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방향을 틀었다. 부동산 개발 이익을 둘러싼 부패사건은 이제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의 불법 대선자금 의혹이 됐다.
21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3부는 이틀 전 체포했던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혐의는 정치자금법 위반. 검찰은 김 부원장이 2021년 4~8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통해 대장동 사업에 참여한 화천대유 관계자들로부터 수억 원을 받았고, 이 돈이 당시 대선을 준비 중이던 이재명 대표 경선캠프로 흘러 들어갔다고 본다. 김 부원장은 체포 후 낸 입장문에서 "검찰의 조작의혹"이라며 전면 부인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대장동 의혹은 ▲유동규 전 본부장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등과 공모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사업 구조를 설계, 성남도시공사에 손해를 끼쳤고(배임) ▲이 과정에서 유씨가 수억 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얼개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김용 부원장이 등장하면서 국면이 완전히 달라졌다. 수사팀은 유 전 본부장이 지난해 9월 휴대폰 인멸을 시도한 일 역시 김 부원장과 대선자금 문제를 논의한 흔적을 감추려던 것이었다고 의심하고 있다.
방향 튼 검찰, 당황스런 이재명... "의원들도 불안"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불법 대선자금 의혹은 정치인과 정당 모두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사안이다. 게다가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의 대대적인 수사를 계기로 불법 대선자금 의혹은 자취를 감춘 터라 파급력은 더 커질 수 있다. 줄곧 말을 아껴오던 이 대표가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아무리 털어도 먼지조차 안 나오니 있지도 않은 '불법대선자금'을 만들고 있다"며 전면대응에 나선 데에도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공당이 경선을 하고, 또 본선을 치르는 데에 있어서 불법적인 비용을 쓴다는 것은 너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대장동 사건으로 해보려다가 안 되니까 결국은 민주당에게도 타격을 줘서 (여권이) 총선 때 유리한 입지도 확보할 수 있고,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정적(政敵)인 이재명 대표도 제거할 수 있는, 일거양득 차원에서 (수사가) 이렇게 치닫는 것"이라고 봤다.
한 민주당 의원도 '대선자금 의혹'이란 상황 변화 자체가 "검찰이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그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설령 김용 부원장의 혐의가 사실이더라도 그건 대선자금이 아니라 경선자금"이라며 "대선자금은 민주당이 불법자금으로 선거를 치렀다는 의미이지만, 경선자금으로 쓰였다는 것은 당이 쓴 게 아니다. 둘의 뉘앙스 차이는 크다"고 짚었다. 다만 이번 수사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하나로 엮이면서 "의원들이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의원은 "경선자금이라고 해도,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을 분리시킬 수 없을 것"이라며 "이 대표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됐고, 현재는 당대표 아닌가"라고 말했다. 다만 "정국이 한쪽으로 확 기울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윤 대통령은 검찰 수사로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싶겠지만 많이 올라가야 30%대 중반일 것"이라며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이 대표말고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수사 과정에서 더 구체적인 사법문제가 나와도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진영 결집효과 있지만... 누구도 웃지 못하는 이유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정치적 부담이 커졌다고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마냥 웃기는 어렵다. 한국갤럽이 10월 18~20일 만 18세 이상 1000명에게 물어본 결과,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27%로 전주 대비 1%p 하락했는데, 중도층에서 6%p나 떨어졌다. 그러나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이 전주 대비 1%p 오르고 민주당은 5%p 감소해 33% 동률을 기록했다.( 자세한 개요와 결과는 갤럽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이재명 사법리스크' 영향을 받은 셈이다.
결국 여권도, 야권도, 국민도 불만족스러운 상황이 고착화할 수 있다.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윤 대통령은 지지율이 낮기 때문에 최대한 지지층을 긁어모으려 할 테고, 수사가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를 아우르면서 민주당은 하나로 묶여서 갈 수밖에 없게 됐다"며 "한쪽이 싫어서 다른 한쪽을 선택할 수 있는 국면이 아니니까 중도/무당층은 더 늘 것"이라고 봤다. 그는 "대선 때 여야 서로 비난만 하던 구도가 이대로면 2024년 총선까지 가겠다"고도 전망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 역시 "윤 대통령이 '불법 대선자금 의혹' 수사로 국정운영 동력을 얻을 것 같진 않다"면서도 이재명 대표가 이날 '대장동 특검'을 다시 제안한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 대표는 코너에 몰릴 때마다 특검 카드를 들고 나왔다. 오늘도 그 조건으로 윤 대통령 관련 의혹을 언급했는데 현직 대통령이라 수사·소추가 불가능하다"며 "오히려 이재명과 윤석열의 적대적 공생관계로 계속 가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밝힌 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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