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포해수욕장에는 여름이 가는 게 아쉬운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뛰어 놀고 있었다. 바닷가에는 한여름처럼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오히려 지금 바다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제대로 한가하게 바다를 산책하고 있었다.
채석강에는 화강암, 편마암 퇴적 절벽이 바닷물에 침식되어 마치 시루떡처럼 층층이 쌓인 모습이 일대 장관이다. 안전경계선까지 바다의 밀물이 밀려들어와 여행객들이 바위에 바싹 붙어서 걸어 들어갔다. 전라도를 대표하는 명승지에 바람까지 불어와 마음이 시원했다.
바다의 바람을 즐기는 갈매기들이 사람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바위 끝에서 한가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가을의 지구 북반구에서 보인다는 깃털구름이 바다에서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바다에는 여름이 가고, 가을이 찾아와 하늘이 마치 이태리의 하늘처럼 새파랬다.
한 식당에서 부안의 대표 음식, 백합죽을 배불리 먹고 나와, 적벽강 쪽으로 서해랑길을 걸었다. 부안의 바다는 늦여름의 햇살에 하얗게 부서지고 반짝이며 계속 우리를 따라왔다. 서해랑길 트래킹에 나선 여성 백패커들과 잠시 끊어진 길을 함께 찾아가기도 했다.
우리나라 남부지방 해안에서만 자라는 후박나무가 이곳 부안 격포리 바닷가 절벽에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천연기념물 후박나무가 감싸는 길을 걷는 기분이 상쾌했다. 바닷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너머에는 다시 파아란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산언덕 위에 동아시아 해상교류의 흔적을 보여주는 부안 죽막동 유적이 자리잡고 있었다. 노천 제사를 지내던 해안 절벽 위에 올라서 보니 왜 이곳에서 제사를 지낼 수밖에 없었는지 바로 이해가 된다. 섬 사이로 바닷물이 꽤 험하게 흘러 지나가고 있었다. 어부를 보호하는 개양할머니의 전설이 서린 수성당에서 바라보는 서해 바다의 모습은 장쾌했다.
붉은 색을 띤 절벽의 바위 아래로 내려가니 적벽강이다. 몽돌이 펼쳐진 해변에 파도가 몰아치는 모습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름다움이다. 이 적벽강에는 찾는 이도 많지 않아 바위 위에 한가하게 앉아 멍을 때렸다. 변산반도의 적벽강은 중국의 적벽보다 더 아름답지만 중국의 적벽을 보지 못했을 당시 선조들이 중국의 지명을 따온 게 마냥 아쉬울 따름이다.
이곳은 또한 갈매기들의 천국이다. 세찬 바람 위에 앉아 날개를 맡기고 붕붕 떠 있는 갈매기들이 있는가 하면, 파도 위에 앉아 파도 서핑을 즐기는 갈매기들도 많다. 가만히 바다 위에 앉아 파도에 몸을 맡기는 갈매기들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마침 적벽강에 내려온 아저씨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는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던 아저씨들이 돌아가면서 남긴 말씀에 그만 놀라고 말았다. 그들은 70세 기념으로 친구들끼리 모여 여행 온 할아버지들이었던 것이다. 요새는 70세도 청춘이라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나와 나의 가족은 할아버지들의 젊음에 연신 감탄을 했다.
조선의 10대 풍광으로 꼽혔다는 부안의 낙조를 즐기며 식사를 했다. 썬글라스로 바라본 오늘의 태양은 완전한 원형으로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본 일몰 중 가장 최고의 일몰이었다. 게다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일몰 속 담소를 나누니 이것이 세상살이의 가장 큰 행복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