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교육부가 '민주시민교육과'를 전격 폐지하기로 했다. 이는 90년대 이후 교육선진국들이 하나같이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해 왔던 흐름과 정면 배치되는 정책이다. 게다가 'OECD 교육 2030 보고서'에서 강조한, 보다 나은 삶과 사회변화를 위해 교육의 변혁적 역량을 강조한 방향 설정과도 어긋나는 흐름이다. 다시 말해 '민주시민교육과' 폐지는 학생의 자주성과 비판적 시민성 함양, 그리고 공공성을 지향하는 세계 시민성 함양 교육과도 어긋나는 정책이다.
80년대 세계화 흐름 속에서 국가 간 노동시장 장벽이 무너지고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북서유럽 선진 국가로 대거 유입되었다. 더불어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면서 다인종 다문화 사회가 형성됨과 동시에 인종‧문화 갈등이 현실화하였다. 거기다 90년대 들어 교육선진국 청년층 투표율이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고 정치적 무관심이 확산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청소년 범죄 또한 전염병처럼 번져나갔다. 외국인 혐오 범죄와 테러가 횡행했고 그것은 고스란히 북서유럽 국가 정치권을 긴장시켰다.
이러한 시대 배경을 바탕으로 독일,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를 비롯해 북서유럽 교육선진국가들에선 '민주시민교육'을 한결같이 강화해 왔다. 특히 프랑스는 2015년 사회과와 도덕교과를 통합해 '시민도덕' 교과를 탄생시켜 초중고 전체 교육과정에서 비중 있게 가르치고 있다. 독일은 '성교육, 정치교육, 생태교육'을 중핵교육과정으로 삼고 강한 자아를 간직한 성숙한 민주시민을 지향한다.
핀란드 역시 학교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정치교육을 강화하고 학교 밖 정치활동을 적극 권장한다. '민주시민교육'을 가장 늦게 시행한 영국조차 2002년부터 '시민성' 교과를 독립교과로 지정해 '좋은 시민'(good citizen)을 넘어서서 '적극적 시민'(active citizen)을 길러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시민성' 교육을 시행한 지 10년이 지난 2014년 영국 사회에선 놀랄 만한 변화를 체험한다. 청소년 범죄가 급격히 줄어들고 청년층 투표율이 증가하는 현상을 목격한다. <이코노미스트>(2014. 7. 12) 보도에 따르면 2007년과 비교했을 때 청소년 범죄가 84%나 감소했다.
2007년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 발생한 청소년 범죄(10~17세)가 11만1000건이었는데 2013년도엔 2만8000건 정도로 급감했다. 2002년 '시민교육'을 실천한 지 10년이 지났을 시점에 영국 청소년 범죄 발생 건수가 1/4로 급감했다. 모두 '민주시민교육'을 국가 정책으로 추진하고 실천한 영국 '시민성' 교육이 가져온 놀라운 결과였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많이 낙후한 형편이다. 북서유럽 교육선진국과 달리 여전히 낡은 교육 질서에 갇혀 '시험형 인간'을 양산하는 입시교육에 매몰된 느낌이다. 아이들을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게 하기 위해선 시급히 '민주시민교육'을 학교교육과정으로 전면화해야 한다. '민주시민' 과목을 공통필수 교육과정으로 이수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과 연대성을 길러야 한다.
그 위에 가짜뉴스를 판별할 수 있는 정보 리터러시(문해력)와 비판적 사고를 갖추며 '자율과 존중, 배려'를 생활 속에 실천하는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시급히 학교 현장을 평등한 교육생태계로 변화시키고 전국 교실을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산실이 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2018년 1월, 교육부 부서 내 '민주시민교육과'가 설치되고 그해 12월 '민주시민교육활성화 종합계획'이 발표된 것은 세계 교육개혁의 흐름을 반영한 결과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세계 교육개혁의 동향에 발맞춰 뒤늦게 교육개혁의 깃발은 올렸지만 교육개혁을 향해 일보도 전진하지 않았다. 그 점은 '민주시민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한 2019년도 예산이 거의 반영되지 않으면서 유명무실하게 막을 내린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세계 교육개혁의 흐름에 발맞춰 '민주시민교육'을 내실 있게 추진해야 할 역사상 책무성을 가져야 한다. 만시지탄이지만 '민주시민교육'이 학교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게 해야 한다. "반도체 첨단산업인력을 양성해 공급하는 경제부서" 정도로 교육부를 인식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근본적으로 교육의 본질에 깊이 천착해야 한다. 그 길이 윤석열 정부가 성공하는 지름길이다. 교육개혁 없이 그 어떤 정부도 성공할 수 없었음은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교육기본법 제2조에 명시된 대로 교육의 목적은 오직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는 활동임을 명심하고 교육부 '민주시민교육과'를 다시 부활시키길 촉구한다. 그리고 교육개혁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길 고대한다. 그렇지 않다면 윤석열 정부 '민주시민교육과' 폐지는 '문재인 정부 지우기'를 시도한 것으로 교육시민단체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