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간다. 거센 파도에 떠밀려가 죽을 듯이 허우적대다가도 갑자기 주변이 잔잔해지고, 모처럼 힘을 내서 뭍으로 헤엄쳐보려 하는 순간 다시 해일이 덮치기도 하고... 해변을 완전히 벗어나 단단한 땅을 딛기 전까지는 도무지 안심할 수 없다.
나흘 간의 나홀로 외박 테라피(?)로 육아 스트레스를 디톡스한 뒤, 어느 정도 상태가 나아졌다고 생각해 이런저런 일정을 만들었다. 집에만 있으면 더 가라앉을 것 같아서, 일부러 오전 시간에 운동 수업도 예약하고 오랜만에 점심 약속도 잡았다.
그런데 자꾸만 눈물이 쏟아졌다. 무거운 몸으로 필라테스를 가는 길에도, 점심 약속을 위해 차를 끌고 나가는 길에도, 아무 일도 없는데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났다. 이제 그만 좀 털고 일어나고 싶은데 파바박 기운이 올라오지 않는 상황이 답답하고 속상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임신 초기, 지옥 입덧과 임산부 우울증으로 대학병원 정신과를 찾아갈 때도 이랬다. 눈물 때문에 앞이 안 보여, 와이퍼처럼 자꾸만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며 운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천천히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속도가 너무 느리다.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한 걸음 나아갔나 싶으면 두 걸음 후퇴하는 식이라,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병원에 가야겠다!
우울감이 오래 가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자
우울증은 감기와도 비슷하다. 약을 안 먹고 '쌩으로' 버텨도 시간이 지나면 대개 낫는다. 그러나 그 기간이 얼마나 될지 예측할 수 없고, 일상이 무너진 채로 무작정 버티는 일은 무척 고통스럽다. 감기인 줄 알았는데 실은 독감이어서 엄청나게 고생할 수도 있다. 우울감이 2주 이상 간다 싶으면 병원에 가보는 게 반드시 도움이 된다.
점심 약속이 파한 뒤, 그 길로 차를 몰아 출산 전 다니던 병원에 갔다. 예약 없이 간지라 한 시간이 훌쩍 넘게 대기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정신건강의학과는 대부분 예약제로 진료하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당일 진료를 볼 수 있는 게 감지덕지였다.
마지막 진료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났다. 임신 초기까지 병원에 다니다가, 출산 직전에 한 번 들린 게 마지막이었다. 출산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라, 그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얻는 산모도 있다기에 점검 차원에서 상담을 했었다. 다행히 트라우마 없이 힘들어도 행복하게 아기를 만났다.
우울증 자가진단, 불안척도 검사, 신체증상 진단 등등 여러 가지 검사를 새로 했다. 테스트를 하면서 스스로의 상태를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우울하고, 불안도가 높았으며, 신체 증상(우울증이 신체적 통증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감기가 또 오면 어쩌나" 걱정하지 마세요
오래간만에 다시 뵌 주치의 선생님은 여전히 차분하고 온화하셨다. 마음이 놓였다. 병원이란 가능한 한 안 오는 게 좋은 곳이긴 하지만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는 일은 늘 편안하고 안심되는 일이다.
어떻게 오셨냐는 물음에 "다시 올 상황이 되어서 왔어요"라고 말하며 울었다.
"
다행히 산후우울증도 없이 지나갔고요, 육아가 생각보다 재미있기는 했는데요, 제가 지난달에 코로나에 걸렸었는데요..."
입덧 시기 이후 1년 반 만에 다시 찾아온 우울증. 전에 그랬듯, 몇 번이나 그랬듯, 약을 먹으면 곧 좋아질 거란 걸 안다. "하지만 이게 다시 오면 어떡하죠? 계속 약을 먹어야 하면 어떡하죠?" 조바심을 내며 물으니 주치의 선생님은 사람을 안심시키는 특유의 다정함으로 대답해주셨다.
"감기가 또 오면 어쩌나, 걱정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우울증을 흔히 '영혼의 감기'라고 한다. 나는 그냥 '감기가 잘 걸리는 체질'인 걸까?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대상포진이 오고, 어떤 사람은 머리가 빠진다. 나는 우울증에 걸린다. 대상포진처럼, 원형탈모처럼, 병원에 가고, 약을 먹고, 치료를 하면 좋아지는 병일 뿐이다.
2주 분의 약을 처방해주셨고, 약을 계속 먹을 건지 중단할 건지는 그때 결정해도 된다고 하셨다. 익숙한 알약 두 알 반. 약봉지에는 병원 이름 대신 'Acceptance'라고 적혀 있다. 수용. 받아들임.
전업맘 vs 워킹맘, 어느 쪽도 힘들다
퇴근길 러시아워에 걸려 귀갓길은 40분이 훌쩍 넘게 걸렸다. 집에 도착했더니 벌써 목욕까지 다 끝낸 아이가 잠옷 차림으로 날 보며 웃었다. 오늘 아이를 처음 봤다. 아이는 내가 일어나기 전에 어린이집에 갔고 귀가 후에는 아빠와 시간을 보냈다.
만약 내가 풀타임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이었다면 이런 날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아침 일찍 아이를 맡기고 밤늦게 아이를 만나고. 아이가 잠든 뒤 귀가하는 날도 많을 것이고, 며칠씩 아이를 보지 못하는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사실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아이는 어떻게든 자랄 것이고 다행히도 우리 애는 순한 편이다. 요즘 같아서는 아이 아빠가 전담해서 아기를 등하원 시키고 돌보는 것도 큰 무리가 없다. 그러면 나는, 집에서 애만 바라보고 살다가 지금처럼 육아 우울증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집 밖에서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는 일을 하는 게 더 나을까?
그런데 뭐 한다고? 변변한 직장도 별로 없는 지방도시에서 아줌마가 푼돈 벌어서 뭐 하려고? 뭐 얼마나 대단한 자아실현 한다고 엄마라는 사람이 이 중요한 애착 형성기에 아이 곁에 안 있어주고?
아이의 어린 시절에 함께 해주고픈 마음이 자꾸 발목을 잡는다. 스스로를 집에 가둔다. 내게 결핍된 것(모성애)을 아이에게 넘치게 부어주고 싶은 욕심에 자꾸 무리하게 된다. 그거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면서.
운이 좋게도, 지금의 나에게는 선택지가 있는 편이다. 아이 키우는 전업주부가 되어도, 워킹맘이 되어도, 돈도 안 되는 글을 끼적이며 낮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것. 엄마라는 이름은 무거워서 가끔 도망치고 싶은데, 거기서 도망쳐 봤자 갈 곳이 없다.
엄마가 아닌 나는 이제 없다. 잃어버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