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편집자말] |
"오른쪽 난관이 막혀 있어 수정 확률이 낮고, AMH수치가 0.93으로 나이에 비해 난소 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어요. 언제 폐경이 올지 모릅니다. 정자는 별다른 이상이 없으니 바로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2021년 11월, 우리 부부는 난임 병원을 방문했다. 내 나이 마흔이던 해였다. 피 검사, 나팔관 조영술, 정자 검사 등 기본적인 검사를 마친 후, 의사는 검사 결과 기록지에 적힌 확률과 수치를 가리키며 담백하게 이야기했다.
예상보다 상황이 좋지 않아 당황한 우리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임신해야 하는 건지 확신의 문턱을 쉽게 넘지 못했고, 처음 듣는 용어와 숫자들이 성공보다는 실패를 떠올리게 했다. 망설이던 우리는 다음 해 3월이 되어서야 시험관 시술을 시작할 수 있었다.
확률과 수치로 읽히는 몸
난자 채취 과정에 돌입했다. 매일 아침 8시 알람에 맞춰 일어나 남편이 놓아주는 '고날에프' 450IU를 맞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과배란 주사 5일 차, 중간 점검을 위해 병원에 갔다.
"왼쪽 2개, 오른쪽에 3, 4개가 자라는 걸로 보이네요. 남은 5일간 잘 키워보죠." 보통 10~12개가 채취되어야 성공확률이 높다던데 절반도 되지 않는 개수였다. 슬쩍 웃으며 "네"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또다시 실패를 떠올리게 하는 숫자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진료실에서 나오자 남편이 괜찮다며 손을 잡아 주었다. "그래도 난소가 최선을 다해서 7배의 힘을 쓰고 있네. 참 장하다. 그렇지?" 남편의 위로에 내가 애써 응답하며 말했다. 그래도 말하고 나니 정말 그런 거 같아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채취된 난자는 3개입니다.' 수면마취에서 깨어나 간호사가 건넨 종이 맨 윗줄에 파란 매직으로 쓰인 숫자를 보자 마음 한편에 쌓아왔던 기대의 모래성이 와르르 무너졌다. 무너진 마음을 다잡는 건 거대한 중력을 거스르기처럼 어려워도 무너지는 건 허무할 만큼 쉬웠다.
초음파로 난자 5개가 보였으나 2개는 공난포였다고 한다. 그동안 반복적으로 들어온 낮은 확률과 수치를 떠올리면 예견된 숫자였으나 지나치게 단출한 그 숫자에서 짙은 패배감의 쓴맛이 느껴졌다.
그러나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받아 회복실을 나오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미 무너진 모래성은 어서 바닷물에 쓸어 보내고 새로운 기대의 모래성을 쌓는 수밖에. 금쪽같은 난자 3개가 부디 소실 없이 이식할 수 있는 배아가 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3개를 모두 이식해야 그나마 임신 확률이 15%입니다. 나누어 이식하는 것보단 한 번에 확률을 높이는 게 좋아요. 난자 채취가 부담되시면 조금 쉬셨다가 다시 하시면 되고요."
겨우 확보한 배아 3개를 한 번에 이식하자니 실패하면 어쩌나 겁이 났다. 채취 과정에서 몸도, 마음도 힘들었기에 웬만하면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고, 고생의 대가로 적어도 2번의 이식 기회는 보장받고 싶었다. 그러나 의사는 단호했다. 그날따라 의사의 말이 지나치게 가볍고 날카로운 직선 같았다.
마음이 삐딱하게 기우는 게 느껴져 얼른 털어버렸다. '다음'이 아니라 '지금'에 최선을 다하자 싶어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진료실 문을 열고 나오자 속이 조금 울렁거렸다. 조심스럽고 더디게 흘러가는 나의 마음과 달리 숫자로 판가름 나는 의학의 세계는 너무 쉽고 빠르게 흘러가는 거 같아서.
이식은 단 10분 만에 끝났다. 자궁벽에 붙여 놓은 배아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며 사진 속 배아 3개에 '해, 달, 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서로를 따뜻하게 비추어주며 부디 자궁에 편안히 안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남편과 나는 "해, 달, 별을 품은 우리는 우주야"라고 말하며 두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지난 5월.
"임신 축하드립니다. 결과가 좋아 다행이네요."
두 개의 아기집을 확인하던 날, 의사는 처음으로 확률과 수치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숫자에 울고 웃었는데 사실 결과는 그 숫자와 무관했다는 듯 의사는 활짝 웃었다. 나도 그제야 따라 웃을 수 있었다. 마치 저주가 걸린 숫자의 마법에서 풀려난 기분이 들었다.
확률과 수치로 알 수 없는 몸
착상만 성공하면 임신 과정이 아름답게 해피엔딩을 맞이할 줄 알았다. TV 주말 드라마 마지막 회에서 '욱' 하는 시늉을 하며 화장실로 달려가는 여성의 모습이 해피엔딩의 피날레를 장식하듯이 임신 성공이 인생 성공처럼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하루하루를 선사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것은 망상이었다. 인생이 그리 만만할 리가 없다. 착상에 성공하고 나서도 '노산'에 '초산', '쌍둥이' 산모가 된 나는 '고위험군' 꼬리표를 달아야 했고, 또다시 유산과 조산 위험률과 각종 수치는 불안을 자극했다. 숫자의 마법은 여전히 유효했다.
'먼 길을 오래 달려오는 아가야, 따뜻한 엄마 품으로 빨리 달려오렴.'
병원 시술실 천장에 적혀 있던 문구다. 이 문구를 보며 나의 간절함이 묘하게 왜곡되어 나를 숫자의 노예로 만들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간절하다 못해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된 '임신'은 마치 '누가 누가 빨리 임신에 성공하나?' 경쟁하듯이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좋네요', '잘하고 있어요', '확률이 높아요', '잘 될거예요'와 같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갈구하게 했다.
의사는 그저 의학적인 근거를 말해줄 뿐인데도 나의 부족함과 결핍을 지적당하는 것처럼 느끼며 스스로 위축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을 품기 위해 병원에 왔음에도 생명을 품지 못하는 온갖 이유에 사로잡혀 있었던 거다.
시험관 시술을 하며 확률과 수치를 앞세워 '성공'과 '실패'라는 두 가지 답만을 가지고 있는 의학의 세계와 결코 숫자로 환산될 수 없는 다양한 삶의 요소들 사이에서 무척이나 고군분투했다. 무엇 하나를 선택하여 부여잡고 의지하며 위로받고 싶었다. 그러나 차츰 이 두 가지가 뒤섞여 있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조금씩 배워나갔다.
"나는 문제집 한 권 풀고 다음 문제집 푸는 마음으로 다녔어."
시험관 시술을 먼저 경험한 지인이 내게 했던 말이다. 시술 과정 내내 이 말이 떠올랐다. 문제집 한 권을 풀고 손을 탁탁 털며 '끝!'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삶은 내게 다음 문제집을 주었다.
또 다시 숫자로 정리된 세계와 울렁이는 감정의 파도, 얽혀있는 행운과 불운, 불명확한 희망과 체념의 경계 등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복잡미묘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것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주어진 문제를 풀어나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