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한 저택 앞.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대표를 맡고 있는 권영국 변호사가 높고 흰 담벼락에 책 한 권을 머리에 받친 채 물구나무를 섰다. 뒤집힌 넥타이가 얼굴을 덮었다. '합의 불이행과 노조와해 불법 행위, SPC 최고책임자 허영인 회장은 숨지 말고 직접 나서라'가 적힌 손팻말을 한 손에 든 채였다. 1인시위 장소는 허 회장의 저택 앞이었다. 권 변호사는 두 달 전에도 서울 용산구 한남동 SPC 빌딩 앞에서 물구나무 1인시위를 했다.
부슬비가 내린 25일 오후 1시, 정장 바지에 흰 와이셔츠를 입은 권 변호사는 다시 SPC빌딩 앞을 찾았다. 이번에는 넥타이를 셔츠 단추 사이에 끼웠다. 책 대신 수건을 준비했다. 잠시 건물 직원과 실랑이 끝에 1인시위임을 재차 밝히고 물구나무를 설 수 있었다. 이번에는 '파리바게뜨는 모성권을 보장하라'는 팻말을 들었다. 왜 물구나무일까. 그가 말했다.
"정도 경영을 한다면서 직원 권리를 침해하고 노조를 탄압 중인 상황은 '거꾸로'입니다. 이런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물구나무를 섰습니다."
왜 물구나무'까지' 서게 된 걸까. 관심 때문이었다. 권 변호사는 "대중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있긴 했지만, 점잖은 모습만으로는 주목을 하지 않으니 일단 해보자 싶어 해봤다"고 멋쩍게 웃었다. 1인시위 뒤 인근 카페에서 권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현재 국내 시민단체 600여 개로 구성된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의 대표로 동시다발 시위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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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권영국 변호사가 '물구나무 1인시위'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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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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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행동은 시민들이 직접 파리바게뜨의 사회적 합의 이행과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전국 SPC매장 앞에서 1인시위를 여는 프로젝트다. 임종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의 53일 단식과 노조 간부들의 40일 단식 농성에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아내겠다는 의도다. 공동행동에 따르면 지난 9일에는 350곳에서, 지난 23일에는 500여 곳에서 1인시위가 진행됐다.
그러나 갈등은 회사가 아닌, 가맹점주협의회(협의회) 사이에서 발생했다. 협의회가 전국행동의 1인시위가 영업을 방해하고 브랜드 가치를 훼손한다며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것. 지난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1민사부의 결론은 '기각'이었다. 전국행동 시위 대상은 가맹점주가 아니라 SPC그룹이라는 결론이다. 개별 가맹점을 대신해 협의회가 영업방해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판단도 나왔다. 가맹점주협의회가 '사회적 합의 이행에 협력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도 함께 적시했다.
그럼에도 파리바게뜨 사태의 갈등은 가맹점과 노동조합·시민사회간 다툼으로 비치는 상황이다. 권 변호사는 여기서 '프레임'을 이야기 했다. 그는 "실체는 다르다. 원인을 제공한 SPC가 뒤로 빠져있기 때문이다. 부당 노동행위를 한 게 드러났고,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데 마치 노동자나 시민사회가 가맹점주에게 피해를 끼치며 불법행위를 하고 있다는 프레임이 교묘하게 짜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소수 노조의 떼쓰기'라는 주장에도 반박했다. "많은 시민이 이 문제에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있고, 해결을 바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도 했다.
한편, SPC의 '합의 이행 완료' 주장과 반대로, 파리바게뜨 지회는 SPC가 이 합의안을 여전히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6월 외부 검증위원회가 추진한 중간 검증 결과 발표에선 "SPC가 사회적 합의 항목 중 자회사 주주구성 등 2개만 이행했다"는 발표도 있었다.
고용노동부가 2017년 SPC의 제빵기사 불법 파견을 적발한 이후, 지난한 과정을 거쳐 2018년 1월 '사회적 합의'가 체결됐다. 노동환경 개선 및 본사 동일 임금 체계 약속 등 11개항이 여기 담겼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 정치권을 비롯해 사측, 민주당, 가맹점주협의회, 파리바게뜨 지회, 한국노총 노조, 시민단체 등이 참여해 도출한 결과다. 이 합의를 통해 SPC는 162억 원의 과태료 처분을 면제 받았다. 이번 가을 국정감사에서도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을 중심으로 파리바게뜨 사태에 대한 검증과 감독이 이뤄질 예정이다.
아래는 권 변호사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우스울까요?... 관심 갖게 할 수 있다면"
- (3분 정도 물구나무 서셨는데) 머리 안 아프신가요.
"괜찮아요."
- 지난 23일 SPC 회장 집 앞에서도 물구나무 1인 시위를 하신 영상을 봤습니다.
"약간 우스울까요? 머리 희끗희끗한 사람이 물구나무까지 선다... 처음에는 파리바게뜨 매장 앞 1인시위 챌린지를 하기로 했는데요.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킬 방법이 뭘까, 가끔 망가질 수도 있지 않겠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여주기 식이라는 말도 들을 수 있겠지만, 현실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비춰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그게 물구나무였군요.
"내가 할 수 있는 범주에서 이건 가능하겠다 싶어서 했는데(웃음). 여러 비판도 있었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하기 힘들고, 대중적이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고요. 그런데 소셜미디어와 주변 반응이 있더라고요."
- 물구나무까지 서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며칠 전엔 건물 관계자가) 왜 물구나무를 서냐, 물으시더라고요. 'SPC가 정도 경영을 이야기하지만 내부 직원에 대해선 휴식권도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사회적 합의도 지키지 않고 있다. 법적 책임을 면제받기 위한 것이었는데, 거꾸로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있다. 정상을 거꾸로 뒤집고 있어서, 현실을 몸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이렇게 한다'고 했습니다. 동의하든 안하든 더 이야기 하진 않으시더라고요."
- 23일 두 번째 동시다발 1인시위가 진행됐습니다.
"1차에선 350곳이 목표였는데, 초과했습니다. 2주 만에 다시 2차 행동을 했고요. 지금 집계된 것을 보면 500여 곳은 넘은 것 같습니다. 지역에서 호응이 높습니다. 지역 공동행동이 만들어진 것은 9개이고요. 공동행동을 만들진 않았지만 참여하는 지역도 한 3~4군데 더 됩니다."
- 전국행동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요.
"양재동에 있는 파리바게뜨 직영점 앞인데, 비가 많이 올 때였습니다. 비를 꽤 많이 맞았는데요. 근데 한 젊은 친구가 비 맞고 있는 게 안 돼 보였는지, 우산을 하나 가져왔더라고요. '선생님 감기 드실 수 있으니 쓰시라'고. 점심시간이라 밥 먹으러 나왔다면서. 찡했죠. 그때 목표 달성했습니다. 그런 친구를 만났으니까요."
- 지난 22일 가맹점주협의회가 공동행동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이 기각 됐습니다.
"무리한 소송이었어요. 이건 노동조합이 주도하는 행동이 아니거든요. 시민사회가 만든 행동입니다. 시민들이 노동자들의 권리 침해에 공분한 것이고, 기업이 제대로 보장하라고 외치는 표현인데, 이를 통제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봤습니다."
- 명예훼손 영업방해, 업무방해 3가지가 제기됐었는데요.
"먼저 명예훼손. '노동탄압하지 말라' '휴식권 보장하라' 이런 문구도 문제제기 됐어요. 흔히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인데도... 재판부는 실제로 명예훼손될 여지가 없다고 봤습니다. 왜냐면 이 요구들은 SPC그룹 회장을 향한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SPC계열사가 제빵사들을 고용하고 있지않나요. 가맹점주들에 대한 요구가 아닙니다.
그 다음 영업방해와 업무방해. 혼자 손팻말 들고 건물 옆에 서 있는 겁니다. 들어가는 손님한테도 구두로 뭘 권유하지 않고요. 법원은 '(가처분금지를) 신청한 것은 개별 가맹점사업자가 아니고, 회원으로 구성된 가맹사업자단체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법적 주체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 사회적 합의 이행 여부에 대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가맹점주협의회가 (사회적 합의 논의 당시) 관련자로 참여했다고 적시했죠. '사회적 합의에 따라 합의 내용 이행에 협력할 의무가 있다'고요. 재판 과정에 (합의 이행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사회적 검증위원회 결론을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부분이 참작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뒤로 빠진 본사, 왜곡된 갈등... 방향이 틀렸다"
- 가맹점주협의회는 불매운동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브랜드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도 합니다.
"지금 (논란은) 가맹점주와 함께 노조, 시민사회가 갈등하고 있는 것처럼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데, 밖에서 보이는 모습과 달리 그 속은 실체가 다릅니다.
자본이 뒤로 빠져있기 때문이에요. 원인을 제공한 것은 SPC입니다. 부당 노동행위를 한 게 명백히 드러났고 사회적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마치 노동자나 시민사회가 가맹점주에게 피해를 끼치며 불법 행위를 다투고 있다는 프레임이 교묘하게 짜여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모습은) 맞은 사람에게 '당신들이 사과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럼 약자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거잖아요.
파리바게뜨가 시민과 싸움을 하겠다는 형국입니다. 완전 잘못 잡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이 싸움을 주도하는 것은 시민 사회입니다. 시민들은 바로 소비자이지요. 소비자를 대상으로 공격을 취하고 있는 겁니다."
- 전체 제빵기사 중 200명 안팎의 소수 노조가 하는 요구라는 점이 늘 강조됩니다.
"사회적 합의 내용을 보면, 가맹점주협의회가 들어오는 노사협의체를 만들어 처우개선, 노동환경 개선을 해야 한다는 문구도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구성하지 않았지요. 부당노동 행위 시정한다면서 소수노조를 억압합니다. 그간의 부당노동행위는 노동위원회에서도 인정됐고, 검찰에 송치되기까지 했어요."
- 회사는 합의를 모두 이행했다는 입장인데요.
"임금 문제를 볼까요. (합의 당시) 3년 이내 자회사 고용, 제빵기사들과 (본사인) 파리크라상의 임금 체계를 동일하게 적용하기로 했는데 이걸 검증하기 위한 임금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놓고) 이제는 검증 방식을 다시 논의하자는 겁니다. 최유경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수석부지회장이 40일 만에 단식을 풀 때, 민주당과 정의당도 공개적으로 밝혔어요. 국회에서 국정감사까지 나아가 이 문제를 검증하겠다고요."
- 시민대책위가 구성된 지 꼬박 1년이 지났습니다.
"싸움의 성과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이 상태를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의 일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도덕적으로 봐도 그렇고, 법치주의 관점에서도 이럴 순 없습니다.
많은 시민이 이 문제에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있고, 해결돼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똑똑히 보여주고 싶어요. 소수노조의 떼쓰기라는 주장은 억지입니다. 소수의 이야기가 진실임에도, 이를 짓밟는 논리는 더 이상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