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촛불집회 때 거리에 나온 중·고등학생들은 '교복 입은 시민'이라 불렸습니다. 집회가 끝났다고 청소년들의 역할도 끝난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최준호 촛불중고생시민연대 상임대표(25)는 지난 2016년 촛불집회에서 중고등학생 대표를 맡았다. 당시 준호씨는 한국 나이로 19살,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집회가 끝난 뒤 대통령 한 명만 바뀌었을 뿐, 아직 학생들을 둘러싼 교육 체계, 학생 인권은 너무나도 열악했다. 자기 삶과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나왔던 촛불중고생 정신을 후배들과도 나누기 위해 촛불중고생시민연대라는 단체를 출범했다."
그는 촛불집회를 통해 우리 사회에 '교복 입은 시민'이란 말을 끌어낸 사실을 기억한다. 이는 준호씨에게 정치하는 청소년으로서 일궈낸 성과로 남았다. 청소년들이 주체가 돼 집회에 참여하며 느꼈던 감정을 다른 청소년들도 느끼길 바라는 이유다.
지난 2년간 청소년의 정치 참여 기회는 확대됐다. 공직선거법과 정당법이 개정되면서다. 국회는 2019년 12월 선거권 연령을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춘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올해 1월에는 정당법 개정으로 정당 가입 연령이 기존 만 18세에서 만 16세로 하향됐다. 피선거권도 확대됐다. 만 18세 청소년도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의장, 지방의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선거법과 정당법 개정은 정치에 관한 청소년의 관심이 성인 못지않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만 18세가 처음으로 투표에 참여한 21대 총선의 경우 만 18세의 투표율은 67.4%로, 전체 투표율(66.2%)을 웃돌았다. 지난 6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청소년 후보들이 잇따라 출사표를 내기도 했다. 취재팀은 정당원, 청소년의회, 청소년단체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청소년 및 교사, 전문가 등을 만나 청소년 정치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청소년이 바꾼 세상
취재팀이 만난 청소년들은 정치 참여로 실생활에서 변화를 이끌고 있었다. 임재영 서울시 청소년의회 의장(20)은 송파구 참여위원회 활동을 할 때, 본인이 사는 송파구에 '바닥 신호등'을 설치한 일화를 들려줬다. 송파구의 바닥 신호등 개수를 파악해 송파구청장에게 바닥 신호등을 더 설치하자고 건의한 것이다.
재영씨가 평소 거리를 걸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이른바 '스몸비'(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로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걷는 사람)였다. 바닥 신호등은 길거리에서 스마트폰만 보는 사람들로 인한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재영씨는 유동 인구가 많은 송파구에서 보행자들의 안전이 신경 쓰였다.
자신의 건의가 실제로 신호등 설치까지 이어지는 걸 봤을 때, 재영씨는 정치 효능감을 느꼈다. 내 주변, 나아가 누군가의 안전까지 지킬 수 있었던 고등학생 2학년의 정치 경험이다. 재영씨는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이런 일이 정치 활동을 하는 데 꽤 도움이 된다"라며 뿌듯했던 기억을 전했다.
최준호 촛불중고생시민연대 상임대표(25)는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4년에 강원도 강제 야간자율학습 폐지 서명 운동을 벌였다. "강제 야간자율학습을 폐지하라고 강원도 교육청에 요구했고, 강원도 일부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이 폐지됐다." 준호씨는 이 과정에서 학교, 도교육청과 대화를 나누고 실제로 '야자 폐지'라는 결과를 끌어낸 것을 정치 활동의 성과로 꼽는다.
'젊치인(젊은 정치인)'답게 준호씨는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서명 운동을 이끌었다. "학교, 학원가에서도 해봤지만 서명 운동에 참여한 모습을 사람들이 보게 돼 혹시라도 학교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참여를 꺼리는 학생들도 많았어요."
준호씨는 당시 학생들이 많이 쓰던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등에서 '비대면 서명 운동'을 진행했다. 강원 지역 고등학생 총 816명에게 서명을 받아내 교육청에 전달했지만, 야간자율학습 폐지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교육청의 담당 장학사가 어떠한 답변도, 공식적인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이에 준호씨는 후속 조처를 했다. 교육청에 전화도 하고, 지역 언론사와 인터뷰하며 공론화를 시도했다. 서명 운동에 참여한 800여 명의 학생에게 일일이 연락을 돌려 추가 결의문을 만들어 교육청에 다시 전달하기도 했다. 이렇게 온오프라인에서 발품 판 노력 끝에 교육청은 마침내 준호씨 측에 면담을 요청하고, 강제 야간자율학습 즉각 철폐라는 요구를 수용해줬다.
"밤마다 강제로 학교 자습실에 갇혀 있지 않은 세상, 청소년들이 '교복 입은 시민'이라 불리며 시위의 주역으로 떠오른 세상. 제가 정치하는 청소년으로서 당당한 삶을 보내왔기에 만들어낸 성과입니다."
학생으로서 학업적 성취도 중요하지만, 실제 정치에 참여해보는 경험이 새로운 만족감을 주기도 한다. 이는 청소년으로서 정치에 꾸준히 관심을 두고 참여한 사람들이 지속해서 정치 활동을 해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된다.
인터뷰했던 청소년들은 실제 정치에 참여해 본 경험이 학교 수업과는 또 다른 배움이라고 말했다. 2018년 울산시 청소년의회 준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김주영(21)씨는 울산에서 청소년의회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정치 효능감을 느꼈다. 그는 청소년의회 구성, 운영 등에 대한 조례안을 꼼꼼히 준비했다.
반대 단체의 반발로 조례안은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준비했던 것들은 무산됐지만, 주영씨는 당시 활동을 통해 "청소년 정치 참여의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높여봤다"라며 "그것만으로도 뿌듯했다"라고 말했다. 평소 정치에 대해 생각해왔던 것들을 조례안에 적용해보며 청소년으로서 정치와의 거리를 좁혀봤기 때문이다.
다원화된 청소년들의 관심사
취재팀이 만난 청소년들의 관심사는 ▲기후 위기 ▲인권법 제정 ▲문화생활 지원 ▲학교 밖 청소년 권익 확대 ▲양성평등과 같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생활형 의제부터 거대 담론까지 다양했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이재혁 당시 정의당 경기도의원 비례대표 후보(19)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노동 현장에 주목한다. 재혁씨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노동권이 대한민국의 노동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전라남도 여수에서 특성화고 학생이 현장 실습 중 사망한 사건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일시적인 관심을 받지만, 제도의 정착이나 개선까지 이어지진 않아요."
여수시 웅천동 요트 선착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사망한 특성화고 학생의 사례를 계기로 각 시도교육청에서는 부당대우 신고센터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그러나 신고센터에는 현장실습 중 사고가 발생해도 이를 강력히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올해 3월에는 현장실습생의 안전을 도모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직업교육훈련 촉진법 개정안을 비롯해 유사 법안 6개가 발의됐지만, 국회 상임위원회를 넘은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다.
사고 발생 뒤에도 제도가 바뀌지 않는 것을 보며 재혁씨가 바꾸고 싶은 건 명확해졌다. "경기도에 현장 실습 관련 조례를 전면 개정해서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해요."
이렇듯 정치에 참여해본 청소년들은 입시와 교육만이 아닌 기후, 인권, 소수자 문제 등 다양한 이슈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학생, 청소년의 역할을 넘어 사회에 변화의 발판을 만드는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정치란
미래, 소통, 햄버거, 필수, 코미디, 콜로세움. 취재팀이 인터뷰한 청소년들에게 '정치란 무엇인지' 질문했을 때 나온 답변들이다. 주어진 권한과 기회는 부족하지만, 청소년들은 정치 참여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혹시 콜로세움 아세요?" 김지영 영주시 청소년의회 의장(19)은 취재팀에게 질문을 던졌다. "콜로세움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시민들의 관심을 자극적인 걸로 현혹해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돈과 나라를 굴리기 위해 만든 거거든요. 시민들을 바보로 만들기 위해서죠." 지영 씨는 결국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청소년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해 스스로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2편 기사(선거권은 하향됐지만... '청소년 없는 청소년 정치')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