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이 주목받고 있다. 과학적 사고와 모니터링을 기반으로 하는 시민과학은 과학의 대중화를 넘어 과학기술 시민참여, 다시 말해 과학기술 분야의 민주주의 확대 방안으로 사회문제 해결형부터 공공성 강화까지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사실 문헌자료만으로 시민과학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시민과학에 뛰어든 이들의 사례, 즉 그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스토리를 통해 시민과학의 현주소를 탐색할 수 있다. 기자는 '시민과학자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까?', '이들은 시민과학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시민과학자에게 던졌다. '시민과학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아래 시세사)' 시리즈는 시민과학자의 삶의 이야기이며 세상을 전환하기 위한 그들의 쉼 없는 노력이다. 시세사 시리즈는 Kwater 주최, (사) 시민환경연구소 주관 '한강 유역 철새 모니터링과 서식환경조사를 통한 시민과학의 가능성과 발전방안 연구'의 하나로 기획됐다. 지금부터 시민과학자의 삶을 들여다본다.[기자말] |
'물 족제비'라는 뜻을 가진 수달은 천연기념물 330호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Ⅰ급으로 지정된 족제비과 포유동물이다. 세계자연보존연맹(IUCN)은 수달을 '가까운 시기 멸종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적색목록(Red List)'의 '준위협종(NT)'으로 분류했다. 옛날엔 수달 가죽과 고기를 얻기 위한 남획이 개체 수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서양엔 '오터 하운드(Otter Hound)'라는 수달 사냥용 개가 있을 정도였다. 한반도 수달도 사냥 대상이었다. 과거 몽골은 고려에 수달피를 요구했고, 조선시대 때도 공을 세운 신하에게 수달가죽 두루마기가 하사됐다는 기록이 있다. 현대에 들어선 공업화에 의한 수질 오염과 하천 직강화, 서식처 파괴 등의 이유 때문에 멸종에 처했다. 일본은 2012년 수달 멸종을 선언했다.
수달이 강원도나 섬진강 등 자연성이 그나마 남아 있는 지역이 아닌, 서울 한강과 중랑천 등에서 발견됐다면 믿을 수 있을까? 시민 제보로 처음 한강에서 수달 흔적이 알려진 건 2016년 3월. 환경부는 서울 한강 유역에 최소 2개체 이상의 수달이 서식한다는 정밀 모니터링 결과를 2017년 말 관련 보고서에 담았다. 이후 서울 수달 발견 지점은 더 늘었다.
서울 한강에서 마지막으로 수달이 관찰됐다는 기록이 1973년인 것을 생각하면, 거의 40년 만에 귀환한 '진객'이다. 아니 '객(손님)'이 아니라 본래 '한강의 구성원'의 귀환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서울 한강·중랑천 등에서 발견된 수달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서울에서 수달을 직접 관찰하고 기록한 시민과학자는 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환경운동 기반 다지는 시민과학
지난 9월 초 중랑천 환경센터 김향희(56) 사무국장을 만났다. 그는 서울 중랑천에서 수달을 처음 발견했는데, 현재 수달 모니터링을 전담하는 '중랑천 수달 언니들'을 이끌고 있다. 중랑천 하천센터는 지하철 7호선 중계역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있다. 중간에 노원에코센터가 있어 아이들과 나들이 겸해서 기후위기와 물 환경문제를 탐구하는 데도 좋다.
2016년 문을 연 중랑천 환경센터는 서울의 유일한 하천 환경센터다. 김 국장은 "환경교육의 장이기도 하지만 환경운동의 역동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역 기반 센터"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민과학을 강조했다. 2018년 그가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시민과학 관점에서 시작한 것이 중랑천 수질과 생태 현황 조사 자료를 누리집에 게재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월 1회 중랑천 환경센터 강사, 직원들이 함께하는 현장 모니터링을 체계화했다. 과거에 비해 중랑천의 수질이 개선됐는데, 막연한 기준이 아니라 정량적 기준을 명확히 하자는 의도였다.
김향희 국장은 "전문가는 아니지만, 준 전문가적인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 생태를 조사하고, 그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뭔가 제안하는 사람들이 시민과학자"라고 정의했다. 관련 분야 전공자는 한쪽 분야만 연구했기 때문에 조금 갇혀 있을 수 있지만, 시민과학은 열려 사고와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시민과학자는 학문적 전문성은 전문가보다는 못하지만,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다른 분야와 여타 사회적 전문성을 아우를 수 있다는 의미다. 김향희 국장은 전문가와의 협업을 중요시한다. 그는 "전문가와의 협업 그리고 사회 조직과의 협업, 이런 것이 이뤄졌을 때 시민과학이 더 빛을 발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중랑천 환경센터는 조류, 어류, 수서곤충, 포유류 등 생태 현황 모니터링에 항상 전문가와 함께한다. 시민과학자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전문가의 오류를 줄일 수 있다. 또 시민과학은 관찰과 기록을 통해 해당 지역의 특유한 데이터를 만드는 과정에 일조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데이터는 시민들이 알기 쉽도록 활용된다. 중랑천 환경센터는 2021년 '중랑천 생물 엿보기'라는 작은 도감을 발간했다.
김 국장은 "국가가 (주기적으로) 생태 현황 조사를 하듯이 (중랑천 모니터링 자료를) 4년마다 업데이트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활동이 궁극적으로 "(중랑천) 생태하천 만들기에 발현되는 시민과학의 힘"이라고 봤다. 그가 시민과학을 강조하는 것은 20여 년간의 경험과 성찰을 통해 터득한 환경운동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교육학을 전공하고 사회 교육학을 부전공한 김향희 국장은 젊은 시절 중학교 기간제 교사였다. 사회문제를 다뤘기 때문에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2000년 고양시 계명산 골프장 반대운동은 그를 환경운동가로 이끌었다. "1급수에 사는 옆새우와 가재가 남아 있는 수도권 계곡이 정말 드물었다. 이거를 지키자"라는 게 당시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지역 중심 환경운동이 필요하다고 봤고, 자연학교를 열어 미래 세대와 학부모 교육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큰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2007년경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토론 수업 중 한 학부모가 "선생님이 전하는 이야기는 왜 비관적이고, 암울하기만 한 거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현타'가 제대로 와서 한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김 국장은 "내가 하는 일이 희망적이지 않다는 것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라면서 "책과 이념만 가지고 탁상공론 하는 일보다는 직접 할 수 있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회상했다. "인간이 환경문제를 일으키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도 인간"이라는, 경험적 철학이 생겼다.
중랑천 중상류에서도 발견된 수달
김향희 국장은 환경운동의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그는 이전 환경운동이 "감성적이었던 것 같다"라고 평가하며 "지금은 모든 환경운동이 축척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반론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시민과학이 굉장히 많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수달 보호도 시민과학에 기반하고 있다. 그가 처음 서울 수달 이야기를 접한 것은 2020년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주최 세미나에서였다. 그는 중랑천엔 수달이 없다는 말에 의문을 품었다. 김 국장은 "(수달이 발견된) 오산천, 청주 무심천을 보면 중랑천과 다르지 않았다. '중랑천은 조사를 안 해서 없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해 11월 조사를 시작했다. 천변에 풀이 무성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여름보다 겨울철 모니터링이 수달 흔적 발견의 가능성을 높여줬다. 여러 번 허탕을 치고 나서야 처음으로 수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 국장은 "2020년 12월 29일. 그 날짜를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중랑천과 청계천 합수부에서 수달 영상이 찍혔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김 국장은 서울지역 단체들로 구성된 서울수달보호네트워크에 참여했다. 그는 중랑천 수달을 탐구하고 보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팔당댐부터 고덕천, 여의도 샛강 등 수달 발견 지점을 조사하면서 두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첫 번째는 서울 수달은 물과 물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그는 "수달이 먹이를 찾고 서식하기에 한강은 (수심이) 너무 깊다. 이 때문에 수달은 한강 본류가 아닌 지천이 만나는 합류 지점에서 발견됐다"라고 말했다. 수달은 물과 뭍이 건강해야 살 수 있는 존재다. 이런 수달이 물과 물이 만나는 곳에서 발견된 것을 두고 그는 "(수달은) 교류의 동물이자 화합의 상징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수달이 서울의 법적 보호지역에서 발견됐다는 점이다. 수달은 서울시에서 지정한 생태경관보호지역, 야생동물보호지역, 철새보호지역 등에서 100% 발견됐다. 서울 대다수 하천은 공원화 됐기 때문에 밤낮으로 사람의 왕래가 매우 빈번하다. 수달 입장에선 상당한 위협 요소다. 최소한 법적 보호지역에선 사람이 적기 때문에 수달이 발견될 수 있었다.
김향희 국장은 5명의 '중랑천 수달 언니들'을 구성해 중랑천 전역을 조사했다. 수달 배설물과 발자국을 확인하고 중복 카운팅 방지를 위해 GPS에 수달의 흔적을 입력했다. 배설물을 수거해 유전자 분석을 의뢰하기도 했다. 실체적인 수달 확인을 위해 무인 카메라도 설치했다.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중랑천에 최소 2마리 이상의 수달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유는 이렇다. 그는 "수달은 주변 환경에 호기심이 많아 무인 카메라에 얼굴을 막 갖다 대기도 했다"라면서 "한 마리면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는데, 최소한 두 마리 이상이기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였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겨울 모니터링에선 청계천 합수부 상류 지점과 함께 중랑천 상류인 당현천 합류부에서도 수달의 흔적이 발견됐다.
수달을 지키는 것은 하천을 지키는 것
당현천 부근에선 수달 흔적이 상당히 많이 발견됐다. 수컷 수달의 행동반경이 15km이긴 하지만, 한강에서 당현천까지 올라갔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중랑천 중간 지점은 모래톱이 없어 수달 서식에 좋은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 국장은 "중랑천 상류 쪽에서 내려온 개체가 아닌가"라고 추정했다. 상류 쪽이란 도봉산, 수락산 등 산간 계곡을 의미한다.
서울 한강과 중랑천에서 발견된 수달은 생태계 조절자 역할을 한다. 김 국장은 "사실 지금 도시 하천은 천적 관계가 무너져 잉어의 개체 수가 많다. 그래서 작은 종들이 살지 못한다"라면서 "수달이 개체 수를 조절해 주는 게 생태계 균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자연은 건강하지 않다.
일각에선 서울에서 수달이 발견된 것이 하천 환경 개선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에 대해 김 국장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그는 "(수달이) 1급수 지표종이라고 하는데, 2·3급수에서도 살더라"고 말했다. 수달 배설물에서 플라스틱이 발견되는 등 수달 건강 상태와 서식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근본적으로 도시 하천이 너무나 인간 편의 위주라는 점도 빼놓기 어려운 문제점이다. 김 국장은 "생태하천으로 복원한다는 것은 생물들도 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라면서 "모두가 공존하는 하천을 만들기 위해서 수달을 보호해야 한다. 수달은 그런 상징성이 있다"고 말했다.
단지 수질 개선의 지표종만이 아니라 하천과 공존할 수 있는 존재적 의미로 수달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수달이 건강하기 위해선 지류 관리가 필수적이며, 보호지역 확대 정책도 이어져야 한다. 그는 "시민과학 관점에서 서울 수달 모니터링을 데이터화해 쉽게 만드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중랑천 수달 보호 캠페인을 벌이다 보면 연령대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수달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어르신들은 중랑천 수달을 통해 예전 중랑천의 모습을 회상할 수 있고, 10~20대는 수달을 통해 중랑천 생태에 관한 관심을 가졌다. 그는 "요즘 사람들이 수달에 대해선 모두 내게 묻는데, 나의 (수달 관련) 경험을 얘기해 줄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끝으로 김향희 국장은 "서울과 중랑천에서 수달이 발견된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면서 "수달을 통해 사람들이 공존의 가치를 배우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