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를 위하여'를 주제로 연재하고 있는 이 시리즈의 마지막 기사는 노인의 질병을 다루려고 합니다. 노인이 경험하는 네 가지 고통인 빈곤, 무위, 고독, 질병 중에서 마지막 쟁점입니다.
윤석열 정부(보건복지부)는 지난 10월 7일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건강증진개발원과 함께 만성질환자와 건강한 국민이 일상 속 건강관리를 해나갈 수 있도록 총 12개의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에 대해 시범 인증을 부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사업'의 케어코디네이터(간호사, 영양사)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 과제도 함께 발굴, 추진한다고 밝혔습니다(보건복지부 보도자료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12개 시범 인증' 참고). 그냥 읽어보면 좋은 이야기 같습니다.
그러나 보건의료분야의 전문가 단체인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즉각적으로 반박 성명을 발표했습니다("영리기업에 의료행위 허용하는 의료민영화 '건강관리서비스' 정책 중단하라"). 이 사업이 심각한 의료민영화의 출발점이며, 일차의료의 공공성을 해치고, 건강증진과 돌봄 영역까지 민영화하려는 시도라는 것입니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12개 시범 인증사업 중에는 보건소가 한 군데 끼어있지만, 나머지 사업들은 모두 민간 영리기업들이 운영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업은 1군 만성질환관리형과 2군 생활습관개선형, 3군 건강정보제공형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당뇨환자, 고혈압환자, 암환자, 치매위험군 등이 주된 대상입니다.
당뇨, 고혈압, 암이라고 하면 그저 흔한 성인병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환자들의 대부분은 노인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노인들의 대부분은 이 질병들을 '달고 살며', 그 후유증으로 인해 사망하게 됩니다. 치매는 환자의 거의 대부분이 노인이죠. 중장년, 심지어 청년기에도 치매에 걸릴 수 있지만 비율은 아직 높지 않습니다. 결국 이 사업은 만성질환과 치매를 겪고 있는 노인들의 건강관리를 민간기업에 넘기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심정일까요? 이 사업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국회에서 입법 시도가 있었으나 의료 민영화 논란이 커지면서 무산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노인 빈곤의 규모도 커지는 상황에서 공공의료의 역할이 더 커져 가고 있음에도 보수 정권들은 오히려 공공의 역할을 줄이고 민간기업의 이익을 보태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부자 노인들에게는 이 사업이 희소식이 될 수도 있겠으나 40%에 달하는 가난한 어르신들과 그 윗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나머지 다수의 어르신들에게는 나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그렇다면 노인들은 어떤 질병들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노인들이 여기에 해당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의료제도도 급증하는 의료비 부담은 견디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가통계포털 자료(노인실태조사, 2020년)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의 치매 유병률은 2.1%입니다. 그리고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노인장기요양보험통계에 의하면 2021년 치매 유병자는 36만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장기요양급여를 받고 있는 중증치매만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앙치매센터에 의하면, 최경도와 경도를 포함하면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추정치매유병률은 10.33%이며, 2021년 추정치매환자수는 89만명에 달했습니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치매노인의 수도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치매는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 2008년 이전에 치매노인을 돌보는 것은 가족의 몫이었습니다. 해당 노인의 배우자나 동거하는 자녀와 그 배우자가 돌봄 제공자가 되었습니다. 치매 노인을 돌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동거하는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수많은 연구와 보고서가 발표되어 왔고, 사회적 공론화가 진행된 끝에 치매 등 노인성 질환에 대처하는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작되었고, 국가가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게 되었습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그럼에도 여전히 치매는 당사자인 노인과 그 가족의 복지, 그리고 전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그 파급효과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경증치매를 겪고 있는 어르신의 가족은 방문요양 등 재가급여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여전히 가족이 돌봐드려야 합니다.
재정 부담도 적지 않습니다. 장기요양보험 덕분에 치매노인 가족이 지출하는 비용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자기부담금이 존재하며, 사회 전체가 그 부담을 조금씩 나눠 맡게 되었습니다. 중앙치매센터는 2021년 치매관리비용을 18조7천억원으로 추정하였습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만으로 한정했을 때 2011년에 2조8천억원, 2016년에 4조7천억원이었던 비용이 5년 뒤인 2021년에는 10조 7천억원으로 급증했습니다. 이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노인의 사망원인에서 치매가 차지하는 비율은 높지 않습니다. 2021년에는 1만351명으로 추정되었는데, 70세 이상 사망자가 22만6천여 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략 알고 있다시피 노인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은 악성신생물, 즉 암이었으며, 심장질환, 폐렴, 뇌혈관질환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제가 궁금해 하던 것 중 하나는 코로나19가 노인의 사망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것이었는데, 보건복지부 보도자료에 의하면 코로나19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하는 사망자 수는 2021년에 5,030명이었습니다. 이 수치를 그대로 믿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죠? 우리나라의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지난 10년간 매년 5천명 안팎으로 사망자 수가 늘어왔는데, 코로나19 창궐 이전인 2019년에 비해 2020년에는 사망자가 1만명 정도 늘었고, 2021년에는 1만2천명이 더 늘었으므로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 수가 과소보고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중 대부분이 70세 이상 노인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시 코로나19는 우리나라의 어르신들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코로나가 없었더라면 살아계셨을 어르신들이 지난 2년반 동안 1만명 정도는 더 돌아가시게 된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내놓을만한, 굳이 비교를 하지 않더라도 제법 괜찮은 건강보험제도를 구축해 왔습니다. 실제로는 현재 건강한 다수의 국민이 현재 건강하지 않은 소수의 국민을 위해 의료비를 지출하는 방식(부과방식)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담이 적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알고 내든 모르고 내든 공동체가 연대하여 질병에 대처하고 건강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동의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한 점들이 많습니다. 상당히 많은 질병들을 건강보험 급여체계 내에 포함시켰고, 건강검진의 양과 질을 강화하면서 예방대책도 강화해 왔지만 여전히 큰 돈이 드는 질병들은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코로나19 사태를 지나오면서 발견한 바와 같이 공공의료제도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건강보험의 수가체계와 연결된 민간의료제도로는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공공의료를 더욱 확충해야 하며, 농촌지역에 더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 발목을 붙잡는 것이 있습니다. 의사들의 평균 소득수준은 우리나라의 모든 직업군들 중에서 여전히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절대적으로 의사의 수는 부족하고, 지방의료원과 국공립병원에서는 수억원의 연봉을 더 얹어준다고 하는데도 의사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는군요. 의사들은 1인당 환자 수가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하면서도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는 데는 반대하고 있고요. 종합병원 환자들은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5분 면담을 하고 돌아서서 나와야 하는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병의원 사이에도 빈부격차가 커져서 잘 되는 병원의 수익은 하늘 높은 줄을 모르는데, 다른 쪽에서는 폐업하는 병의원이 많다며 아우성입니다. 진료과 사이에도 전공의들의 편중 현상이 심합니다. 이는 간호사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뭔가 모순으로 가득한 낯선 세계처럼 보입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관련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공공의과대학 설립법 제정과 지역의사법 제정, 의과대학 정원 대폭 확대를 요지로 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우리가 지켜본 바와 같이 공공의료의 확대는 우리 시대의 필수적 요청사항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주된 대상자는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해 온 어르신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모순이 있습니다. 그 어르신들을 위한 공공의료의 확대를 반대하는 정당을 바로 그 어르신들이 지지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약자를 위한 복지를 공공의제로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이번에는 다른 태도를 취할까요? 신중하게 지켜볼 일입니다.
집안 어르신이 아프면 가족 구성원 모두가 아픕니다. 많은 이들에게 자신을 극진히 아끼고 사랑해주셨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죽음은 깊은 슬픔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어르신들이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고, 질병에 걸렸다면 가능한 한 빨리 치료하고, 그로 인한 재정 부담이나 가족의 돌봄 부담이 최소화되도록 해야 하며, 그 질병이 만성화되었다면 약물이나 치료적 개입이 오남용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의료가 지금보다 대폭 확대되고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국가가 주도해야 할 역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