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국회로 대표되는 한국 정치권에 '당내 분란'이란 현상이 심상찮다. 대표 축출에 따른 내홍으로 소란한 국민의힘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최근의 대표 경선과 당헌 개정 속에 계파 갈등이 잠복과 분출을 반복하고 있다. 정의당 또한 연이은 선거 참패에 책임을 묻는 비례의원 사퇴권고 당원총투표 전후로 당내 갈등이 고조됐다.
당내 분란 속 당내 민주주의
흥미로운 사실은 이 모든 분란의 한가운데 '당내 민주주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대표는 지난 8월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당은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자유롭게 발언하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당원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말로, 자신과 관련된 당내 의사결정 과정을 비판했다. 법원은 그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국민의힘 지도체제 전환이 "당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써 정당민주주의에 반한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대표 경선 과정에서 "전자민주주의로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하고 당원 지위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간접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한 건 지역적 어려움과 규모의 문제 때문"인데, "이제는 통신·교통 수단이 발달해 국민·대중의 당원 의견을 실질적으로 수렴해서 그 의사에 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의견에 동조한 당내 인사들은 권리당원 전원투표를 전국대의원대회 의결보다 우선하는 당의 최고 의사결정 방법으로 규정하는 당헌 개정을 시도했으나 '이재명 독주체제'를 우려한 당내 소수파의 반발로 한 발 물러난 상태다.
정의당도 자당 의원 사퇴 제안이란 중대 결정을 당내 민주주의의 일환인 당원 총투표에 맡겼다. 결과는 59.25% 반대로 부결이었다(찬성 40.75%). 이 과정을 주도했었던 정호진 전 대변인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원 총투표는 정의당 최고 의사기관인 당대회보다 우선하는 결정"이라며 "강제성이 없다 해도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은 당원에 의해 선출된 분들"이니 "당원 결정을 가볍게 여길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 투표에 큰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었다.
보통 한 나라 단위에서 이뤄지는 민주주의를 당내에서도 실현하겠다는 말과 실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치인들의 당내 민주주의는 권력 다툼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며 흘려 넘겨야 할까? 아니면 이제야 우리 정당도 1인 보스 지배에서 벗어나 당원이 당의 주인이 되는 민주적인 정당으로 거듭나고 있다며 만족감을 표해야 할까?
그래도 뭔가 석연찮은 이들은 이런 질문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결과적으로 정의당의 당원 총투표는 당내 분란을 더욱 부채질하지 않을까? 이재명 대표가 말하는 직접민주주의는 일반 당원이 아니라 이재명과 그의 팬들을 위한 것은 아닐까? 당내 민주주의에 근거한 이준석 전 대표의 주장과 법원 결정은 전체로서의 국민의힘에 이로운가, 해로운가?
조직의 목적이 조직 운영원리를 결정한다
이런 질문들 속에서 정당은 얼마나 민주적으로 운영돼야 하는지, 바람직한 정당 운영원리는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자.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당이란 무엇인지 그 정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정치 조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하나는 정당이고, 다른 하나는 이익집단이다. 이 둘을 나누는 기준이자 정의는 그 조직의 목적에 있다. 정당은 공직으로 표현되는 정부 권력의 획득과 지휘를 위한 조직체다. 반면 이익집단은 그런 권력이 주도하는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정당의 목적이 이와 같다면, 그 조직은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 당연히 그 목적, 정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적합한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맞다. 즉 선거 승리를 위해 당이 보유한 인적·물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치·활용하는 것이 당 운영의 제1원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사정을 단순화하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만약 어떤 정당에 가장 큰 자원이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라면, 그 지도자가 수월하게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이 어김없이 집행되도록 그에게 되도록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좋다. 반대로 그 당의 핵심 자원이 다른 당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당원이라면, 그들이 자기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실제 현실은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1인 지도자나 일반 당원에게 가장 큰 권한을 부여하는 운영방식은 그 나름의 중대한 결함을 안고 있다. 당내 어느 한 사람이 독재적 권능을 행사하도록 허용하는 건 위험하다. 그 사람이 설령 카리스마적 역량을 갖고 상당한 지지를 동원하더라도, 그 역시 인간이기에 오류를 범할 수 있고 그 오류가 때로는 당에 큰 피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내 이견을 보장하고 리더의 결정을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수십수백만 당원의 문제는 정반대다. 그 수가 무척이나 많은 만큼 그들 사이에 이견이 많아 효과적인 정치 활동을 펼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이런 경우에는 그런 이견들을 조율하며 단결된 행동을 이끄는 중간 간부 내지 대의원의 역할이 중요하며, 그들에게 그에 합당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이런 설명을 통해 알 수 있는 바는 당의 조직체계와 운영방식은 그 당이 보유한 자원과 그 활용에 대한 기대에 따라 각기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당내 민주주의보다 중요한 당의 통합과 단결
그렇다면 당 운영의 근본 원리라고 흔히들 말하는 당내 민주주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당내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듯 당의 주권은 당원 심지어 당밖 지지자에게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조직의 목적이 조직의 운영원리를 결정한다'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국가의 목적은 국민 혹은 시민의 자유와 평등, 안전과 번영 등을 보장하는 데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군주정도 귀족정도 권위주의도 아닌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고 지금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럼 정당의 목적도 당원의 자유와 평등, 안전과 번영 같은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고, 그런 만큼 당원투표 같은 당내 민주주의 제도의 정당성도 약화된다. 단순한 비유는 단순한 이해로 이어지기 쉽다. 때로는 그것이 심각한 정치적 혼란을 가져오기도 한다.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당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당내 민주주의 실현이 아니라 당의 통합과 단결에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당의 목적이 정부 권력 획득을 위한 선거 승리에 있다면, 당은 절대 분열해서는 안 된다.
이유는 분명하다. 당의 분열은 당의 필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그런 분열의 극적 양상과 그 부정적 효과를 집권 여당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그들이 범한 잘못은 당내 민주주의를 따르지 않거나 대통령의 속 깊은 뜻을 부주의하게 드러낸 것이 아니다. 그들의 진짜 오류는 '내부 총질' 같은 분열 행태가 왜 집권당과 정부에 심각한 문제가 되는지, 당원과 시민들에게 설명하는 대신 쉽고도 뻔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에 의존한 데 있다.
당의 응집력과 결속력을 높이는 데는 1인 1표의 다수결보다 협상과 타협이 더 낫다. 정치는 갈등과 타협, 경쟁과 협력의 기술이다. 선거 승리와 정책 입법을 위해 치열하게 다투던 정당들도 필요하거나 합당한 사안에서는 타협하고 협력한다. 그것은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며 우리 사회에 특히 부족한 다원주의를 보장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물며 가치와 이념, 이익과 열정을 공유하는 같은 당원들 사이에서, 당의 통합과 단결을 위해서라면 그것을 권장하고 실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당의 통합과 단결을 이뤄내지 못하면 그 어떤 노선도, 이념도, 정책도 제대로 실현할 수 없다. 이것은 윤석열의 국민의힘뿐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에도, 심상정의 정의당에도 적용되는 또 하나의 기본 명제이다.
민주주의는 정당 사이에 있다
한국 정당의 문제는 무엇일까? 여러 관점에서 답할 수 있겠지만,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 번째는 정당이 시민들의 삶과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괴리는 대의제 정부에 심각한 위험이다.
이에 적지 않은 사람들은 한계가 뻔한 대의제를 시민 직접 참여로 대체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생계와 생활에 바쁜 시민들은 그럴 만한 여유가 많지 않다. 그들 대다수는 비록 드물더라도 애써 행한 참여가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시민의 정치 활동을 돕는 정치 조직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두 번째 문제는 우리 정당이 시민-유권자에게 제시하는 비전이 기대만큼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요즘 정치인들의 주장을 보면 자신의 옳음에 대해 무한한 확신을 가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이 나라의 운영을 책임지겠다며 그들이 밝히는 비전을 꼼꼼히 살피다 보면 이내 고개를 돌리게 된다.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지만 새 정부가 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정부는 '촛불 혁명'에 기대 과거와 전혀 다른 미래를 약속했지만, 그들의 정책은 현실 앞에서 판판이 무너지고 말았다. 정의당이나 다른 정당의 비전이 이들보다 낫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런 이유나 다른 많은 이유로 정당이 싫더라도 정당을 없앨 수는 없다. 자유는 이견을 보장하고 이견은 조직을 낳기 때문이다. 여러 정치 조직 가운데서도 특히 정당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시민들이 선택할 대안을 단순화해 주기 때문이다. 사회는 수많은 갈등으로 가득하다. 그런 갈등이 있는 그대로 분출하도록 내버려 두면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정당은 그런 갈등들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걸러 시민들 앞에 선택지로 제시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정당 간 경쟁으로 나타나는 그 선택지들이 우리 삶의 문제를 제대로 반영하지도, 우리가 믿고 따를 만큼 분명하지도 않다는 데 있다. 당내 분란이나 그와 관련된 정치인들이 앞다퉈 말하는 당내 민주주의가 이 문제의 해결에 기여할 것은 없다.
당은 설득력 있는 비전과 시민의 삶에 뿌리내림으로 상대 당보다 더 많은 지지를 모을 수 있도록 조직되고 운영돼야 한다. 그래서 미국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이렇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는 정당 '내부'가 아니라 정당 '사이'에 있는" 것이라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박수형씨는 정치학 박사로 서울시의회 입법조사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역서로는 <운동은 이렇게>(역서, 2021),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공저, 2013),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공역, 2016), <절반의 인민주권>(공역, 2008)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