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하는엄마들 소모임 '엄마들의 책장'은 한 달에 한 번 모여 주제로 정한 책에 대한 소회를 나눈다.[편집자말] |
지난 21일 '엄마들의 책장'은 비혼 싱글맘의 공동육아기를 담은 책 <침몰 가족>(가노 쓰치, 박소영 옮김, 정은문고, 2022)을 함께 읽었다. 이들이 8월의 책으로 선정한 <침몰 가족>은 독특한 공동육아를 통해 자란 아이가 자신을 돌봤던 '돌보미들'이 남긴 육아일지, 육아소식지, 영상 기록들을 되짚으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저자 가노 쓰치가 대학 졸업 과제로 찍은 영상에서 출발한 같은 제목의 영화는 '독립영화제(PFF)'에서 상영되며 일본 전역에 널리 알려졌다. 그 영화의 뒷이야기가 책으로 탄생했다. 가노 쓰치의 엄마는 누구든 육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동육아 참가자를 모집하여 함께 육아를 해나갔다. 그들은 혈연을 넘어선 가족이었다.
정치하는엄마들 오은선 활동가는 <침몰 가족>이 싱글맘이 모든 가족의 형태를 분석한 책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하였지만, 정반대의 내용이었다. 가난뱅이들이 모였을 때 어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한 책 <가난뱅이의 역습>을 봤을 때 비슷한 충격과 즐거움이었다고 전했다.
- 왜 침몰 가족이라고 했는지 궁금한데?
"남자는 일하러 가고 여자는 가정을 지키는 가치관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이혼하는 부부도 늘어나고 가족의 유대도 약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일본은 침몰한다." 는 정치인의 말을 담은 전단을 거리에서 보고 여기에 공동육아를 하는 사람들이 그러면 우리는 바로 침몰가족이라고 하고, 집 이름도 침몰 하우스라고 지었어요.
일본 자민당의 헌법 개정 초안 제24조에 "가족은 서로 돕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문장이 있다. 이 문장은 혼인 또는 혈연관계에 바탕을 둔 '가족'만이 육아와 간병을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하지만 침몰 가족은 이러한 생각과 정반대에 있다. (프롤로그 中)
아래는 엄마들의 책장에서 나눈 내용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엄마의 힘이 크지 않았나 싶어요
정치하는엄마들 김정덕(아래 정덕) : 공동육아 참가자 모집하는데 낙오연대라는 공동체가 근처에 있었어요. 공동체가 있어야 공동 육아가 가능하잖아요. 낙오연대를 만나면서 그 공동체 사람들이 아는 친구들을 또 불러들였죠. 또 참가자 필터링을 하지 않아요. 지금 한국의 어린이집 같은 '보육원'에서 아이를 데리러 오는 사람들이 다 제각각이고 생물학적인 아빠들은 아니었어요.
정치하는엄마들 이채민(아래 채민) : 아이가 혼자면 불안할 수 있겠는데 여럿이 된 후에는 오히려 안전할 수 있었을 거 같아요. 매일 육아 스트레스를 받은 채로 아이를 돌보는 게 아이에게도 좋지 않을 수 있고요. (물론 제 생각이긴 하지만) 예민한 아이라면 오히려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정덕 : 엄마는 아이가 뭘 하든 무슨 생각을 하든 그냥 같은 인간으로서 대등하게 생각을 하는 것 같았어요. 아이가 나한테 딸린 존재가 아니고 같이 사는 사람으로 대하고. 아마도 모자(혹은 모녀)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같이 열려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정치하는엄마들 오은선(아래 은선) : 쓰치가 자랄 때 공동육아의 힘이 매우 컸다고 해요. 엄마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침몰 가족을 만들었다면 가능했을까. 엄마의 카리스마가 엄청났다고 말하거든요. '이걸 한국에서 시도하면 어떨까, 우리도 이런 거 해보면 참 좋겠다' 이런 생각이 먼저 들기보다는 마치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어요.
경제적으로 빠듯한 싱글맘과 갓난아기를 구해준 사람은 분명 그곳에 와준 사람들이었다. 의무도 계약도 없었다. 오고 싶은 사람들이 오는 느슨한 관계.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고 함께 놀아주었다. (중략) 모두 누군가가 내 곁에 있어 준 행복한 시간이었다.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엄마에게는 그러한 장소를 만들어줘서 고맙다. 다른 누구보다도 부모가 가장 아이에게 애정으로 대해야 한다는 규범이 있다면 엄마는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혼자서 나를 키울 수 없음을 인정한 뒤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혼자 할 수 없다'라는 지점에서 시작해 전단을 뿌린 결과 많은 사람이 엄마에게 걸려들었다. 나는 그 판단에서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 (200-201쪽)
은선 : 침몰 가족의 모든 양육자의 힘도 있지만 엄마의 힘이 되게 컸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어요.
채민 : 평생 일했던 엄마인데 딸이 말하기를 '일어나서 엄마가 있으면 좋지만 없을 땐 멋있었다'라고 했던 어떤 프로그램이 생각나네요.
정덕 : 엄마가 붓글씨 대회에서 쓴 문구가 '인간 해방(人間解放)'이었다는데, 아무래도 '여성해방(女性解放)'에서 온 말 같아요.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는 자신에 대한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침몰 하우스에서 아이를 계속 아이를 키울 수도 있겠지만 침몰 가족이랑 영향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죠. 아이 입장에선 어디로 가야 할 지 아는 사람 유일한 사람이 엄마인 거예요. 나중에 인터뷰하고 보니까 엄마도 그 당시 두려웠었다고 회상해서 작가가 놀랐다고 했지만, 어쨌든 결정을 하는데 침몰 하우스는 의지가 됐더라고요.
정덕 : 엄마가 이런 선택을 한 건 공적 돌봄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나름 돌파구를 찾은 거잖아요. 아이가 뭘 하고 있는지 아이가 눈을 돌렸을 때 눈을 마주쳐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되는 거. 어린이집 아동학대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그냥 한 사람이 더 들어가면 되잖아요. 사람이 한 명 더 있으면 좋을 텐데 단순한 해법을 우리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거니까 어쨌든 믿어야 하는 거잖아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게 아닌가.
채민 : 호코씨(저자의 엄마)가 아이를 통해서 여러 실험을 한 거 같아요. 1. 정말 아이를 엄마가 봐야 하는지, 2. 돌봄이 여성에게만 주어진 천직인 건지, 3. 엄마는 이러저러해야 하는 건지
정치하는엄마들 이선화 : 저는 심지어 처음 참여하는 데다가 책도 못 읽고 참여하는 게 용기가 필요했는데요. 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을 보면서 되게 많이 힘을 얻는 시간이 많았거든요. 이번 모임을 통해 이런 걸 나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걸 또 경험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서 다른 분들도 오시면 힐링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은선 :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쓰치가 누구라도 옆에 있으면 아이는 잘 자란다고 한 것처럼 우리도 같이 있으니까 좋은 어른이 돼가는 것 같아요(웃음).
덧붙이는 글 |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독서 소모임 '엄마들의 책장'은 달마다 모여 모성· 육아· 돌봄· 사회· 정치 등 다양한 주제의 좋은 책을 읽고 함께 나눕니다. 오마이뉴스 책동네를 통해, 좋은 책을 소개하고 엄마들의 책장에서 나눈 소중한 이야기들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