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았다. 국민의힘은 취임 100일 백서를 발간하며 "참으로 많은 실적을 거뒀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임기 극초반임에도 20-30%대의 국정 지지율을 기록하는 등 세간의 평은 많이 달라 보인다. 절반 가까운 국민이 지지한 후보였음에도 이렇게까지 지지율이 추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윤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이후 행한 연설들을 살펴본 결과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연설들을 보면 대선후보로서의 윤석열과 대통령으로서의 윤석열이 내세우는 가치는 사뭇 달랐다. 살펴본 연설은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 ▲대통령 당선 연설 ▲대통령 취임사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사 ▲광복절 기념사 등 총 6개다.
취임 이후 연설문에서 사라진 '공정과 상식'
먼저 취임 이전 연설들을 살펴보자. 취임 이전 윤 대통령의 언어를 살펴보면 다른 무엇보다 '공정'이 중심이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출마 선언, 후보 수락 연설, 당선 연설에서 '공정'을 총 26번 언급했다. '공정과 상식'이라는 캐치프레이즈도 총 9번 등장했다.
실제로 대선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공공연히 공정과 상식을 내세웠다.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 당시 윤 대통령의 뒤에는 '공정과 상식으로 국민과 함께 만드는 미래'라는 문구가 써져 있었고 국민의힘의 대선 정책 공약집 제목 역시 '공정과 상식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대한민국'이었다. 배우자 김건희씨의 허위 경력 기재 논란에도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았다"며 사과한 이유는 그만큼 윤 대통령이 '공정과 상식'을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취임 이후 공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취임사, 5·18 기념사, 광복절 기념사를 통틀어서 공정은 3번만 언급됐다. 공정을 대신할 단어는 바로 자유였다. 자유는 총 81번이나 쓰였다. 특히 취임사와 광복절 기념사의 경우 각각 35번, 33번이 쓰였다.
이처럼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내내 들끓었던 젊은 세대의 '공정'에 대한 열망을 마치 자신이 해결해줄 것처럼 떠들었지만 취임 직후부터는 이에 침묵했다. 침묵과 함께 윤 정부는 정호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나 박순애 전 교육부장관과 같은 고위직 인사부터 대통령실 9급 행정요원의 사적채용 논란에 이르기까지 공정과는 정반대의 인사를 보여줬다.
인사 문제뿐만이 아니다. 한남동 대통령 관저와 용산 대통령실 청사 공사를 배우자 김건희씨의 회사인 코바나컨텐츠를 후원한 회사가 맡았다. 대통령인사비서관의 배우자가 민간인 신분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대통령 부부를 수행하는 부속실 담당으로 동행하기도 했다.
공정 대신 '자유' 등장했지만
한편 연설의 내용을 살펴보면 공정을 대신한 윤석열 정부의 '자유'는 문제적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우리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그것은 바로 '자유'"라고 말했다. 이어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 피었다"며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라고 했다.
자유와 경제적 성장을 연관짓는 모습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도 보였다. 윤 대통령은 5·18 기념사에서도 "광주와 호남이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 위에 담대한 경제적 성취를 꽃피워야 한다"며 "민주 영령들이 지켜낸 가치를 승화시켜 번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 역시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약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도약은 혁신에서 나오고 혁신은 자유에서 나온다"며 도약과 혁신을 자유와 연결지었다. 이어 "민간 부문이 도약 성장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혁신하겠다. 우리 기업이 해외로 떠나지 않고, 국내에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과감하게 제도를 혁신해 나갈 것"이라며 "과학기술의 혁신은 우리를 더 빠른 도약과 성장으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윤석열 정부에서 '자유'란 곧 경제적 번영으로 가는 직행열차다. 보편적 가치로서의 자유를 얘기하지만 정작 성소수자나 하청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에는 무관심하고 기업의 규제를 혁신하는 등 철저히 자본을 위한 자유다. 이러한 자유관은 윤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 모를 뿐 아니라 자유가 왜 개인에게 필요한지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고 얘기한 것과 일맥상통하다. 즉, 자유는 빈곤한 자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는 첫 100일 동안 대선 기간에 청년 세대의 공정 문제에는 침묵하고 오히려 불공정에 가까운 모습만 보였다. 공정을 대신해 보편적 가치로 내세운 자유는 경제적 번영의 맥락에서만 이해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지금부터 다시 다 되돌아보면서 철저하게 챙기고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전 여당 대표의 '양두구육'이 화제인 지금, 지난 행적을 단순히 복기하는 것만으로 민심이 바뀔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