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드는 생각이나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면 무엇인가? 의자에 앉아 선생님이 있는 칠판을 바라보며 공부하는 이미지를 떠올렸으리라 생각한다.
학교가 바뀌고 있다. 한 반에 50~60명 넘는 학생이 빽빽하게 앉아 공부하고, 학교 종이 울리면 하교하던 시절은 옛말이다. 정규 수업이 끝난 뒤 갈 곳 없는 아이는 학교에 남아 담임 선생님이 아닌 또 다른 선생님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언제부턴가 학교에서 밥을 주기 시작했고, 상담, 진로 탐색, 치유 등 공부 외의 많은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학교의 기능이 커지면서 교육이나 학교 행정을 지원하는 수많은 직종이 생겨났다. 학교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지만, 교원도, 공무원도 아닌 사람을 우리는 '교육공무직'이라고 부른다.
기자가 초등학생 때는 학교에 숙직실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숙직실에 상주하며 학교의 이상 유무를 확인했다. 어느 순간부터 교사의 숙직 근무가 없어지고, 용역업체 소속의 경비원이 그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나 교육청에 직접 고용된 사람이 아닌, 외부업체 직원이 아무도 없는 학교를 책임졌던 셈이다. 용역업체 소속이지만 일은 학교에서 하는 '간접고용' 형태로 있던 이들은 2018년 9월 1일 교육감 직고용으로 전환됐다.
이들은 다른 교직원이 퇴근할 때 홀로 출근하며 업무를 시작한다. 업무가 연속적이지 않으며, 국가중요시설을 경비하는 특수경비에 비하면 난이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60세 이상의 고령 남성이 대부분이다. 아무도 없는 학교의 밤을 밝히며, 학교의 안전을 홀로 책임져야 하는 만큼 남모를 고충이 있다.
교육공무직 노동자 여섯 번째 인터뷰로 대전외국어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당직전담직원 김용복 선생님을 9월 19일에 학교 당직실에서 만났다(지역마다 명칭이 다르고, 대전에서는 '당직실무원'으로 부르나 기사에서는 '당직전담직원'으로 쓴다.).
아무도 없는 학교를 홀로 지키는 사람들
-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김용복입니다. 나이는 만 64세고요. 지난해 9월부터 대전외국어고등학교에서 당직전담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근무기간은 1년 1개월 정도 됐네요. 학교에 오기 전에는 공무원으로, 그리고 공기업에서 30년 정도 일했습니다. 정년퇴직 후에는 사업을 잠시 했었고요. 격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 당직전담직원은 어떤 일을 하나요?
"16시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교무실, 행정실 등 퇴근하는 관리실의 보안을 점검하고 이상 유무를 점검부에 기록합니다. 교내외를 순찰하고, 찾아오는 민원인을 응대하고 전화가 걸려오면 관련 상담도 합니다. 22시에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나머지 관리실을 보안점검하고, 전등을 끄고 모든 출입문을 잠근 뒤 22시 30분부터 다음날 새벽 5시 30분까지 휴게시간을 갖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현관문, 후문, 교실 문 등을 열고 배달된 신문을 정리합니다. 열 체크 같은 것도 스위치를 켜서, 학생들이 와서 바로 할 수 있게 준비해놓고 8시에 퇴근합니다. 보안점검이라 하면 문이 잘 잠겨 있는지, 불이 꺼져 있는지 등을 확인하고, 보안점검부에 이상유무를 체크하는 것을 말해요."
- 보안업체, 무인경비가 많이 있는데, 당직전담직원이 필요한 이유가 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당직전담직원이 학교에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요?
"방과 후라고 모든 업무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선생님들이 남아 특근을 하거나 학생들이 남아서 특별활동을 하죠. 이런 일은 불규칙적, 부분적으로 반복돼요. 무인경비 시스템으로 일괄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거죠. 학생들이 교실에 책이나 노트를 찾으러 왔을 때 문을 열어준다거나 외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건 (무인경비 시스템으로) 불가능하죠. 방과 후에 예측하지 못하는 일이 늘 생기기 때문에 당직은 여전히 필요하죠.
화재가 발생한다거나, 도둑이 들었다면, 무인경비가 아무리 잘 되어 있어도 초동대처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불이 나지 않아도 가끔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할 때도 있어요. 근무하는 1년 동안 두 번 오작동했어요. 모니터를 보고 어디서 발생했는지, 이상 유무를 보고 이상이 없다면 경보기를 끄고 돌아와서 복구해야 하거든요. 확인하지 않으면 밤새 울려요. 현장에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죠."
- 추석 때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학교를 지켜야 하는 업무 특성상 집에 가실 수는 있나요?
"올 추석 연휴가 9월 9일부터 12일까지, 사흘이었죠. 저는 9일과 11일에 근무했습니다. 남들처럼 명절 연휴에 가족과 함께 있지 못했죠. 휴일 아침 8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학교에서 보냈습니다. 학교 안에서만 있어야 하므로 점심, 저녁 두 끼를 도시락으로 해결했어요. 저는 그나마 격일 근무라 추석 당일에는 가족과 있을 수 있었는데, 1인이 매일 근무하는 경우라면 3박 4일 내내 학교에 갇혀있다시피 해요. 추석 당일은 공휴일이지만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금이 나오지 않습니다.
휴일에 24시간 학교에 있어도 9시간만 근무시간으로 인정받는 게 현실이고, 평일에도 16시간 학교에 있어도 근로시간으로 인정받는 시간은 6시간에 불과합니다. 휴일이어도 5월 1일(노동절) 하루만 유급휴일로 인정됩니다. 나머지 일수는 휴일이어도 유급으로 인정되지 않고, 휴일에 근무해도 휴일근무수당이 없습니다."
- 지금 할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해주셨네요. 이어서 이야기를 해볼게요. 유급휴일이나 휴가는 따로 없으신 건가요?
"당직전담직원은 '감시단속적근로자'로 승인되어 휴일 개념이 없어요. 우리에게 휴일은 24시간 내내 학교에 갇혀있어야 하는 그런 날일 뿐이죠. 휴가는 연차휴가, 가족돌봄휴가, 특별휴가, 병가 등이 있어요. 연차와 특별휴가, 30일 이내 병가만 유급이고 가족돌봄휴가, 30일 이상 병가는 무급입니다(기자 주 : 지금까지 언급된 휴가는 당직전담직원에게만 있는 특별한 규정이 아닌, 다른 교육공무직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내용이다).
휴가, 병가를 사용하려면 학교나 교육청이 대체인력을 구해야 쉽게 사용할 수 있는데, 그 책임을 회피하고 있어요. (대체인력 없이) 함께 일하는 당직전담직원과 근무일을 교대하는 식으로 휴가를 쓰게 되기 때문에 휴가를 실질적으로 사용하기 어렵죠. 다른 당직전담직원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요. 근무를 맞바꾸면 이틀 연속 근무를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연차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무급휴일도 없고요."
근로기준법 제63조는 근로기준법의 일부 사항을 적용하지 않는 경우를 다룬다. 크게 네 가지 경우가 있는데, '감시(監視) 또는 단속적(斷續的)으로 근로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사용자가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사람'에게는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는 근로시간, 휴게, 휴일 관련 규정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 감시의 사전적 의미는 '단속하기 위하여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이며, 단속적 근무란 '끊겼다 이어졌다 하는 근무', 즉 연속적이지 않은 근무를 말한다. 이를 두고 '감시단속적근로자'라고 표현하는데, 학교 당직전담직원이 여기에 포함된다.
구체적으로 감시단속적근로자에게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1일 8시간 및 주 40시간, 연장근로 12시간 이하로 노동시간의 상한을 두지 않아도 되고 ▲4시간 일해도 30분 이상 휴게시간을 부여하지 않아도 되며 ▲'빨간 날'로 불리는 휴일에 일해도 휴일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며 ▲1주일 개근하면 지급되는 주휴수당 역시 적용되지 않으며 ▲주 40시간 이상 근무하면 주어지는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므로 당직전담직원이 학교에 평일에는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총 16시간, 주말에는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24시간을 상주하지만, 실제 근로시간으로 인정받는 시간은 전국 대부분 지역이 평일 6시간, 주말 9시간에 불과하다.
- 올해는 휴가를 몇 번이나 쓰셨나요?
"지금까지 연차를 써본 적이 없네요. 쓸 일이 없기도 했지만, 대체인력이 없어서 2인 근무하는 사람끼리 서로 품앗이하듯이 근무일을 맞바꿔서 이틀 연속 근무를 해야 하거든요. 이틀 연속 근무하는 게, 특히 주말이라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서로 휴가를 쓰지 않는 거죠."
2인 근무라면 격일로 일하므로 어느 정도 쉴 수 있지만 급여가 절반이다. 1인 근무라면 명절이나 주말 내내 꼼짝없이 학교에만 있어야 한다. 몇 해 전에는 추석 연휴가 10월 초의 여러 공휴일, 주말과 맞물리면서 1인 근무하는 당직전담직원은 1주일 이상을 아무도 없는 학교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휴게시간이 많지만, 그 휴게시간에 온전히 쉴 수 있을까? 그리고 김용복 선생님이 일하는 당직실은 일반 교실의 반의반도 돼 보이지 않았음에도 배전판이나 여러 전자기기가 많았다. 이게 건강이나 수면에 어떤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까? 다음 편에서 계속된다.
덧붙이는 글 | <노동과 세계>에도 기고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