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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베트남 한 주점에서 주문한 타이거새우.
베트남베트남 한 주점에서 주문한 타이거새우. ⓒ 김성호
 
손 쓸 새가 없었습니다. 테이블 위로 큼지막한 새우가 가득 담긴 접시가 툭 하니 떨어졌습니다. 모닝글로리에 꼬치류, 여러 야채와 조개 안주까지 푸짐한 한상이었습니다. 여기에 새우까지 더했으니 테이블 위는 음식을 더 놓을 수 없을 지경이 됐습니다. 친구는 "싸니까 괜찮아 더 시켜도 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만이 아니었습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과 중국인까지, 베트남 번화가에선 모두가 돈을 물 쓰듯이 썼습니다. 싸니까 괜찮다고, 다들 그렇게 제 나라에서보다 호인이 됐습니다.

테이블마다 킹타이거새우가 한 접시씩 올라온 건 그래서였습니다. 이 새우는 한국에선 제법 몸값이 나가지만 베트남에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습니다. 베트남이 킹타이거새우의 원산지인 덕입니다.

해안을 끼고 남북으로 주욱 뻗은 베트남은 킹타이거뿐 아니라 다양한 새우의 산지로 명성이 높습니다. 개중 킹타이거새우는 시장에 내놓는 족족 비싼 값으로 팔려나갑니다. 수염 긴 생김도 특색이 있고 몸집도 커서 인기가 좋을 만도 합니다. 덕분에 킹타이거새우 양식장도 갈수록 늘어납니다.
 
베트남 메콩강 삼각주의 맹그로브숲.
베트남메콩강 삼각주의 맹그로브숲. ⓒ 픽사베이
 
맹그로브숲 파괴하는 새우양식장

문제는 양식장이 들어서기 좋은 곳에 터줏대감이 앉아 있단 점입니다. 맹그로브라 불리는 수중나무는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만드는 데 가히 독보적이라 해도 좋습니다. 이만큼 산소를 만드는 나무가 없는 탓에 사람들은 이 나무가 들어찬 지역에 지구의 허파라는 별명까지 지어주었습니다.

같은 규격의 나무보다 최소 4배씩은 산소배출이 많아 아마존 우림과 함께 지구 온난화를 막는 보루로 꼽힙니다. 이 나무의 주적이 바로 킹타이거새우 양식장입니다. 다종다양한 플랑크톤을 비롯하여 맹그로브 숲이 만든 생태계가 새우양식장으로 안성맞춤인 탓입니다.

지구의 허파와 베트남의 이익 사이에서 베트남은 합리적인 선택을 이어갑니다. 맹그로브 숲은 산소를 만들기도 전에 밀려나갑니다.

숲이 사라진 곳에서 아이들이 어른보다 고된 노동을 합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UN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사실이 무색하게 가난한 베트남의 아이들은 거친 노동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공간으로 새우양식장이 꼽히는 게 현실입니다.

아동노동과 환경파괴로 말이 나온다지만 누가 감히 돈 되는 산업을 금지합니까. 베트남은 중국의 팽창을 남방에서 저지할 현실적 대안으로 떠오른 지 오래입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쌀국수를 먹고 간 이래 미국은 베트남에 구애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은 중국대로 대응에 나섰습니다. 베트남을 미래로 보는 한국 역시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맹그로브 숲과 가난한 아이들을 위하여 새우 수입을 중단하거나 제재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베트남 베트남 한 주점에서 주문한 새끼오징어 안주.
베트남베트남 한 주점에서 주문한 새끼오징어 안주. ⓒ 김성호
 
총알오징어 '아니죠' 새끼오징어 '맞습니다'

총알오징어도 베트남에선 인기상품입니다. <이데일리>의 연속보도로 널리 알려진 바이지만 총알오징어는 별도의 종이 아닌 오징어의 새끼를 말합니다. 유통업체가 새끼오징어라는 사실을 가리고자 총알오징어로 명명했고, 이게 성공하며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논란이 된 후 이마트 등 대형마트에서 총알오징어를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지만 해외에선 사정이 다릅니다.

베트남에서도 새끼오징어는 인기가 높습니다. 개성 있고 맛도 있는데 값까지 싸니 여행객들은 앞다퉈 새끼오징어 요리를 시킵니다. 비교적 풍요로운 베트남의 바다는 치어(어린 물고기)를 그렇게 잡아대는 데도 한국에 비해 황폐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치어를 먹는 일이 바람직할 수는 없습니다. 그걸 알고 지내는 제 식탁에도 가끔은 이런 것들이 올라오곤 합니다.

별 생각 없이 주문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환경파괴와 아동노동에 동참하게 되는 세상입니다. 에밀 뒤르켐은 일찍이 '분업이 연대감을 높이고 통합을 부르며 해방에 이르게 할 것'이라 역설했었습니다. 분업이 노동자의 정신적, 문화적 쇠퇴를 불러오리라는 애덤 스미스에게 반하는 주장이었습니다. 수많은 학자들이 그의 분업예찬을 지지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베트남에서 여행객들은 킹타이거새우와 새끼오징어를 사먹길 멈추지 않습니다. 분업은 사회과학적으로 훌륭한 시스템이 틀림없지만 뚜렷한 의식 없는 소비는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인간을 타락하게끔 합니다. 분업은 어떤 인간에겐 해방을 주지마는 어떤 인간에겐 고립과 노예노동을 내립니다. 그럼에 제약 없는 분업화는 불평등이며 부조리에 대한 묵인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요.

베트남 식당을 찾아 별 생각 없이 음식을 주문하다보면 누구나 저처럼 '아차' 싶은 순간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음식이 가진 문제를 깊이 알아두는 건 저도 모르는 새 불의에 동참하게 하는 분업화의 문제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베트남#동남아#타이거새우#맹그로브#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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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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