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게 사랑받는 유명인들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까요? 현직 아나운서와 비즈니스 매너 강사가 '국민멘토'들의 화법과 태도를 세 편에 걸쳐 분석합니다.[편집자말] |
지난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데뷔 56년 차 윤여정 배우는 연기만큼이나 거침없고 솔직한 입담으로 주목받습니다. '윤며들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는데요. 대중은 그녀의 말에 왜 열광할까요?
듣는 사람의 공감 얻는 가장 좋은 방법
임희정(아나운서, 아래 임) : 2021년 아카데미상 수상 후 인터뷰에서 한 말은 윤여정 배우의 가치관과 철학을 느끼게 합니다. "아카데미상을 받았다고 달라진 건 없어요. 같은 집에 살고 있고, 나는 나대로 살다 죽을 거니까요." 자신의 경험과 살아온 인생을 바탕으로 거침없이 솔직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얘기합니다. 포장하거나 과장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상화(비즈니스 매너 강사, 아래 이) : 동의합니다. 누군가는 그녀의 말에서 잔잔한 위로를 받고, 누군가는 처세의 조언으로 여기며, 누군가는 속이 시원해지는 청량감을 느낍니다. 이렇듯 '말을 한다'라는 행위는 단어들을 연속적으로 발음해 정보를 전달한다는 1차원적인 기능 외에, 듣는 사람의 감정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란, 이 두 가지 기능 모두 능숙하게 활용할 줄 아는 이를 뜻합니다.
윤여정 배우의 말에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세 가지의 힘이 있습니다. 바로 삶에 대한 치열함, 현실적인 현명함, 거침없는 솔직함입니다.
임 : 맞아요. tvN <윤식당>에 함께 출연한 배우 정유미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해요. "유미는 CF를 정말 많이 찍었는데 난 겨우 하나 건졌어. 늙으면 이래서 좋아. 만약 또래였다면 엄청 비교돼 정신과에 갔을 거야." 또 '국민엄마' 이미지에 대해서는 "국민엄마 제일 싫어! 내 아들 둘 키우는 것도 힘들어!"라며 웃어요. 조금이라도 이미지를 멋지게 누리거나 이용할 마음이 없어요. 솔직한 마음의 정도를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그녀의 능력입니다.
이 : 게다가 그 솔직함은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게 포인트에요.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이룬 배우만의 고뇌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대중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을 느끼며 더욱 공감하게 되는 거죠.
윤여정 배우는 이혼과 생활고, 일하는 엄마로서 느꼈던 자식에 대한 미안함, 연기력이 부족했던 과거 등 자신의 부족함까지 솔직하게 전합니다. 명예와 성공은 좋은 일이니 쉽게 얘기할 수 있지만, 치부나 실패를 숨김없이 얘기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데 말이죠. 이처럼 공감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정성을 담는 것입니다. 진정성은 호소력으로 연결되고 자기의 생각과 의도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말도 숙성이 필요하다
임 : 그 태도를 볼 수 있는 말이 있어요. tvN <꽃보다 누나>에서 후배 배우인 이미연이 질문합니다. "막상 믿고 들어갔는데 작품이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하세요?" 윤여정 배우는 이렇게 답하죠. "똥 밟았다 그러고 하지 뭐. 근데 다 잃는 것 같은데 또 사람을 하나 얻어."
저는 '똥 밟았다'라는 표현에서는 웃고, '사람을 얻는다'라는 말에서는 감동을 받았어요. 아마 많은 이들이 그랬을 겁니다. 듣는 이들이 두 가지 중 하나를 느끼면 성공한 말하기라 할 수 있는데, 바로 웃게 하거나 감동을 느끼게 하는 것이거든요. 둘 중 하나만 주기도 힘든데 그녀는 유쾌함에 깨달음까지 던져줍니다. 이런 화법은 어떻게 해야 구사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유와 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녀는 70년이 넘는 생을 살아냈고 50년 넘게 연기를 해왔어요. 그만큼 내공과 경력이 있기에 자기 확신과 또렷한 주관이 가능한 겁니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고 있을, 아직 70년을 살지 못한 우리는 어떻게 확신과 주관을 가지고 일상 속 여러 질문에 호쾌한 대답을 건넬 수 있을까요?
말은 사람의 생각과 의견을 조음기관을 통해 소리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을 잘하고 싶다면 생각과 의견을 천천히 공들여 정리하는 연습부터 해야 합니다. 일종의 말을 숙성시키는 방법입니다. 저는 아나운서 지망생들에게 '꼭 말하기 전에 써보라'고 권합니다. 물론 그 전엔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고요. 단순히 생각만 해서는 안 돼요. 글로 시각화한 후 문장을 고쳐보면서 더 좋은 문장을 완성합니다. 그걸 소리 내어 반복해 연습하는 거죠.
쿨하고 멋진 말에는 그 사람의 사유가 반드시 존재합니다. 깊게 고민하고 말을 정리했기에 단순하지만 명확한 표현이 가능한 거예요. 말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노하우입니다.
핵심은 '쿨내'가 아닌 '진정성'
이 : 윤여정 배우의 말이 탁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자신을 낮추는 태도'에 있습니다. 멋지다는 찬사에 손사래를 치며 '멋있는 게 뭐냐'고 반문하고, 아카데미 수상은 온전히 '운빨' 덕분이라고 말하고, 배우 생활로 얻은 것이 무어냐는 질문에는 '유명해진 것'이라면서도 그마저 '허명'이라고 덧붙입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적절한 겸손은 듣는 사람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해요.
사실 모든 사람이 윤여정 배우같은 탁월함을 갖추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나이와 경력은 우리 사회에서 상당히 높은 위치에 속하잖아요. 대화할 때 삐딱하게 기대어 앉은 편안한 자세나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거침없이 내뱉는 자조 섞인 말들을 우리나라 정서상 사회초년생이나 20대 젊은이들이 구사할 순 없기도 하고요.
모든 분야가 그렇듯 대화와 소통 역시 그 나이에 걸맞은 방법이 있습니다. 윤여정 배우의 화법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보다 자신의 말에 진정성을 담아내는 방식이라는 걸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임 : 맞아요. 잘 지적해 주셨어요. 저도 이 글을 마무리하며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버티는 거야" "배우는 돈이 급할 때 연기를 제일 잘한다" "60세가 넘어서부터는 사치하며 살기로 했다. 그 사치는 좋아하는 작가·감독의 작품을 돈과 상관없이 하는 것".
윤여정 배우의 이런 표현은 즉흥적으로 흘러나온 말이 아닙니다. 버텨봤고, 돈이 급해봤고, 자기 일과 삶을 고민해 봤기에 가능한 말이죠. 그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그만큼 통과한 시간과 깊게 고민한 과정이 있었다는 걸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확신과 또렷한 주관은 경험과 사유에 의해 만들어지는 거니까요.
[세 줄 요약]
- 솔직하게, 그러나 겸손하게 말하라.
- 말하기 전에 생각은 의견을 글로 써 봐라.
- 멋진 말은 깊은 고민에서 나온다.
□ 필자 소개
임희정(limanna0520@naver.com) : 12년 차 아나운서. 말을 업으로 하며 산다. 매일 뉴스를 전하고,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 앞에 서고, 아나운서 준비생들을 가르친다. 제주MBC·광주MBC 아나운서를 거쳐 현재 SK브로드밴드 뉴스앵커로 활동한다. 책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를 썼다.
이상화(commentstar@naver.com) : 10년 차 매너소통 강사. 기업·공공기관·학교 등에서 비즈니스 매너와 태도, 에티켓을 강의한다. 유튜브 채널 '러브앤매너'를 운영 중이며 책 <비즈니스 매너 바이블>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