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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사진 오른쪽)과 배우자 미셸 보우소나루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국장 참석을 위해 9월 19일 런던 웨스트민스터에 도착하고 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사진 오른쪽)과 배우자 미셸 보우소나루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국장 참석을 위해 9월 19일 런던 웨스트민스터에 도착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1억 5천만 여명이 투표장으로 향했다. 현지시간 2일, 브라질에서는 앞으로 4년 동안 브라질을 이끌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진행됐다. 등록된 유권자만 1억 5천만이 넘는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선거다.

대선에는 11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그러나 투표 결과 50% 이상을 얻은 득표자가 나오지 않았고, 이에 상위 득표를 한 룰라 전 대통령(48.43%, 3일 현재 99.9% 개표)과 현역 보우소나루 대통령(43.20%)이 오는 30일 결선 투표로 맞붙게 됐다.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선거

당선권에 든 주요 후보는 두 명이다. 여당에서는 현직 대통령인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재선에 도전한다. 야당에서는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브라질 대통령을 역임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시우바, 룰라 전 대통령이 후보로 나섰다.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이 맞붙는 이례적인 선거다. 더욱 이례적인 것은 지지율이다. 룰라 후보가 48.2%, 보우소나루 후보가 43.3%를 득표, 전직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을 누르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심지어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보우소나루 후보의 지지율은 30%대에 머물렀고, 룰라 후보는 1차투표에서의 과반 득표까지 언급하고 있었다. 결국 2차 투표에 진입하게 되었지만, 룰라 후보는 여전히 선두를 달리고 있다. 좌파계열 정당의 지지를 흡수하기만 한다면 2차투표에서의 승리 가능성도 뚜렸하다.

그러나 룰라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의 브라질과 지금의 브라질을 비교한다면, 이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룰라의 시대와 브라질의 몰락
 
 브라질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자료사진).
브라질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자료사진). ⓒ 연합뉴스
 
2000년대 초반 브라질은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가능성이 많은 시장이었다. '브릭스(BRICs)'로 통칭되던 신흥 국가들 가운데서도 브라질의 성장은 돋보였다. 10년만에 브라질 주식시장 지수인 보베스파 지수는 5배나 뛰어올랐다. 브라질 산업협회(NCI)에 따르면 중산층도 3천만 명이 증가했다.

임금이 인상되며 국민 전체의 가처분소득이 크게 늘어났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룰라 집권기 취학률은 높아지고 빈곤층 비율은 절반 가까이 줄었다, 빈곤층을 위한 복지정책인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ília)"의 힘이었다고 평가 받는다. 2014년 리우 올림픽과 2016년 브라질 월드컵 유치에 성공하면서 그 호황은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호황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2010년 룰라 전 대통령은 80%가 넘는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임기를 마쳤다. 그 뒤 브라질이 경험한 것은 전례 없는 추락과 혼란이었다.

룰라의 뒤를 이은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는 국제적인 원자재가 하락과 경제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라틴아메리카 전체가 겪은 위기였지만, 브라질의 몰락은 더 빠르고 심각했다. 2013년에는 버스비 인상을 계기로 대규모의 반정부시위가 발생했다.

정부의 부패 문제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룰라 전 대통령과 호세프 당시 대통령이 연루된 뇌물 사건이 하나둘 수사망에 올랐다. 결국 2016년 호세프 대통령은 탄핵되었다. 2018년, 룰라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2년의 판결을 받았다. 어느 한 시대의 종말이었다. 이렇게 룰라와 노동자당이 이끈 브라질 영광의 시대는 끝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했다.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 이후 대통령의 자리는 부통령인 미셰우 테메르가 승계했다. 미셰우 테메르는 호세프 대통령과 함께 런닝메이트로 대선에 출마한 인물이었지만, 두 사람의 정치성향은 완전히 달랐다. 테메르는 우파 야당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오히려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을 지원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테메르는 극우파 인사를 중용하고, 복지정책을 후퇴시키며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경제난은 여전히 해소되지 못했고, 본인의 부패 혐의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2018년, 테메르는 한 자릿수 지지율로 본인이 승계한 남은 임기를 마쳤다.

2018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후보가 당선되었다. 보우소나루는 "남미의 트럼프"라는 별명답게 친기업 정책과 감세 정책을 내세웠다.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도 빼놓지 않았다. 브라질 사회는 분열하고 있었다.

룰라의 귀환

보우소나르가 당선된 이듬해, 브라질 대법원은 항소 절차에 들어간 피고인은 하급심 판결만으로 구금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항소를 진행하고 있던 수감자 5천여 명이 일시 석방되었다. 그리고 이 5천여 명의 수감자 가운데, 룰라 전 대통령이 포함되어 있었다.

룰라 전 대통령은 석방 후 적극적인 정치 행보에 나섰다. 2021년 룰라 전 대통령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고, 다른 혐의들 역시 차례로 기각되었다. 같은 해 법원 판결에 따라 룰라 전 대통령은 정치적 권리를 회복했다. 룰라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그가 이끈 영광의 시대를 기억하는 유권자들이 그 주변에 모였다.

브라질은 경기 침체를 이어가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상대 진영을 향한 막말로 여러 차례 논란을 겪었다. 코로나19 사태에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백신 음모론을 퍼뜨렸고, 브라질은 3450만명의 감염자와 68만 명의 사망자를 내며 최악의 참사를 겪었다. 룰라의 시대와 10년 뒤 보우소나루의 시대는 대조적이다.

라틴아메리카 정치에서 과거의 지도자가 다시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드문 일은 아니다. 1946년에서 1955년까지 집권한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은 1973년 다시 한 번 정권을 잡았고, 베네수엘라에서도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가 1979년 퇴임한 뒤 10년 만에 재선에 성공한 바 있다.

하지만 돌아온 지도자의 결말이 긍정적이었던 경우는 거의 없다. 1955년 군사 쿠데타로 축출됐던 후안 페론은 1973년 다시 돌아와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상황은 썩 나아지지 않았고, 후안 페론은 1년도 되지 않아 사망했다. 그의 사망 뒤 다시 한 번 쿠데타가 벌어졌고, 그렇게 집권한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는 "더러운 전쟁"이라는 최악의 국가폭력을 자행했다.

베네수엘라의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는 석유 수익을 통한 세수 확충과 복지정책, 친환경 정책 등으로 호평을 받으며 첫 임기를 마쳤다. 하지만 10년 뒤 다시 집권한 그는 급격한 물가 상승을 통제하지 못했고, 이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며 수 백명의 사망자를 냈다. 결국 페레스의 두 번째 집권은 부패 혐의에 따른 탄핵으로 끝나고 말았다.

새로운 시대

룰라 전 대통령은 분명 뛰어난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그의 높은 지지율을 단순히 어느 영광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향수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그가 집권했던 시기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도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브라질만큼 빈부격차와 사회적 재분배에 집중한 국가는 없었다.

룰라 정부는 복지정책을 확대하고 성장을 지속했지만, 과도한 국비 지출로 재정 건전성을 무너뜨리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았다. 2010년대 콜롬비아나 베네수엘라, 아르헨티아 등 주변국이 하나둘 채무불이행에 빠지고 국가질서 붕괴의 위기까지 맞닥뜨렸을 때, 브라질이 그나마 경제적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에 룰라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두 번째 임기도 그렇게 성공적일지는 알 수 없다. 브라질 사회는 어느 때보다 분열하고 있으며, 지난 10여 년의 추락이 남긴 상처는 깊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벌써부터 개표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일각에서는 군부 쿠데타의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가 모델로 삼았던 미국의 트럼프 정권이 선거에서 패배하자 국회의사당 습격 사태라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킨 것을 상기해 보자. 브라질에서 유사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확언할 수는 없다.

룰라 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한다면 이 갈등을 봉합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라틴아메리카 정치사에 불운한 사례 하나를 더하는 것에 불과하지는 않을까. 룰라의 복귀가 시계바늘을 뒤로 돌리려는 불가능한 시도는 아닐까. 기표소 안에 선 1억 5천만의 브라질 유권자 역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우리와 달리, 기표소 안에 서 있는 브라질 국민에게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 있다. 필요하면 외면할 수도 있는 우리와 달리, 이들에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미래가 투표용지 위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미래에 대한 희망을 동력으로, 브라질의 시간은 여전히 앞으로 흐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브라질#브라질대선#룰라#보우소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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