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10.19 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이후 여순반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며 진실은 가려진 채 칠흑같은 어둠의 터널을 지나와야 했다. 무려 73년의 세월을 지난 2021년 여순 10.19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다양한 발걸음이 진행되고 있다.
대다수의 순천 시민들도 여순10.19의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여순10.19를 학교교육과정과 연계해서 배우기 위한 소중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10월 13일 순천별량중학교 3학년 학생들과 함께 한 여순10.19 평화인권교육 현장을 가보았다.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진행된 여순10.19 교육은 박래훈 역사교사로부터 여순10.19사건에 대해 기본적인 내용을 배우는 시간을 가진 이후, 여순10.19 유족인 권종국 씨와 학생들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박래훈 역사교사는 여순10.19 사건의 역사적 배경,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74년이 지났지만 아직 해결되지 못한 사건이다. 더 심각한 것은 유족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 분들이 돌아가시면 잊혀질 수 있다. 어떻게 기억하고 이야기해야 할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는 '왜 기억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우리 지역 곳곳에 남아있는 상처를 기억하자'라고 강조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여순10.19 사건에 대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소감을 포스트잇에 적어갔다.
"여순10.19는 '오래된 상자'에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언제가는 꼭 진실을 꺼내야 하기 때문이에요."
"여순은 항쟁이에요. 왜냐하면 우리나라 군인이 우리나라 시민을 학살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14연대는 제주를 진압하라는 명령에 저항을 한 거잖아요."
"안 지워지는 지우개에요. 아무리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따옴표에요.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은 것처럼, 그 뒤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더 써질 것 같기 때문이에요."
90여 분의 길지 않은 여순10.19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가족을 잃고 남은 분들에게 필요한 것'에 대한 질문에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유족들에 대한 관심과,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고 진실한 사과와 배상이 있어야 해요."
"11,000 여명의 피해자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모두 인정해 주어야 해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이 사건을 기억하고 후대에게 전해줘야 해요."
"4.3 사건과 여순사건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 담기지 않은 객관적인 교육이 필요해요."
여순10.19 평화인권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74년 전의 진실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국가폭력에 의해 11,000여 명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죽임을 당한 여순10.19 사건을 학교교육과정 안에서 배우기 위해 순천시, 순천교육지원청, 순천풀뿌리교육자치지원센터는 학교와 지역사회와 협력을 통해 '여순10.19 마을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있다.
교육과정 개발을 주관하고 있는 '우리마을교육연구소 사회적협동조합'은 지난 4월부터 순천지역 초ㆍ중등 교사와 여순10.19 관련 단체, 지역사회의 다양한 전문가들과 함께 교육과정 개발TF를 구성하고 몇 차례 워크숍을 통해 여순10.19 마을교육과정을 만들어가고 있다.
여순10.19 마을교육과정TF는 여순의 진실을 학생들의 가슴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여순10.19 유족과 만남을 교육과정 속에 녹여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74년의 세월이 흐른지라 유족들이 살아왔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이 많지는 않기에 더 늦기 전에 학생들과 유족과의 만남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 9월 30일 송산초등학교 5~6학년과 낙안 신전마을 주민 22명이 집단학살된 희생자의 유족인 강질용(1949년 출생, 당시 1세), 장홍석(1947년 출생, 당시 3세)씨 와의 만남이 있었다. 1949년 10월 8일 낙안 신전마을에서는 산사람들(빨치산)의 연락병 소년을 치료하고 도와줬다는 이유로 마을주민 22명이 집단 학살되고 마을이 전소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0월 13일 순천별량중학교 3학년들도 여순10.19 유족 권종국(74세. 1948년 출생) 씨와 만남을 가졌다. 1948년에 태어난 여순10.19 유족 권종국 씨(74세)는 산사람들에게 동조했다는 이유로 월등 큰박골에서 50여명이 집단학살 되었을 때 아버지를 잃었다.
권종국 유족은 "왜? 누가? 우리 아버지를 마을 사람들을 총을 쏴서 죽였는지 진실이 규명되고 국가 차원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저녁에 산사람들이 내려와서 밥 주라고 해서 밥을 줬고, 낮이 되면 경찰들이 와서 협조했다고 구타 당했다고 해. 산사람들에게 밥을 준게 그게 죄였나봐."
당시 어머니의 뱃속에 있었던 권종국 유족은 삼대 독자로 조부모 손에서 자랐다. '나는 왜 아빠, 엄마가 없을까?' 생각하며 험한 세월을 이겨내며 살았다고 한다.
22년 동안 여순유족회 활동을 하며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살아온 세월을 보상이라도 하듯, 지난 10월 6일 권종국씨를 비롯한 여순사건 희생자 45명을 정부가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다. 사건 발생 74년 만에 처음으로 정부가 여순10.19 유족에게 '국가폭력 희생자'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별량중학교 3학년 학생이 권종국 유족에게 앞으로 바람이 무엇인지 물었다.
"학교에서 우리나라 역사를 가르칠때 좌우익 없이 가르치면 좋겠어. 순천시민 대다수가 여순 10.19에 대해 모르고 있고, 특히 초등학교때부터 여순10.19 교육이 진행되면 좋겠어. 내가 살아갈 날이 많지는 않지만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싶어."
권종국씨는 국가 차원에서 빨갱이 라는 누명을 벗게 해주고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세상을 살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사과를 이야기했다.
장옥란 순천별량중학교 교장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고통속에서 살아오신 여순 유족이 학생들을 직접 만나 큰 울림을 주신 데 깊이 감사하다"라고 밝혔다.
순천별량중학교는 권종국 유족에게 '순천별량중학교 여순 10.19 명예교사' 위촉장을 수여했다.
이날 여순10.19 명예교사 위촉장을 받은 권종국 유족의 곁에는 외손녀인 순천별량중학교 1학년 나윤하 학생이 함께 했다. 교사도 학생들도 나윤하 학생이 여순10.19 유족의 손녀라는 사실을 이날 처음 알게 된 것이다.
권종국 유족은 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처음으로 여순10.19 평화인권교육 명예교사로 선 것이다. 이날의 감동이 더 많은 순천 지역 학교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