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사는 인생이라 서른도, 마흔도, 쉰도 처음인 우리 일상을 작은 노력들로 채워가는 이야기를 씁니다.[기자말] |
"엄마, 친구들은 자기 두 발로 걷는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 줄 알까? 나는 이제 아는데."
열흘간의 긴 입원 생활을 마치고 아직 실밥도 풀지 못한 채 퇴원하는 둘째가 내게 건넨 말이었다. 척추측만증 수술로 목에서부터 허리까지 기다란 절개 부위가 아물지도 않은 상태에서, 잘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눕히다시피 차에 태우고 조심조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운전하느라 긴장한 것은 내 몫일 뿐, 아이는 '학교 체험학습' 날만 머릿속에 가득한 듯했다. 2년간의 긴 코로나 생활을 보상이라도 하듯, 올해는 가을이 되니 학교에서 많은 행사가 재개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6학년 모두 '에버랜드'에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아이가 퇴원하는 날과 겹친 것이다. 가고 싶은 마음과 갈 수 없는 몸 상태를 받아들여야 하는 딸아이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싶어 집에 가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돌아가야 하는 일
심심하리만치 사건 사고가 없던 내 인생에 핵폭탄급 파문이 일었던 건 불과 한 달여 전이었다. '인생이 한 치 앞을 모른다'거나, '나한테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났다'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딱 들어맞는 일도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역시 인생은 장담할 일이 없는 것 같다.
둘째는 평소와 다름없이 피아노 연습을, 아니 예중 입시를 앞두고 불철주야 피아노와 맹렬히 씨름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자꾸만 등이 아프다고 호소하곤 했는데 아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았다. 이미 예전에 척추측만증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지금의 각도에서는 보조기를 착용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유독 봄부터 힘들어하는 아이였지만, 6개월에 한 번씩 가는 진료 일정을 당길 수가 없던 터라, 어서 입시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아이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콩쿠르와 평가회에 정신이 없었던 탓인지 아프면 잠깐씩 누워있는 것으로 고통을 참는 듯했다.
그러다 정기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간 바로 그날, 너무나 급속하게 고 각도로 휘어진 딸의 엑스레이를 접하게 된 것이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일사천리로 입원과 수술이 결정되었을 만큼 아이의 상태는 심각했다.
그렇게 입원과 검사, 수술로 정신없는 한 달이 지났다. 그리고 아이는 엊그제 실밥을 풀고, 처음으로 등교를 했다. 병원의 의사 소견서 상으로는 6주 동안 등교하지 않을 것을 권했지만 "학교에 가고 싶다" 노래를 부르던 아이는 수술한 지 2주일 만에 비록 느릿느릿한 걸음이지만 기어이 학교에 가고야 말았다.
우려와 달리 학교에서 많은 친구들의 환영과 지극한 보살핌(?) 덕분에 안전하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온 아이를 보니, 잔뜩 졸였던 내 마음도 풀어지는 것 같았다.
아이가 무사히 학교에 다녀왔다는 이 지극히 평범한 사실에 이렇게 감사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것도 6학년이나 된 아이를 말이다. 그뿐인가. 하필이면 입시 직전에 수술을 하게 될 줄, 그래서 2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어린 나이에 큰 수술을 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나의 마음도 힘들었지만, 갑자기 틀어진 진로를 받아들이는 아이를 지켜보는 것도 속이 상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의 나를 위로한 건 뜻밖에 병원에서 만난 이들이었다.
소아 정형외과 병동이라 이러저러한 질환으로 온 아이들이 많이 있었는데 옆자리에 누운 12살짜리 남자아이는 운동선수인 것 같았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6인실 병동에서는 사생활의 비밀 보장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보니 뜻하지 않게 사적인 대화를 공유하게 되었다(결코 들으려고 해서 들은 것이 아니다).
초등부 야구선수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발목 통증을 가지고 있었고, 추적 관찰한 결과 이번에 뼈의 돌출 부분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게 된 것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통증과 함께한 선수 생활이었다고 하니 많이 고달팠었나 보다.
자세한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그 아이는 이번 수술을 계기로 운동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세상에는 뜻하는 바가 있어도 돌아가야 하는 일이 비단 내 아이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 아이가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퇴원을 앞둔 어느 날, 목발을 맞춰주시러 선생님이 오셨다. 정형외과 병동에서 여러 사정을 가진 아이를 많이 만나보신 듯한 그분은, 아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며 치수를 재셨다.
'야구선수라던데 너의 포지션은 무엇이냐, 이야, 외야수라니 너 멋지구나' 하며 아이의 기를 한껏 살려 주신 선생님은 아이가 머뭇거리며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자, '그렇다면 야구를 잘하는 직장인이 되는 것도 진짜 멋있는 일이겠다'라는 말로 파이팅을 건네주셨다.
중년의 나이에 필요한 '심테크'
커튼 너머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따뜻해진 건, 아마도 커튼을 닫고 있었던 나머지 침대의 아이들과 부모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인생에는 꼭 이루어야 하는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닐 테니. 어쩌면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을 이루며 사느냐 하는 것보다 내가 삶을 대하는 자세일지도 모르겠다.
뜻하지 않은 일이 닥쳤을 때, 내 삶을 출렁이지 않고 평평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내면의 힘인 것 같다. 폭풍 같던 시간이 조금 흐르고, 침대에 누워만 있던 아이가 걷게 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것, 나는 요즘 그 잔잔해진 마음이 편안하다.
앞으로 몇 년에 걸쳐 아이의 추가 수술이 기다리고 있다(대부분의 척추 측만 수술은 1회로 끝나는데 우리 아이는 좀 안 좋은 경우다). 그 긴 시간들을 기다리며, 또 보내며 내게 필요한 것은 지치지 않는 마음일 것이다. 그러니 미리 진 빠지거나 걱정하지 말자. 나이 들어가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단한 마음과 열린 자세라고 믿는다. 재테크 근테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심(心)테크일 테니.
아무래도 그런 연유로 이번 가을, 나는 둘째와 좀 더 찐한 시간들을 보낼 것 같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대신 아이가 가보고 싶어 했던 공연을 예약하고, 둘이 함께 읽을 책들을 주문했다. 피아노 치느라 뒤처져도 한참 뒤처진 선행학습이야 가볍게 뒤로 미뤄두고 이번 가을, 내 시간은 아이와 함께 단풍처럼 알록달록 물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