하는 소설을 썼다가 암살 위협을 받아온 인도계 영국인 작가 살만 루슈디(75)가 미국에서 피습을 당했다.
루슈디는 1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주의 셔터쿼 카운티에서 한 비영리 단체가 주최한 문학 행사에서 강연하던 중 무대 위로 올라온 한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쓰러졌다고 AP통신, BBC방송 등 주요 외신이 보도했다.
루슈디가 헬리콥터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케이시 호컬 뉴욕 주지사는 성명을 내고 "루슈디가 살아있으며, 치료를 받고 있다"라며 "우리는 모두 그가 무사하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루슈디의 에이전트인 앤드루 와일리는 성명에서 "루슈디가 수술을 받았으나 좋은 소식은 아니다"라며 "한쪽 눈을 잃을 수도 있으며 팔 신경이 절단되고 간이 흉기에 찔려 손상됐다"라고 상태를 전했다.
당시 행사에 참석했다가 루슈디의 응급 처치를 도운 한 의사는 "루슈디가 목을 포함해 몸의 여러 곳에 자상을 입었다"라고 말했다.
뉴욕주 경찰은 루슈디를 공격한 용의자를 체포했으나, 구체적인 신상이나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문제작 <악마의 시>, 이슬람권 강력 반발에 영국-이란 단교까지
인도의 이슬람 가정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성장하고 공부한 루슈디는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중 1981년 첫 작품으로 발표한 소설 <한밤의 아이들>이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전업 작가로 전향한 루슈디는 1988년 세계적인 문제작 <악마의 시>를 발표하며 이슬람권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이 소설은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가 이슬람 경전 코란의 일부를 악마로부터 계시를 받아 쓴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이슬람권은 이를 신성 모독으로 규정했고, 당시 이란 최고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루슈디에게 이슬람 규율의 종교적 사형 선고인 '파트와'를 내리며 현상금을 내걸기도 했다.
호메니이는 루슈디에게 진정으로 뉘우치고 사죄한다면 사형 선고를 철회해주겠다고 제안했으나, 루슈디 이를 거부하면서 이슬람권의 반발은 더욱 격렬해졌다.
인도에서는 폭동이 벌어져 10여 명이 사망했고, 이 소설을 번역하거나 출판한 사람들도 공격을 당했다. 일본에서 <악마의 시>를 번역한 이가라시 히토시 교수는 괴한의 흉기에 찔려 숨졌고, 노르웨이에서는 이 소설을 출판한 업자가 총에 맞아 중상을 입은 바 있다.
또한 영국 정부는 자국인에 대한 살해를 선동했다는 이유로 이란에 항의했고, 이란은 영국에 이 소설의 출판을 금지해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양국 정부는 1989년 단교를 선언했고, 루슈디는 10년 가까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도피 생활을 해야 했다.
1998년 이란 정부가 루슈디에 대한 사형 선고를 철회하며 영국과의 외교 관계는 복원되었으나, 이슬람 강경파의 위협은 계속됐다.
하지만 2002년 영국을 떠나 뉴욕으로 이주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루슈디는 "두려워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이 두려움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면서 공개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이날 망명 작가와 예술가들의 피난처로서 미국 역할에 관한 강연할 예정이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권리를 행사한 루슈디가 흉기에 찔린 것은 끔찍한 일"이라고 규탄했고, 차기 총리직에 도전한 리시 수낵도 "루슈디는 표현과 예술적 자유의 옹호자"라며 "그가 피습을 당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척 슈머 미국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루슈디가 당한 것은 언론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며 "충격적이고 끔찍하다"라고 비판했다. J.K. 롤링, 스티븐 킹 등 저명한 동료 작가들도 규탄 성명을 내고 루슈디의 쾌유를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