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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국장을 보도하는 NHK 방송 갈무리.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국장을 보도하는 NHK 방송 갈무리. ⓒ NHK
 
그 정치노선에 대한 호오와는 관계가 없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죽음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7월 8일, 참의원 선거 유세 중 야마가미 데쓰야의 총격에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곧 숨졌다. 여전히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전직 총리이자 현직 중의원이 피습 살해당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8년 8개월 간 총리직을 수행하며 일본 역사상 가장 오래 집권한 총리였던 그의 위치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의 사망 81일만인 27일, 도쿄 무도관에서 치러진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은 논란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최근 영국에서는 국왕 엘리자베스 2세가 사망하면서 역시 국장과 왕실에 소모되는 비용에 관한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국왕과 총리는 다르다. 국왕은 선출되지 않고 군림하는 것이 원래의 존재 양식이다. 물론 군주제 자체에 의문을 표하자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군주제가 존재한다고 전제하면 그 국왕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지 않는 것은 더 이상하다.

그러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일본 역사상 최장기간 집권한 총리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민주사회의 정치인이다. 국민의 총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다. 국가의 예산을 사용해 국가의 이름으로 치르는 장례가, 국민의 반발과 갈등을 가져온다면 우선 이 국장은 그 시작부터 문제적이다.

아베 국장을 둘러싼 갈등 

일본 국민들은 "국장 찬성"과 "국장 반대"를 두고 분열했다. 국장 당일 무도관 앞에는 조문을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섰지만, 한쪽에는 '국장 반대'라는 팻말을 든 시위대가 모였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등 자민당의 주요 인사가 무도관에 운집했지만, 야당 인사 상당수는 이번 국장에 법적 근거가 없다며 장례를 보이콧했다.

특히 이번 국장에 약 16억 엔(158억9424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며 갈등은 더 커졌다. 기시다 총리는 국장을 통해 '조문 외교'를 구사하겠다는 뜻을 보였지만, 상황은 우호적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캐멀라 해리스 부통령, 완강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 한국 한덕수 국무총리 등이 참여했지만 G7과 같은 주요국 정상은 아무도 국장에 참석하지 않았다.

말했듯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현직 정치인이 개인의 테러로 살해당하는 상황은 민주정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사건이다. 1931년 하마구치 오사치 총리가 살해당했고, 1932년에는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가 살해당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몰락과 군국주의의 신호탄이었다. 폭력으로 민주정의 정치인을 탄압하려는 시도는 그 대상이 누구든 지지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베 신조 전 총리 개인을 추모하고 폭력을 규탄하는 것과, 국가의 이름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은 다른 일이다. 우리는 정치인의 죽음이 또다른 폭력과 탄압의 시작이 되는 장면을 너무도 많이 봐 왔다. 죽은 정치인의 이름과 이념을 내세워 다시 누군가를 재단하려 하는 시도를 반복해서 목격해 왔다.

'정치적 자산'으로 이용되는 아베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 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며 시대의 조류에 발맞추는 것이 정치다. 발전하고 진보하는 것이 정치인이다. 그래서 그게 누구든 이미 죽은 정치인의 이름이 상징으로 이용되는 것은 위험하다. 변화하지 않고 화석이 되어버린 이념이, 이제는 말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정치인의 이름을 빌려 정당화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이 아베 신조 전 총리와 같은 인물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일본의 재무장을 꿈꾸고, "집단적 자위권" 주장을 통한 사실상의 해석개헌을 추진하며 군국주의의 망령을 다시 일으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이 변하지도 움직이지도 않는 상징으로 남아 일본 정치의 발전을 구속하지 않을까 우려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국민적 반발을 뚫고 결국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을 강행했다. 무도관에 세워진 거대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영정은 이제 그가 일본의 정치에 어떻게 이용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전조에 가깝다. 아베 신조는 이제 죽어 상징으로만 남았다. 이제 아베 신조는 그들의 정치적 자산이다. 국장은 그 자산을 결집하기 위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장치였다.

한 정치인에 대한 테러를 규탄하고, 아베 신조라는 자연인의 죽음을 마음 놓고 추모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아베 신조라는 정치인의 존재가 너무도 현재적이다. 아베 신조는 이미 죽은 정치인이지만, 그의 존재와 이념을 소환하려는 누군가의 시도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아베 신조라는 정치인과 그 동료들에게 이런 결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죽음조차 상징이 되어야 하는 장례는, 그래서 누구도 제대로 슬퍼할 수 없는 국장은, 아베 신조라는 자연인의 마지막으로는 처량한 일이라 하겠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일본#국장#아베#조문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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