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악산 솟은 아래, 이 좋은 터전
고려의 오랜 역사 빛나는 복지
거룩한 산수 속에 자라는 딸들
대전에 있는 호수돈여중·고등학교 교가의 일부다. '송악산'이 등장하고 '고려의 오랜 역사'가 등장한다. 송악산은 개성에 있는 산이고 개성은 고려의 도읍이다. 지금도 신라시대의 토성과 고려시대의 성터, 만월대(滿月臺) 터·원홍사 등이 남아 있다.
대전에 있는 여중·고 교가에 송악산과 고려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
'개성 만월대 열두 해의 발굴전'(대전근현대사전시관, 대전시 선화동)을 보면 연유를 알 수 있다. 전시 사진 중 1957년 찍은 개성 전경(남북역사작가협의회)에는 송악산을 중심으로 남쪽 골짜기를 따라 만월대(고려의 궁성)가 있고, 그 인근에 호수돈 학교 건물이 선명하게 보인다.
호수여학교는 애초 개성에서 시작됐다. 1899년에 미국 남감리회 홀스톤(Holston) 연회 소속의 여선교사인 캐롤(Carroll)이 개성에서 쌍소나무집 초가를 사들여 주일학교로 시작했다. 이후 개성여학당(1904)-호수돈여학교(1908)로 이름이 변경됐다. '호수돈'은 홀스톤(Holston)을 '好壽敦(호수돈)' 한자음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당시 학생과 관계자 상당수가 피난했다. 전쟁 이후 개성이 북한 땅이 되자 돌아갈 수 없게 되자 대전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학교 연혁을 보면 처음 원동에서 명덕여중(1953, 원동)으로 개교했고 이듬해 호수돈여중(1954)으로 명패를 바꿨다. 이어 1958년 지금의 선화동으로 이전했다.
전쟁 거쳤지만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된 개성 호수돈 건물
하지만 전쟁 이후에도 개성 호수돈 건물은 그대로 유지됐다. 호수돈 100년사를 보면 1957년 촬영한 개성 시내의 모습 속에 호수돈여학교의 건물(본관, 대강당)이 보인다. 다. 좌측이 본관, 우측이 대강당이다. 송악산 산세도 선명하게 보인다.
임재근 평화통일교육연구소 소장은 "구글어스(Google Earth)를 보면 지금도 호수돈 건물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며 "당시 개성 시내 옛 건물이 보존된 건 6.25전쟁 당시 개성이 휴전 회담 장소로 사용돼 폭격을 면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쟁과 분단의 영향, 학교 역사와 맞닿아 있네요"
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서는 지난 8월 중순부터 '남북을 잇다, 미래를 잇다'를 주제로 '고려 궁성 개성 만월대' 이야기를 전시하고 있다. 남북은 지난 2007년부터 2018년까지 8차례(열 두 해 587일)에 걸쳐 개성 만월대를 공동 발굴 조사했다. 이를 통해 미발굴지 중 60% 면적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속활자 1점을 비롯해 와전, 도자기 등 모두 1만 7900여 점의 유물을 수습했다.
14일 찾은 전시관에서는 마침 호수돈여중 1학년 학생들이 관람하고 있었다. 북녘땅에 있는 고려의 역사와 학교의 역사를 찾아 나선 셈이다.
남북교류 중단으로 가 볼 수 없는 개성, 만월대 유물에 대한 설명을 들은 학생들은 가장 많이 머문 곳은 1950년 사진 풍경이다. 학생들은 호수돈 학교 건물에서 오랫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로운 학생은 "옛 선배들이 다녔던 학교 건물이 개성에 이렇게 남아있다니 신기하다"며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노소영 학생은 "전쟁과 분단의 영향이 우리 학교 역사와 맞닿아 있다는 걸 체감했다"며 "통일이 된다면 가장 먼저 개성과 개성의 호수돈건물을 찾아가고 싶다"고 했다.
이여진 학생은 "남북이 공동으로 유물을 발굴했다는 걸 처음 알았다"며 "남북 공동 발굴 작업이 계속 진행되기를 바란다"는 소감을 밝혔다.
김형일 호수돈여중 교목실장은 "부모님 고향이 황해도 황주라 전시를 보는 내내 분단의 아픔과 남북이 공동으로 만월대 유적지를 발굴한 성과가 남다르게 느껴졌다"며 "특히 사진을 보면서 우리 학교의 뿌리를 확인하는 듯했다"고 말했다.
이번 대전전시회는 대전시와 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 주최하고 통일부와 문화재청이 후원했다. 통일부와 문화재청은 지난 2000년부터 전국 곳곳에서 순회전시회를 후원하고 있다. 올해는 대전에 앞서 경기도 하남시와 충남 천안시, 전북 부안군 등 에서 순회 전시회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