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편집자말]
아침부터 조거 팬츠와 반팔 티셔츠를 챙겨 집을 나섰다. 춤 추러 가는 길, 버스에 올라 지난 수업 동영상을 재생한다. 눈을 감고 춤의 동선을 그리다가, 리듬을 타며 소심하게 팔과 다리를 움직여본다. 사십년 이상 살아오면서 춤과 전혀 상관 없다고 확신했던 내 삶에 어느새 '춤'이 자리잡고 있다.

다섯 번의 수술
 
 연극 공연
연극 공연 ⓒ 다른 몸들
 
재작년, 나는 시민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 참여했다. 각기 다른 질병 서사를 가진 여섯 명이 자신의 이야기를 연기하는 배우가 되었다. 자신의 이야기로 직접 대본을 써내려갔다.

다섯 번의 수술을 받은 나는, 인생의 절반이 발병과 재발, 수술과 재활로 채워졌다. 넘어져서 턱을 다친 후, 턱관절 염증에서 시작해 턱뼈로, 온몸의 근육 경직으로, 자궁과 난소의 질병으로 몸은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이 지난한 이야기를 15분에 압축해서 담아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고심하며 대본 작업을 하던 중, 연출가는 나에게 '춤'을 제안했다.

여전히 수시로 얼굴부터 온몸의 근육이 수축되고 경직되는 몸이라 연극에 지원하는 것조차 오래도록 망설였는데, '춤'이라니. 당황스런 표정을 짓는 내게, 연출가는 헤엄치듯 요가를 하듯 움직이면 된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내가 생각하던 춤의 벽이 조금 허물어졌다.

어릴적에 수영선수를 하기도 했고, 헬스, 요가, 플라잉요가 등을 꾸준히 해왔다. 운동을 하면 통증이 줄어들기 때문에, 운동은 식사와 비슷한 일상이 되었다. 일상의 연장선에 춤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연극 연습 동안 다양한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연습을 했던 시간이 약간의 자신감을 더했다. 근육병 때문에 늘 통증을 달고 살지만, 그렇기에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몸으로 이야기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연극 공연
연극 공연 ⓒ 다른 몸들

연극의 막이 오르고, 내 순서가 되었다. 구체적인 안무를 정하지 않고 전체적인 흐름만 연습하고 무대에 올랐다. 내 공연의 마지막에, 국카스텐 <사이>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청춘을 잃어버린 상실감에, 울먹이며 듣던 노래가 몸을 타고 흘렀다.

눈을 감고 서서히 음악과 감정에 몸을 맡겼다. 헤엄치듯 요가하듯 움직이다, 긴장이 풀리자 내 안에 숨어있던 감정들이 몸을 타고 흘러나왔다. 상실감에 아파하고 무력하게 헤매던 시간을 지나, 힘겨웠던 모든 순간도 나를 이루어 가는 과정이었음을, 몸으로 이야기했다.

두 번의 공연 동안 내가 어떻게 춤을 추었는지 세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반짝이는 조명 아래에서 통증이 있는 몸으로 나를 표현하던 미세한 전율이 몸에 새겨졌다. 움직임과 춤의 경계가 무너지던 순간, 나를 표현하는 낯선 희열이 꿈틀거렸다.

무대에서 춤을 춘 후, 거리에서 흐르는 선율과 리듬에 몸이 반응했다. 오랫동안 아팠던 몸은 관리의 대상일 뿐이었지만, 표현할 수 있는 몸이라는 자각은 새로운 움직임을 갈망하게 했다. 제대로 추고 싶어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새로운 자각... 춤을 배우다

설렘을 안고 가벼운 걸음으로 학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척추의 연결을 느끼며 움직이는 기본 동작을 연습할 때부터, 굳어있던 근육들이 저항했다. 굽은 등을 펴니 갈비뼈가 위로 들렸다. 척추 측만으로 좌우는 비대칭이다.

자세를 둘러보던 선생님이 내 갈비뼈를 손으로 내렸다. 전신 근육 경련으로 굳어졌던 내 몸에서 아직도 가장 딱딱한 곳 중 하나가 갈비뼈 근처다. 깊이 호흡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춤은 무모한 도전이 아닐까.

"심각할 필요가 없어요. 너무 심각하면 몸이 바뀌지 않아요. 지금은 동작을 완벽하게 할 수가 없어요. 음악을 타고 움직이며 내 몸이 어느 공간으로 가는지만 알아도 내 몸이 활성화 되고 감각이 살아나요."

어느 날, 시퀀스 연습 중간에 선생님이 음악을 끊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여러 동작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너무 못 할까 봐 긴장하고 또 잘하고 싶어서 심각해진다.

선생님의 동작을 계속 보면서 따라하면, 내 몸은 움직일 뿐 리듬을 타지 못한다. 틀리지 않는 것에만 집중하면, 어느 순간 음악이 들리지 않는다. 춤이란 음악을 타고 움직이는 것인데 그저 동작을 완성하느라 바빠진다. 

호흡을 가다듬고 팔다리에 긴장을 털어낸다. 내 몸의 중심이 음악을 타고 흐르는 느낌에 집중한다. 중간에 잠시 박자를 놓치기도 하고, 왼발과 오른발이 바뀌기도 하고, 반대 방향으로 턴을 하기도 하지만, 춤을 처음 배우면서 실수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정확한 동작을 하는 것보다 음악을 따라 내 몸이 공간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질문 바꾸기
 
 연극 공연
연극 공연 ⓒ 다른 몸들
 
삶의 많은 순간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더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심각해지곤 했다. 그럴 때면 내 삶에 어떤 곡조와 리듬이 흐르는지 감지하지 못했다. 더디 흐를 때 종종 걸음을 걷고, 경쾌한 리듬을 타야 할 때는 다리를 질질 끌었다. 통증에 사로잡혀 세포들은 경직되었고, 삶은 무미건조 해지고 흥과 여유를 잃었다.

심각해지지 않는다는 건, 너무 잘할 필요 없다고 스스로를 놓아주는 일. 삶은 연습이 없는 매 순간이 실전이기에 지나치게 진지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실수이고 실패라고 생각했던 발자국들을 딛고 이만큼 와 있는 걸 보면, 후회가 되는 건 더 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더 즐기지 못해서였다. '잘 하고 있는가' 대신 '흐름을 타고 있는가', '실수하지 않았는가' 대신 '새로운 것을 배웠는가'. 춤을 추며 스스로에게 하던 질문을 바꾼다.

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춤#무용#공연#유령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