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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4년(고종31) 동학농민운동 당시 농민군과 조선-일본 연합군이 공주 우금치에서 벌인 전투 기록화.
1894년(고종31) 동학농민운동 당시 농민군과 조선-일본 연합군이 공주 우금치에서 벌인 전투 기록화. ⓒ 한국문화재재단 월간 문화재 갈무리
 
"우리 것이라서 저절로 알고, 다 아는가? 아니다. 아름다움은 그냥 오지 않는다. 아름다움의 '아름'은 알음이자, 앓음이다. 앓지 않고 아는 아름다움은 없다." 

한국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 선생을 기리는 책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의 서두에 나오는 내용이다. "'아름'은 알음이자, 앓음이다"는 대목이 심장의 박동을 울렸다.

아리랑의 의미망(意味網)은 여러 갈래의 줄과 고리로 이어져 있다. 거창한 인생관ㆍ세계관ㆍ 우주관, 고도의 철학적 사유와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아리랑은 제대로 배우지 못한 민중들의 소유이기에 그럴 능력도 없거니와 약할 수 밖에 없다. 

꺾인 꽃대를 보고, 비 맞은 들새를 보고, 연민의 정을 보낸다. 불의를 보면 의분한다. 억울함을 당하면 분노한다. 갖고 싶은 것은 갖고자 한다. 고통과 갈등을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푸는 길이 존재획득과 존재지속의 길임을 명철하게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주석 1)

민초들이 즐겨부르는 아리랑은 어느 측면 '앓음'의 노래였다. 앓으면서 맺힌 것을 풀고자 하는 신원이었다. 포악한 관리들에게, 때로는 무자비한 외세에 시달리며 살아온 백성들의 '앓음'이고 하소연이었다. 

벽에 부딪치면 그 벽을 깨는데 최선을 다한다. 여의치 않으면 피해서 돌아간다. 피할 수도 없는 벽에 또 부딪치면 주저앉는다. 그리고 한가(恨歌)와 원가(怨歌)로 본풀이를 한다. 남 보기에는 패배자로 보일 것이나 결코 패배자일 수 없다고 몸부림친다. 

몸부림치는 절규가 아리랑이요, 풀이 하는 메시지가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결한(結恨)과 결원(結怨)을 넘어서서 해한(解恨)과 해원(解怨)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아리랑은 한 맺힘이 아니라 한 풀이에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에 작은 자아를 큰 자아로 상승지향시키는 것이다. (주석 2)

중국의 고전 중의 고전인 <시경(詩經)>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세상이 잘 다스려질 때의 노래는 편안하고 즐거우니 그때의 정치는 화애로우며, 세상이 어지러운 때의 노래는 원망하고 노여우니 그때의 정치는 잘못되어 있으며, 나라가 망할 때의 노래는 애처롭고 생각에 잠기게 하니 그때의 백성들은 곤궁에 빠져 있다.

편안할 때보다 괴로울 때가, 즐거운 시절보다 고통스러운 시기가 훨씬 많았던 이땅의 민초들에게 노래는 위안이고 진정제이며 새로운 활력이였다.

"'노래'라는 단어는 원래 '놀이'와 함께 '놀다'라는 동사에서 파생한 명사형이다. 그러니까 노래는 일종의 '노는 행위'라는 의미가 되는데, 여기서 노는 행위 즉 놀이는 일상적 노동으로부터의 해방과 새로운 노동의 준비, 즉 노동의 재창조(Recreation)과정으로서의 놀이이다. 결국 노래라는 말 자체가 노동 즉  민중적 삶을 전제로 하며 동시에 해방과 창조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 된다." (주석 3)

1894년 동학농민혁명기는 역사상 가장 많은 노래, 민요ㆍ참요가 불렸다. 이 부분은 뒤로 미루고, 여기서는 그 당시 불렀던 <아리랑 세상>을 소개한다.

      아리랑 세상

 발 아파서 못 신던 미투리신
 고무신 바람에 도망을 친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말구  
 짚신장사 김첨지 밥 굶는다

 삼대째 내려오던 놋그릇 대통
 양궐련 바람에 도망을 한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양궐련 연기에 집 떠나간다

 김 잘 매고 베 잘 짜는 맏며느리는
 양갈보 바람에 도망을 한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정강치마 수통다리 꼴 보기 싫다

 매끈매끈 먹기 좋은 입쌀은
 호밀조 바람에 도망을 한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이밥 먹기 좋은 줄 누가 몰라

 주머니 지키던 구리돈 한푼
 아리랑 타령에 도망을 한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한 오백년 살젯더니 왜 도망했나 (주석 4)


주석
1> 박민일, 앞의 책, 42쪽.
2> 앞과 같음.
3> 김창남, <삶을 지향하는 노래>, 김창남 외, <노래운동론>, 14쪽, 도서출판공동체, 1986.
4> 앞의 책, 17~18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문화열전 - 겨레의 노래 아리랑]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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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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