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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남긴 넉 장의 토란탕 레시피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수배를 받아 오랫 동안 피신생활을 해야 했었습니다. 그때 추석 무렵, 토란탕이 먹고 싶어졌었습니다. 그래서 나름 필요한 여러 재료를 사다가 끓여봤는데 도무지 기대한 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결혼 후, 아내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아내가 자기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면서도 며칠 뒤 토란탕을 끓여내 같이 먹었었습니다. 

올 가을에는 이상하게도 토란탕이 많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이미 내 곁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없습니다. 문득 아내가 적어놨던 토란탕 레시피가 생각났습니다. 집안 여기저기 뒤져보다가 마침내 찾아냈습니다.  무려 넉 장을 적어놨더군요.

아내는 토란탕을 끓여 같이 먹으면서도 토란 맛이 어떤 맛인지 알 수 없다고 했었지요. 이 세상을 떠나기 바로 1, 2년 전에야 이제 조금 알만 하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게 맛있는 토란탕을 만들어주기 위해 넉 장이나 되는 토란 레시피를 적어놨던 것이었죠.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숟가락.
숟가락. ⓒ pexels
 
"고마워요. 여보... 그리고 미안해요"

아내의 레시피에 따라 토란탕을 끓여냈습니다. 아내는 특히 다시마가 토란의 아린 맛을 없애주므로 중요하다면서 빨간 동그라미도 쳐놨습니다. 그래서 다시마도 넣고 토란도 삶아 껍질을 벗기고 소고기와 무도 넣고 들깨가루도 넣어 끓였습니다. 아내와 함께 먹던 맛이 그대로 났습니다. "고마워요, 여보."

올 가을에는 이렇게 토란탕을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비록 조금은 눈물을 머금은 채였지만요.

올 여름 아내의 2주기 때는 특별히 칼국수를 끓였었습니다. 아내가 항암 치료를 마치고 귀가하던 날, 아내는 칼국수가 먹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어두어져서 문을 여는 집이 없어 포기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 아내는 끝내 칼국수를 먹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나는 계속 그것이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2주기에 칼국수를 준비하기로 했었죠. 처음 만들어봤던 칼국수였습니다. 그날도 흐르는 눈물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고마워요, 여보, 그리고 늘 미안해요. 지켜주지 못해서.

#토란탕#아내#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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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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