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쿠데타로 세상이 아무리 군부지배 체제가 되었다고 해도 검사는 여전히 막강한 권력의 위상에 있었다. 20대의 새파란 검사에게 '영감님'이란 호칭이 따라붙고 경찰을 수족처럼 부렸다.
우리나라 검찰의 흑역사는 길고도 잔혹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을 괴롭히던 친일검사들, 자유당 시절에 설치던 '반공검사'들, 그리고 역대 독재정권과 그 아류 부패정권에서 정치재판의 주역은 검사들이었다.
이승만의 조봉암 죽이기의 사법살인, 박정희의 조용수 처형과 <민족일보> 폐간, 인혁당 8인 처형,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날조사건 등 패악이 자행되었고 검사들이 그 수족노릇을 했다. 민주화운동이나 통일운동을 적대시하여 공안의 칼날을 휘둘렀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고, 민주인사들에 대한 고문도 일삼았다.
검사는 임관할 때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 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정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가 될 것"을 선서한다. 검사들이 초임 때의 순정한 마음으로 다짐했던 '선서' 대로만 직무를 수행하면 우리 사회는 공정과 상식의 사회가 이루어 질 것이다.
다른 직종과 마찬가지로 검찰에는 정의롭고 양심적인 검사들도 많다. 다만 일부 권력지향, 해바라기성 검사들 때문에 전체가 도맷금으로 욕먹는다. 한승헌은 검찰의 공정성과 중립성 훼손에 대해 오래 전부터 크게 우려하였다.
요즘 법조인들이 정계에 많이 나가는데, 그것 자체가 문제 될 건 없으나, 왜 나가기만 하면 주구처럼 변질되는지 안타깝다. 법조인이 정계에 많이 진출하면 법치주의가 그만큼 증진돼야 할 것 아닌가? 검찰 행태가 제일 심각하다. 검찰의 중립과 독립은 당대의 권력에 대해 독립적 판단, 위정자에게 불리한 판단도 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런데 근자에 권력에 불리하다 싶은 것을 건드리는 수사관들이 모조리 찍혀 옷을 벗는 상황은 검찰이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그건 검찰은 물론 집권세력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주석 1)
하지만 이같은 우려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고사가 되었다.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이 되고 국정의 주요 포스트에 검사(출신)들이 배치되면서 바야흐로 검찰공화국 시대가 열렸다.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독점적으로 휘두르고 있다. 검찰이 독점하는 기소권은 어떤 통제도 받지 않고, 검찰 맘대로 쓸 수 있는 권한이다. 죄가 없는 게 뻔해도 기소할 수 있고, 죄가 많아도 기소하지 않을 수 있다. 검찰 처지에서 무서울 건 없다. 여론이 빗발치면 잠시 호흡을 고르면 그만이다. 국회와 언론은 물론, 국민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바로 힘을 가진 사람들만 누리는 특권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뒷배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법은 만인 앞에 공평하지 않다. 검사들 앞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주석 2)
검찰개혁이라는 오랜 숙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공수처의 출범 등으로 시행되었으나 정권교체로 그 기능이 크게 약화되고 '검찰개혁'은 다시 시대적 과제로 남겨졌다. 한승헌은 소왕국 군주와 같은 검사직을 5년 만에 미련없이 내던지고 나왔다.
주석
1> <'법조 55년' 선집 낸 한승헌 변호사>, <한겨레>, 2013년 11월 18일.
2> 오창익, <한동훈 장관, 그 자신감의 원천은>, <경향신문>, 2022년 9월 16일.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