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기사(촛불집회에 나왔던 '교복 입은 시민'... 그 6년 후)에서 이어집니다.
"그런 큰돈이 어떻게 청소년들에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재영 서울시 청소년의회 의장(20)은 기탁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국회의원 비례대표 출마를 포기했다. 공직선거법 제56조에 따르면, 관할 선거구 선거관리위원회에 500만 원의 기탁금을 내야 비례대표 후보자에 등록할 수 있다.
반쪽짜리 법안
정치하는 청소년이 늘고 있지만 한계는 여전히 선명하다. 청소년이 주체가 되는 정치, 청소년의 삶과 맞닿아 있는 정치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오로지 '어른의 시각'에서 청소년의 정치를 바라보고 있어서다.
정치자금법에서는 비례대표 후보자가 후원회를 둘 수 없도록 규정한다. 임씨가 고민 끝에 출마를 포기한 결정적 이유다. 그는 "청소년 정치 참여의 문턱이 낮아지기 위해서는 청소년에게 기탁금을 지원해주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금전적 기반이 부족한 청소년도 선거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2000만 원. 지난 6월 김경주 더불어민주당 경주시의원 후보(20)가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쓴 돈이다. 경주씨에게 인건비부터 선거 사무소 임대료, 각종 공보물 제작비 등 돈이 가장 부담이었다. "청년∙청소년 후보가 천만 원의 돈을 모으는 것 자체부터 무리고, 후원회를 통해 모았다고 하더라도 그 회계 절차가 상당히 복잡합니다." 청소년은 선거를 치르기 위한 자금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올해 4월 국회 본회의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 해당 법안에는 청년 및 장애인 후보자의 기탁금 기준과 반환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치하는 청소년들이 꼽았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인 금전적 문제가 개선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변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유럽 정치 선진국들에는 기탁금 제도가 없다. 존재하더라도 명목상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청소년들은 선거 출마에 '돈'이 걸림돌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10대 후보는 불과 7명이 전부다. 전체 출마 후보 668명 중 10대 후보자는 약 1% 수준에 그쳤다.
부족한 정당의 역할
"정당한 시스템에 따랐던 저의 공천 과정에서 제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반발하는 선배 정치인이 있었습니다. 이후 중앙당 비대위 차원에서 재심을 거쳐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의혹을 제기한 후보자들로부터는 사과도 받지 못했습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경주시의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경주씨는 기성정치의 부당함을 느꼈다. 당내에서조차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자신을 부정하는 시선이 있다는 것. 김씨는 "이 같은 기성정치 문화가 지속된다면 청년, 청소년 정치인은 더 이상 도전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라며 변화의 필요성을 성토했다.
이렇듯 하향된 당 가입연령이 무색하게 당내에서 청소년의 입지는 여전히 좁다. 당원의 기본 권리를 명시한 당헌과 당규에서부터 빈틈이 보인다. 경주씨가 속한 더불어민주당은 당헌에 여성과 청년, 노인, 노동자, 재외국민 당원의 권리를 특별히 배려하는 조항을 담고 있지만, 나이부터 참여가 제한되는 청소년 당원의 권리는 쏙 빠져 있다.
국민의힘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당헌과 당규에 청소년 당원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당내 청년당인 '청년국민의힘'은 2020년 12월 출범 이후 독립적인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당규를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해서 제시됐지만,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기본적인 권리보장부터 불안하다 보니 당내 청소년들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더불어민주당 내 청소년을 오롯이 저 혼자 챙기는 처지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청소년 포럼인 더불어청소년 이정인(20) 위원장의 토로다.
어른들이 만든 시스템
"청소년이 주인공인 행사인데도, 어른들이 일하는 시간이 맞춰서 행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재영 서울시 청소년의회 의장은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정치 행사조차 학업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진행된다고 말했다.
행사를 평일 오후 4시 이전에 잡는 것이 대표적이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한창 수업을 듣고 있을 때다. 주최 측에서 학교로 공문을 보내주기는 하지만, 정치적 활동이라는 이유로 출결 처리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 학교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어른들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시스템에서도 정치하는 학생은 소외된다.
중앙정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 정치에서 지역 청소년은 더 크게 소외된다. 대구광역시에 사는 주경민 더불어청소년 수석 부위원장(20)은 지역 정치 청소년의 가장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교통비와 이동시간을 꼽았다. 주씨는 KTX로 서울에 가는 데 왕복 4시간이 걸린다. 자주 올라가다 보면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고속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동에만 왕복 8시간, 9시간을 쏟는 것이다.
대구에서도 외곽에 사는 강동엽 더불어민주당 당원(20)은 "지난 2주 동안 서울에 서너 번 다녀왔다. 한번 왕복할 때마다 10만 원 가까이 들어서 가고 싶어도 못 갈 때가 있다"라고 말했다. 공식적인 행사에 눈도장을 찍으며 당내 입지를 굳힐 기회를 놓친다는 점도 지역 청소년만의 고충이다. 지역에 사는 취재원 중 소속된 당에서 이동 비용을 지원받았다는 청소년은 아무도 없었다.
지역 청소년들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서울로 가야만 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서울에 모든 정치적 인프라가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정치행사나 시위, 집회 등은 국회가 있는 여의도나 청와대가 있는 광화문 인근에서 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활발한 정치 활동에 있어 서울은 선택이 아닌 '필수 옵션'과도 같다.
"지방에서 그만큼 청소년 정치를 지원하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김지영 영주시 청소년의회 의장(19)은 지방이라서 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적고, 기회를 찾아 서울로 올라가기엔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놨다.
지역 불균형 문제는 청소년의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중앙정치보다 작은 조직의 규모를 비롯해 정치 활동 교류를 위한 인적 네트워크까지도 한계가 있다. 노연지 전 김해시 청소년의회 의장(16)도 지역 청소년의회 대표들과 교류하기 위해 참여위원회에 들어갔지만, 대표들과의 모임 역시 매번 서울에서 개최된다고 했다. '교류'라는 이름 아래 모든 활동의 중심은 서울에 있었다.
청소년 정치의 미래
청소년 정치의 한계는 모두 청소년에 의한 정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청소년을 위한 정치에 정작 주인공인 청소년의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소년정책연구원의 모상현 선임연구위원은 청소년이 주체가 되는 정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리 사회는 학교 폭력, 취약 계층 학생 등 청소년을 복지적 관점에서만 대하려는 시도가 강하다." 복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시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논의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래, 그리고 현재의 시민으로서 청소년들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런 관점을 통해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를 확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