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자기 전까지 공부하다가 하루를 마무리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단지 숙제는 했느냐고 물었을 뿐인데, 아이는 버럭 화를 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밥을 먹자마자 교복도 갈아 입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희희낙락 하는 모습이 못마땅했다. 아이가 화를 내는 것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때 아주 맥락없어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화를 낼 일도 아닌데 화를 내며 이야기를 하니 나도 기분이 좀 상했다.
"잠자기 전까지 공부를 하라고 한 건 아니잖아.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나는 최대한 친절하게 물었다.
"아니,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고 학교에서 종일 공부하고 학교 끝나자마자 학원에 갔다가 집에 오는데, 집에 와서도 숙제만 하고 그러다가 자면, 나는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 거잖아."
"그럼 너는 뭘 하고 싶어?"
"나는 자기 전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하루를 마무리 하고 싶어."
"그러니까 너가 하고 싶은 게 뭔데?"
"공부는 아니야!"
"엄마가 너에게 종일 공부를 하라고 하는 건 아니야. 엄마도 네가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공부만 하는 걸 바라지 않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지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엄마도 알지. 네가 공부를 하느라 많은 것들을 놓치는 것보다 공부를 덜 하더라도 많은 경험을 하는 걸 더 원하고 있어. 그러려면 엄마가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하잖아."
그제서야 아이는 눈물을 뚝뚝 떨어 뜨리며 서러운 감정을 드러냈다.
"엄마, 내가 공부를 안 하겠다는 건 아니야.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도 알아. 근데, 왜 그렇게 선행을 많이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돼. 학교에서 배우는 만큼 복습하면 되는 거잖아. 학교에서 수행을 하면 내가 못하지 않아. 오히려 잘 하는 편이야. 나는 너무 미리미리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아."
아이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찔렀다. 나 역시 선행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학원을 안 보내자니 뭔가 뒤처지는 느낌이 들어서 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네 말이 틀리지 않아. 엄마도 너와 같은 마음이야. 그러니까 선생님한테 늘 천천히 해도 된다고 이야기 하잖아. 많이 시키지 않으셔도 된다고 이야기 하고. 그건 너도 알지? 엄마가 원하는 건 게으르게 빈둥거리지 않았으면 하는 거야. 물론, 빈둥거리는 날도 있겠지. 어떻게 늘 부지런하게만 살겠어. 다만, 무엇을 하는 게 즐거운지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봤으면 하는 거지."
아이는 그제서야 이해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나에게 안겼다. 아직은 어리게 느껴지는 중학교 1학년생. 다 큰 어른들도 뭘하고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고민을 하는데 오죽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마음을 이해 받았다고 생각을 하니 아이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조잘조잘 수다가 이어졌다.
"엄마, 학교에서 예술제를 하는데 내가 신청을 했다고 말했지? 기타치면서 노래 부르려고 한다고. 신청한 사람들 오디션을 먼저 보고, 오디션에 합격해야 무대에 설 수 있대. 그 오디션이 며칠 안 남았거든? 그래서 내가 내일은 학원을 다 못 갈 것 같아. 기타쌤이 시간 있으시다고 연습하는 거 봐주신대."
"학교 끝나고 바로 연습을 한다고? 그럼 엄마가 학원 선생님한테 내일은 못 간다고 연락해 놓을게. 근데 무슨 노래 부를 거야? 노래는 정했어?"
"오늘 정하기는 했어. 근데 한 번도 쳐보지는 않은 노래라 연습을 해야 돼. 오늘 기타쌤이 나한테 '무대뽀'라고 하시더라~. 이제서야 노래를 정했다고. 엄마 나는 오디션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어."
"그래. 혹시 오디션에서 떨어지더라고 너무 속상해 하지는 말아. 뭔가를 하려고 시도하고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한 거잖아. 우리 아들 훌륭하네!"
나는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사춘기가 아무리 심하게 온다고 해도, 그 복잡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면 적어도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사소한 고민일지라도 그것을 꺼내 이야기 했을 때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려는 노력이 전해지면 해결되지 않더라도 아이는 큰 위로를 받는 것 같다. 그러나 대화가 단절되는 순간, 아주 사소한 일들도 쌓이고 쌓여서 큰 문제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자꾸 물어보고 듣고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것이 이 시기를 슬기롭게 헤쳐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세심하게 마음을 헤아려 주고 이해를 해 주는 건 비단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인 우리에게도 큰 힘이 되지 않는가.
아이가 학원도 다 빠지며 최선을 다 하고 싶다던 오디션이 바로 내일로 다가왔다. 변성기가 시작되어 힘들게 노래를 부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또 어떤가. 아이 말대로 오디션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와는 상관없이 그것만으로도 나는 멋지다고 말해줄 것이다. 벌써부터 내가 다 가슴이 뛴다. 혹시라도 덜컥 합격하면 잔치라도 벌여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