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대한제국 침략이 노골화되고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해 외교권을 강탈하였다. 이어서 통감부를 설치하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의병활동을 막기 위한 총포 및 화약류 단속법, 출판물의 검열ㆍ압수를 합법화하는 출판법 등을 잇따라 공포했다. 그리고 일본군의 의병학살전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국적 제1호로 불린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처단하는 쾌거가 일어났다.
이즈음 각지에서 <아리랑 타령>이 불렸다. 명성황후 민씨의 권력남용을 비판하고 시국을 아파하는 내용이었다.
아리랑 타령
이씨(李氏)의 사촌이 되지 말고
민씨(閔氏)의 팔촌이 되려무나
남산(南山) 밑에다 장충단 짓고
군악대(軍樂隊) 장단에 받들어총 한다
아리랑 고개다 정거장 짓고
전기차(電氣車) 오기만 기다린다
문전의 옥토는 어찌 되고
쪽박의 신세가 왼 말인가
밭은 헐려서 신작로 되고
집은 헐려서 정거장 되네
말깨나 하는 놈 재판소 가고
일깨나 하는 놈 공동산 간다
아깨나 낳을 년 갈보질 하고
목도깨나 메는 놈 부역을 간다
신작로 가상다리 아까시 낡은
자동차 바람에 춤을 춘다
먼동이 트네 먼동이 트네
미친 놈 꿈에서 깨어났네. (주석 1)
이토 히로부미를 숫자를 들어 증오하는 노래도 널리 유행되었다.
십 진 가
일 일본놈의
이 이등박문이가
삼 삼천리 강산에서
사 사주가 나뻐
오 오대산을 넘다가
육 육철포〔율혈포〕를 맞고
칠 칠십 먹은 늙은이가
팔 팔자가 사나워
구 구두발로 채워
십 십자가(十字街)리〔열조가리〕가 났다. (주석 2)
만주의 우리 동포들이 세운 민족학교에서도 이토를 저주하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1. 일본놈의
2. 이등박문
3. 삼천리강산을 삼키려 날뛰다
4. 사처로 찾아다니던 안중근이
5. 오래 동안 기다리던 할빈역에서
6. 륙혈포로 쏴넘겨놓으니
7. 칠성구멍으로 피를 토하며
8. 팔작팔작 죽어가는 이등을
9. 구름같이 뫃인 사람들 앞에서 이등의 모가지를 디디고 만세 3창
10. 열 번 다시 죽어도 속만 시원해라. (주석 3)
주석
1> 임중빈, <한말 저항시집>, 134~135쪽, 정음사, 1983.
2> 이중연,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428쪽, 혜안, 1998.
3> 앞의 책, 427~428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문화열전 - 겨레의 노래 아리랑]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