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전 파리바게뜨 등에 밀가루 반죽과 완제품을 납품하는 SPC그룹 계열사 SPL 평택공장에서 스물셋 여성 청년 노동자가 혼합기 작업 중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언론 보도를 통해 사고가 알려졌고, 사고 이틀이 지난 17일 SPC는 허영인 회장 명의로 "사업장에서 발생한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을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사고 전후 SPC의 대처가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사망사고 1주일 전 해당 공장에서 유사한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또 사고직후 동료 노동자들은 사고 현장이 완전히 수습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대로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SPC 그룹의 언론 대응도 비난을 자처한 대목이었다.
"SPC그룹은 계열사에서 노동자가 죽는 중대재해가 발생했음에도 관련 뉴스가 보도되자 16일 파리바게트 런던매장 오픈하며 영국 시장에 진출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파리바게트에 납품하는 재료 작업을 하다 죽은 노동자에 대해 애도하기는커녕 관련 기사를 덮으려 했던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부분이다." - 17일 에스피엘(SPL) 제빵공장 청년노동자 사망에 대한 한국노총 입장문 중
실제 SPC 그룹은 16일 해당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에 따르면, 주요 일간지 및 경제지 중심으로 'SPC 런던 진출' 소식이 기사화됐다. 그 과정에서 SPC의 보도자료를 기사화한 언론사 또한 함께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SPC 런던 진출' 앞다퉈 기사화했던 매체들
"SPC그룹의 베이커리 브랜드 파리바게뜨가 영국시장에 진출했다. SPC그룹은 14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에 파리바게뜨 매장을 오픈하고, 본격적인 유럽 진출 확대에 나설 계획이라고 16일 밝혔다."
16일 <동아일보>의 <SPC 파리바게뜨, 英 1호점 오픈…"유럽시장 확대 핵심 거점"> 기사의 서두다. 이처럼 SPC의 보도자료를 기사화한 기사들은 "2025년까지 20개점을 오픈하는 등 미국과 중국, 싱가포르와 함께 4대 글로벌 성장축으로 삼아 적극적인 공략에 나설 것"이라는 SPC 그룹 허진수 사장의 멘트도 함께 게재했다. 이를 보도한 경제지 등의 목록은 이랬다.
- SPC, 런던에 '파리바게뜨' 첫 매장 열어… "유럽 진출 확대 전진기지될 것" (아시아경제)
- SPC 파리바게뜨, 런던 1호점 오픈.. 영국시장 진출 (파이낸셜뉴스)
- SPC 파리바게뜨, 런던에 1호점 오픈...두 번째 유럽 진출 (아주경제)
- "한국식 케이크 해외서 통할까"…英 런던서 승부수 던진 'K-빵' (한국경제)
- 파리바게뜨, 영국 1호점 개점...유럽 빵 시장 노린다 (머니투데이)
- 파리바게뜨, 런던에 1호점 (한국경제)
- 佛 접수한 파바, 이번엔 英 1호점 오픈 (서울경제)
- SPC, 프랑스 이어 영국에 파리바게뜨 1호점 오픈 (헤럴드경제)
- 파리바게뜨, 런던 상륙… K빵맛, 유럽 홀린다 (서울신문)
- 런던에도 '파리바게뜨'… 영국 1호점 열어 (동아일보)
- 파리바게뜨 英 진출… 런던에 1호점 열었다 (조선일보)
- SPC그룹, 英 런던에 파리바게뜨 1호점 개점 (세계일보)
- K베이커리 영토 확장, 파리바게뜨 '런던 1호점' 열었다 (중앙일보)
이를 두고 경향신문은 17일자 사설 <이번엔 SPC서 노동자 끼임 사망, 달라진 게 뭔가>에서 "더욱 놀라운 것은 사측인 SPC그룹의 대응이다. 사고가 발생한 당일 회사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라며 이렇게 꼬집었다.
"이튿날에는 파리바게뜨의 영국 런던 매장 오픈을 홍보했다. 그리고 17일, 사고 직후 100여명의 노동자들이 폴리스라인이 쳐진 사고 현장 옆에서 조업을 강행했다는 사실까지 나왔다."
KBS도 이 소식을 알렸고, 중앙일보 등은 두 차례에 걸쳐 해당 소식을 소개하기도 했다. 특히 16일 오전 연합뉴스, 뉴시스, 뉴스1 등 통신사가 기사화하면서 여타 중소매체들이나 스포츠지, 종편 등도 퍼나르듯 파리바게뜨의 런던 진출 소식을 기사화했다.
19일 오후 3시 네이버 뉴스 기준, 'SPC 런던'으로 검색했을 때 확인되는 매체들은 스포츠동아, 글로벌E, 식품저널, 여성소비자신문, 한국경제TV, 공감신문, AP신문, 스트레이트뉴스, 아시아에이, 메디컬투데이, 열린뉴스통신, 매일경제TV, 이투데이, 메트로신문, 농업경제신문, 아시아투데이, 전국매일신문, 굿모닝경제, 데일리한국, 조선비즈, 디지털타임스, 스마트경제, 초이스경제, 천지일보, 뉴데일리, 브릿지경제, 싱글리스트 등이었다.
비정하게 사익 추구한 SPC와 언론들
이러한 SPC 그룹의 언론 대응이 기사화되면서 불매 운동의 촉매 역할을 하는 중이다. 또 해당 청년노동자의 사망사건이 소비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지속적으로 이슈화되면서 'SPC 런던 진출'을 기사화했던 매체들에도 비판이 쏟아지는 모양새다. 이런 와중에 또 다른 SPC의 언론 대응이 빈축을 샀다.
그런데 사고 이후 SPC 측 입장 등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사측으로부터 뜻밖의 요청을 듣게 됐습니다. "혹시 제목에서라도 'SPC' 를 빼줄 수 있겠냐, 대신 '평택의 한 공장'으로 넣어줄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습니다. - 18일 SBS, <[취재파일] 공식 사과하더니…"제목엔 SPC 빼 달라"> 중에서
해당 취재 파일을 쓴 SBS 기자는 "먼저 비단 한 기업이나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산업재해 사망 사고를 취재하며 사측으로부터 이런 요청을 받는 경험, 기자들은 여러 번 겪습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하지만 이런 요청들, 대부분 납득 어려운 설명이라 받아들인 적은 없습니다"라고 못박았다.
이러한 기업들의 요구 자체가 부당하다는 사실을 명백히 한 것이다. 이어 해당 기자는 "현장 노동자와 유족이 사측에 요청한 건 분명합니다. 사고 책임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입니다"라며 "SPC도 직접 사명을 내걸고 사과한 만큼, 진정성 있는 대응을 기대합니다"라고 당부했다. 유족과 동료 노동자는 물론 안타까운 사망사고에 이은 SPC 측의 안일한 언론대응을 바라보는 일반 시민들의 심정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은 물론 대대적인 SPC 불매운동 조짐이 커지고 있다. 그에 앞서 'SPC 런던 진출' 보도자료를 낸 SPC 그룹이나 이를 기사화한 매체들 모두 청년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사익 추구에 몰두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